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레슨-스펙쌓기 유학·연주회-콩쿠르 수상 집착’ 등 대중 무관심한 그들만의 잔치
도제식 구조로 국악계 성범죄 지속... 가해자 반성 없고, 피해자 해결방법 없는 악순환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공정뉴스〉는 예술혼을 불살라야 할 음악인들이 자본에 눈이 멀어 벌인 다양한 불공정 상황을 분석해 본다. 우선 입시비리 뿐만 아니라 음악계 구조 자체의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후 그 원인과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알아본다.

 

#전방위적으로 곪아버린 한국 음악계

바이올린 4,000만원, 활 500만원, 교수 레슨비 매달 80만원. 이 정도는 바이올린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기본 경비에 불과하다.

교수들은 초등학생, 중학생에게도 고액 입시 레슨을 하면서 자기 단골 가게에서 악기를 사라고 압력을 넣는다. ​거래가 성사되면 악기상으로 부터 커미션으로 악기 가격의 10~30%를 돌려받는다.

​어떤 교수는 중학생에게 “악기가 나빠서 콩쿠르에 나가기 어렵다. ​악기상에 1억 원짜리 바이올린을 구해놨으니 사와라”라고 했다고 한다. ​학부모는 입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연다.

한국 음대는 대부분 실기 위주로 가르치고, 악보대로 연주하는 기계만 잔뜩 쏟아낸다. 예술 중학교, 예술 고등학교는 음대 들어가는 코스에 불과하다. 지방 예고 학생들의 경우, 서울에 있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외국으로 유학 간다.

콩쿠르는 연주자들의 기량을 확인해보자는 교육 목적으로 20세기 중, 후반에 생겨난 시험장이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인들이 몰려들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인다. ​콩쿠르는 악보대로 얼마나 충실히 연주했느냐만 평가하는 '손가락 돌리기' 대회다

콩쿠르가 닥치면, 학생은 평소보다 2~3배 레슨을 받고,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이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는 콩쿠르를 골라서 참가한다. 언론은 한국인이 콩쿠르를 휩쓸고 있고, ‘세계 음악계에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콩쿠르는 어디까지나 국내용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선 유학도 간판이 못된다. ​하다못해 지방 소도시 악단에 들어가려고 해도 유학은 기본이고, 콩쿠르 입상 경력이 필요하다. 유학하고 돌아온 음대 전공자들의 귀국 독주회는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한 ‘스펙 쌓기’다. 이런 독주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친척, 아는 사람이고 돈 내고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교수가 되면 열정이 떨어지고, 손가락이 굳어가며 연주를 그만둔다. 대신 ​레슨을 하고, 제자들에게 뇌물을 받으면서 배를 불린다.

일부 음대 교수들은 미국 변두리 작은 교회나 미술관을 빌려 그 근처에서 유학하고 있는 제자들을 앉혀놓고 독주회를 열고 돌아오기도 했다. 공연비도 자기가 부담한다. 이것도 스펙 쌓기다.

음대 교수들은 학생들, 조교, 시간 강사를 마구 부려먹는다. 제자들은 잔심부름, 운전, 은행 심부름은 말할 것도 없고, 선물도 고가를 바치지 않으면 교수에게 찍혀버린다.

텔레비전에 출연해 어려운 학생을 도와야 한다고 눈물 흘렸던 서울대 교수 김인혜는 걸핏하면 학생들 뺨을 치고, 학부모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자기 가족 행사에 학생들을 일꾼으로 부려먹는 등, 온갖 추태를 부리다가 대학에서 쫓겨났다.

한국 음악가들은 솔로, 오케스트라 협연, 오페라 주인공과 같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대형 오케스트라 공연은 많지만, 실내악 연주회는 거의 없다. 실내악으로 먹고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의 많은 음악회는 팸플릿만 화려할 뿐, 내용은 부실하다. 연주자 의상도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편이다. 게다가 연주회만 열면, 온갖 화분, 케이크, 꽃다발, 화환이 넘쳐난다.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은 오래전부터 높으신 어른들이 잠시 거쳐 가는 자리였다. 과거 경영진과 운영 담당자의 비리가 발각되자, 언론은 ‘부패 백화점’이라고 조롱했다.

국내의 여러 아트센터엔 개인이나 기업 후원회가 있다. 이들 후원자들은 VIP 대접을 받는다.

후원회장이 방문하면 아트센터의 모든 직원이 거의 ‘사열’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정부는 KBS 교향악단과 서울시향에 매년 각각 100억대의 혈세를 쏟아 붓고 있다. 이런 혈세 먹는 하마가 왠만한 도시에 하나씩 있다. 국내 최초의 국립 악단인 KBS 교향악단은 과거 낙하산 인사에 단원들이 반발해 정기연주회가 펑크 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휘자의 독재적인 운영방식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정명훈은 서울시향에 부임하자마자, ​오케스트라 수준을 높인답시고 단원을 절반 이상 해고했다.

대한민국 국제음악제, 대관령 국제음악제, 통영 국제음악제 등의 음악 페스티발은 겉포장만 요란할 뿐, ​내용이 부실하다. 지방 음악 페스티발은 서울 공연 재탕하거나, 프로그램 발표회 수준에 그친다.

​관객도 대개 업계 종사자, 참가자의 제자, 가족들, 협찬 기업 초청인이며 ​말로만 국제 페스티발일 뿐 일본 음악가 정도만 참여하는 것이 고작이다.

음악 캠프는 행사라기보단 '야외 고액 레슨'에 가깝다. 서울에 입성하고 싶은 지방 음악가들과 학생들이 지도 교수의 압력으로 비싼 돈을 내고 이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들에게 한국은 만만한 떡밥이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중에 거의 모두가 한국을 다녀갔다. 그런데 ​빈 모차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름만 내걸고, 3류 단원이나 가짜 단원을 모은 C급 오케스트라를 한국, 일본, 홍콩에 파견했다.

​그럼에도 국내 공연 기획자와 이들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연주자들도 이들이 가짜인지 알아보지 못해 망신을 당했다. 또 ​이런 내한 공연은 전적으로 상류층을 위한 것이며, 일반 시민들은 접근하기도 어렵다.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국악계 성범죄 심각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집에 가해자가 찾아왔다. 가해자 뒤엔 국악계 각 분야 명인이 병풍처럼 조용히 서 있다. 성범죄를 덮을 수 있을 진 몰라도 이런 이들을 명인으로 더 이상 부르지는 못할 것이다. 국악계 내 성폭력 사례가 다양해도 대체로 귀결은 이런 식이다.

라라(www.hellolara.com)에선 국악계 내 성폭력 실태 조사를 설문형식으로 2016년 11월 진행했었다.

답변 중 가장 발생 빈도가 높았던 곳은 ‘연습실’이다. 연습실이라는 장소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가해자는 대부분 선생님이다. 과거 교원이 성폭행으로 적발된 124건 중 형사처벌 된 경우는 6건에 불과하다. 파면, 해임 또는 교직을 떠난 경우는 21건으로 솜방망이 처벌뿐이었다.

결국 특정교육관련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안됐다. 하지만, 교총 등 교원단체 압력에 굴복해 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폐기된 적이 있다. 감시의 눈초리가 많은 제도권 교육 현장에서도 성범죄에 느슨한 대응뿐인데, 국악 레슨처럼 비제도권 교육 현장은 더욱 성폭력 사각지대다.

국악계 구조상 일반적인 경우보다 성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 2015년 발간한 ‘주요범죄유형별 특성’ 자료에 따르면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발생률이 39.9%로 가장 높고, 21세부터 30세 사이가 36.9%로 가장 피해가 크다고 한다. 마치 국악레슨현장을 염두에 둔 듯한 통계처럼 착각할 정도다.

연습실 이외에 성폭력이 발생한 장소로는 지역 곳곳에 마련된 전수관 및 뒤풀이 장소, 대학교 연구실, 술집, 노래방, 학교 연습실, 선생님 집 등이 있다. 심지어 전국국악대회장에서 벌어진 경우도 있다.

특히 합숙하는 전수관에선 상식을 뒤엎는 변태적 상황도 많았다. 잠근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와 범행을 저지른 후, 다음 날 옆방 학생에게도 같은 짓을 되풀이한 선생님도 있다.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에 의해 자행되는 것뿐만 아니라 더 큰 선생님에 의해 자행되는 범죄 사례도 있다.

미성년자인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적지 않았고, 동성(同性) 간 사례도 접수됐다. 미성년자일 땐 선생님 집에서 레슨 중에 성폭력을 경험했고, 성년이 돼선 학교 선배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큰 발표를 앞두고 반주나 찬조 출연을 부탁하러 갔다가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성폭력을 겪은 후 대처를 어떻게 하셨습니까?’란 질문엔 상대방과 합의를 했다는 대답이 약 30%였다.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한 응답은 60%를 넘었다. 대처하지 못한 이유로 가해자가 유명한 선생님이어서 나한테 피해가 올까봐 란 내용의 답이 많았다.

피해자 대부분이 학생이어서 학교에 그 사실을 알렸는데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경우도 많았다. 성폭행한 강사에게 다시 수업을 맡겨 학부모의 원성을 산 사례도 있었는데, 쉬쉬하면서 자기 자식만 빼돌리려는 문의만 있었을 뿐 공개적으로 그 사안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술자리에 심신 미약한 상황에서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렸지만, 해결은커녕 사안을 숨기기에 급급한 학교도 있었다.

이처럼 국악계 내 성범죄 양상이 일반인이 상상하는 수준을 넘는데도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는 의외로 적었다. 성추행, 성희롱을 당한 경우 경찰에 신고하기보단 합의나 학교에 알려 해결을 시도하려 한 사례가 많았다.

성폭행을 당했던 경우라도 법률적인 해결 기대치가 낮았다고도 분석할 수 있다. 아마도 국악계가 성폭력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던 사례들이 학습효과로 남았던 게 원인인 듯하다.

합의하는 경우도 실상은 합의가 아니라 협박이다. 자기 분야의 명인이 가해자의 동업자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피해자가 과연 있을까?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이 2013년에 폐지되긴 했지만, 수사기관에선 여전히 합의를 종용하는 경향이 남아있다.

대학교 국악과가 25곳이 있지만, 국악 교육의 뼈대는 여전히 도제(徒弟) 식이다. 도제식의 특성상 헤게모니가 집중돼 있다. 대중성이 취약해 지원금에 의존하는 국악계는 계보를 통해 뿌려지는 기회가 사실 국악인의 무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성이 남아 있던 시절에 비해 스승의 품격이 더 요구되고 있지만,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프랙탈 구조처럼 큰 선생에서 작은 선생으로 유사하게 복제되고 있어서, 세대가 바뀐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감소할 문제도 아니다.

국악계 내 성범죄는 제로섬게임 같은 특징도 있는데,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언어폭력(주로 가해자를 두둔하는)이 피해자의 동기나 동료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피해자가 연대할 곳이 적다는 것도 사건을 쉬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성폭력 사례의 행태와 사후 처리 과정을 종합해보면 우선 성폭력에 대한 죄의식, 자신이 보호자라는 인식과 책임감 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성범죄예방 교육부터 강화해야 한다. 국악계 내 성폭력 현실이 심각한데도 성범죄예방 교육이 이뤄진 적이 없거나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성폭력범죄는 누구라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합의 했다고 다시 교육 현장에 나타나거나, 무마하기 위해 협박을 자행하는 파렴치한들에겐 마땅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위치에 있는 자가 임무를 저버리고 악용할 때에도 책임을 제대로 묻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

김형태 전 서울시 교육의원은 "음대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도제식 수업으로 인한 '내 제자 챙기기'의 지나친 애착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며 ”또 특정 교수와의 인맥·학맥이 제자의 진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대한민국의 좁은 음악계 현실이 이와 같은 비리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공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