‘안전성-확장성문제’ 없던 일로... 20년 넘게 반복 PK-TK 갈등만 깊어져
경실련 “일관성 없는 정치공항 사업에 국민혈세 한 푼도 쓰지 말아야”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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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선심성 국책사업 이젠 안녕

지난 17일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동남권 공항으로서 김해신공항 추진계획에 대해 백지화 결론을 내렸다. 검증위는 안전과 시설운영, 소음분야 등에서 문제들이 발견,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실련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결정으로 2016년 전문가 검증결과가 다시 뒤집어지면서 동남권 신공항이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에서 출발한 정치공항임이 재확인됐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추진이 논의됐던 신공항은 이명박이 대선후보 시절 부산, 밀양, 대구 등 각 지역을 돌며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하지만 2011년 후보지가 모두 공항 입지로서 적합치 않다는 사업타당성 결과에 따라 전면 백지화됐다.

이후 2012년 대선에서 다시 박근혜·문재인 후보 모두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부는 경제성이 없다며 백지화시킨 사업을 2014년 8월엔 “수요가 충분하다“며 재추진했다. 결국 2016년 6월 프랑스 용역회사의 타당성 검토 결과를 토대로 당시 국토부는 신공항을 백지화하고, 김해신공항 확장을 결정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울산, 경남 등 관련 단체장들 요구에 김해신공항 확장건설에 대해 총리실 산하 검증위의 타당성 검증을 지시했다. 지난해 12월 총리실 산하 기술검증위가 출범했고, 11개월 만에 이전 정부의 전문가 검증결과를 뒤집고 백지화결론을 내린 것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정치인과 정권에 따라 전문가 결정조차 뒤집힌다면 객관적인 타당성 검토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만일 총리실의 재검증이 맞다면 이전 정부에서 엉터리 결정에 참여한 전문가와 행정관료들을 공개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신공항 사업은 국민을 위한 건전한 국책사업이 아닌 정치인들이 유권자 표를 얻기 위한 미끼사업임이 재확인 됐다.

경실련은 이런 선심성 정치공약 사업엔, 지역민과 정치인의 요구에 밀려 남부권 신공항이 불가피하더라도 세금을 한 푼도 투입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운영(Operate) 후 인도(Transfer)하는 선진국형 민자방식(BOT)으로 진행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이번 결과가 전문가 결정이라 강조했지만, 이전 정권의 전문가 결정을 뒤집는 또 다른 전문가 결정이 과연 얼마나 정확할지 국민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공항 사업에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해선 안 된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공공사업 예산절감을 위해 ‘공공사업 예산효율화 대책’을 세우고 예비타당성조사 및 완공 후 사후평가 제도 등을 도입해 “선심성 공약남발을 방지코자”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100조 규모의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등을 추진하며 예산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때문에 이번 결정은 심히 우려스럽다.

경실련 관계자는 “더 이상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의 정치적 판단으로 국책사업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며 “국회는 정치인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상설화된 국책사업감시위원회 등을 설치해 국민을 위한 국책사업이 진행되도록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해신공항 확장계획 왜 백지화 됐나

검증위는 17일 발표에서 김해신공항 사업 계획에 “법 취지에 위배되는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해신공항 계획 검증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법률 해석이다. 공항시설법 제34조는 ‘공항 시설 인근에 일정 높이 이상의 장애물을 설치하거나 방치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김해신공항은 오봉산과 임호산, 경운산 등 7개 산악 장애물을 그대로 둔 채 추진됐다. 이걸 다 깎아야 하는 게 원칙인데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시간이나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다 따져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공항시설법 34조의 세부조항은 ‘관계 행정기관의 장(여기선 부산시장)이 협의에 따라 장애물의 설치 또는 방치를 허가할 경우엔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한다. 김해신공항에 반대하는 부산시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때문에 산을 깎지 않고 활주로를 새로 건설하기로 한 김해신공항 계획에 법적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검증위는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법제처는 “기본적으로… 장애물은 없애는 것이 원칙”이라고 회신했다.

김해공항의 확장성 문제도 논란이 됐다. 검증위는 김해 신공항이 동북아 여객·물류 중심지(허브)인 관문공항의 기능은 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주변에 여유 공간이 없어서 앞으로 항공 수요가 증가했을 때 필요한 활주로와 청사의 추가 건립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변 마을들 때문에 밤 11시~새벽 6시 사이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거론됐다.

김수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장은 "산악 장애물 존치를 전제로 수립된 국토부의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안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결론적으로 김해신공항 계획은 상당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확장성 등 여러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해신공항을 추진해온 국토교통부는 “검증위 발표를 겸허히 수용한다”며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는 짤막한 입장만 내놨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검증위 발표로 김해신공항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라며 “국토부도 김해신공항 계획을 접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수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장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김수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장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PK-TK 갈등에 국민의힘 사분오열

PK와 TK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2004년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첫 논의 단계에서 같은 배를 탔던 두 지역은 거듭된 ‘급정거’와 ‘항로 변경’ 속에 결국 등을 돌리게 됐다. 선거를 앞두고 급부상한 이번 이슈는 오랜 기간 지역 갈등과 정치권 공방 등 여러 후폭풍을 불러 올 전망이다.

김해신공항이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되면서 ‘가덕신공항’ 추진 가능성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민주당은 특별법 발의, 긴급대책위 구성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여권의 속도전에 PK와 TK는 전면전에 돌입했다.

PK는 결정이 다시 뒤집히는 걸 막기 위해, TK는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자체는 물론 시민단체도 “우리는 남이다”를 외치며 양보 없는 전쟁에 들어갔다.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 후 “정책 결정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부산시는 여러 정부에 걸쳐 장기간 검토된 사안임을 언급하며 혈세와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등 절차를 최대한 단축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추진을 요청했다. 또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PK 여론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부산시는 활주로를 2본에서 1본으로 줄이고, 활주로 방향을 틀어 해안매립 비율을 75%에서 43%로 축소하면 애초 예상됐던 10조원이 아닌 김해 신공항과 비슷한 7조 원가량을 들여 가덕도 신공항 건립이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TK는 거세게 반발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김해공항 확장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보완해 추진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오로지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목적으로 (신공항 이슈를) 이용하려는 것은 영남권을 또다시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대구상공회의소는 17일 보도자료를 내서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지역 갈등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과 국가 미래를 위해 김해 신공항 확장안 백지화를 철회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PK와 TK에 지역구를 둔 정치인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 결정에 환영 의사를 표하며 “가덕신공항 추진에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이 적극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서병수 의원(부산 진구갑)과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도 이례적으로 정부 정책을 긍정 평가하며 협조를 약속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재로선 가덕도가 최선의 대안”이라며 찬성 뜻을 내비쳤다.

반면 야당 소속 TK 의원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구시당위원장인 곽상도 의원은 “전문기관의 용역 평가를 통해 결정된 국책 사업이 갑자기 부산시장 보궐선거용으로 뒤바뀌어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권영진 대구시장 등도 선거를 위한 ‘포퓰리즘 정치’가 이 같은 결정을 초래한 것이라며 여권의 잘못된 선택으로 국가 미래와 영남권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 사라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PK와 TK가 ‘완전 결별’을 선언하면서 국민의힘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뜻밖의 복병에 지도부는 물론 당 전체가 카오스에 빠져들었다. TK 지역구 의원이던 김부겸, 홍의락의 낙선으로 TK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셈법이 좀 복잡해진 상황이다.

PK 쪽 지역당에선 가덕도공항 지지세가 강하지만, 국민의힘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대경권에 굳건한 지지를 갖고 있다. 사실상 마지노선과도 같기에 TK 민심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보궐선거 결과에 정치적 명운이 걸려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결론을 낸다면 당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호의적으로 반응한 반면, TK에 지역구를 둔 주호영 원내대표는 감사원 감사 청구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당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는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부산 지역 지지율을 소폭 앞서는 것을 확인한 야당에선 조금이라도 빨리 당론을 확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현재로선 어느 쪽에도 힘을 싣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에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앞둔 국민의힘 잠재 후보들은 조속한 당내 갈등 봉합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형준(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공항을 어디에 짓든 TK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며 “소모적 당내 분쟁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지역 공동 발전을 위한 생산적 논의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덕도공항을 만들어 대구와 남부권 전체 교통망이나 산업파급 효과를 함께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그 갈등은 과거와 같은 갈등으로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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