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비전문가 참여 입찰과정 문제제기... 중개인 개입으로 리베이트 문제 발생
-설치 후 사후관리도 엉망... 코로나19로 미술계 각종 문제점 수면 위로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문화계의 불공정은 심각하다.  한류 문화 확산으로 청소년들 사이에 문화예술 분야를 장래 희망으로 선호도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무대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동작 하나 하나에 환호하며 연예인을 꿈꾼다. 만화는 웹툰형태로 진화하면서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새로운 진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와 창작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당처우와 불공정을 경험하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 중심으로 이너서클화된 문화계에서 불공정과 갑질이 자행되고 있다.  〈공정뉴스〉는 가장 순수해야 할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 상황들을 짚어본다. 우선 어떤 유형의 비리와 문제점이 발생하는 지 살펴본다. 이어 미술계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분석해 본다.

#코로나19 미술계 강타ㆍ

국내 미술계가 유독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있다. 오프라인 위주의 미술품 거래 문화 관행 때문.

코로나19로 인해 갤러리·미술관 전시·아트페어가 취소돼 작가가 작품을 판매할 창구가 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A 작가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전시가 줄줄이 취소돼 작품 판매가 어려워졌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오프라인 위주의 거래 문화는 미술품 거래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미술품 거래가 음성화돼 위법적 행태들로부터 작가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거래자 신상이나 거래 가격 등이 불투명해 가격 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 현금 거래를 통한 탈세와 같은 문제도 발생한다.

계승균(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서 미술품을 거래할 땐 공식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현금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미술 작품의 가격 및 소유자,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갤러리 전시, 공모를 통한 작품 거래는 작가에게 금전적 부담을 지우기도 한다. 작품 판매 과정에서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A 작가는 “공모전이나 전시에 출품 신청만 하는데도 출품료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라며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신인 작가 B 씨도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려면 작업실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운송비, 재료비 등 많은 돈이 들어간다”라며 “이를 모두 자비로 충당하기란 어려운 일”이라 지적했다.

어렵게 작품이 판매된 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작가와 고객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갤러리가 30~50%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이다. 이는 작업 기반이 없는 신진 작가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A 작가는 “신인 작가의 경우 작품 가격이 그다지 높지도 않은데 갤러리에 50%씩 수수료를 낼 때면 허탈한 마음이 든다”라고 털어놨다.

작가의 창작으로 생긴 부가가치가 오롯이 작가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미술 작품의 경우 작가의 명망이 올라감에 따라 과거에 판매된 작품 가격이 크게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이익은 현재의 작품 소유자에게 모두 돌아가는 탓이다.

소설가나 음악가가 작품을 한번 내놓으면 인세나 저작권료로 지속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미술품 중고 거래의 특수성은 ‘억’ 소리 나게 높은 가격의 작품을 제작한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역설적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공공미술품의 진짜 문제는...

“문제는 조각가와 작품이 아니라 전문가가 배제된 입찰 과정이다” 미술계가 입을 열었다. 지난해 ‘저승사자’ 논란으로 번져 나간 공공조형물 전반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논란의 시작은 세종시 소방청 앞에 설치된 조각상 ‘저승사자’였다. 무섭고 흉측해 보인다는 이유로 ‘흥겨운 우리 가락’이란 원래 이름 대신 ‘저승사자’로 더 유명해졌다. 민원이 쏟아지자 이 조각상은 철거됐다.

‘저승사자’ 논란은 공공미술품 흉물 논란으로 번졌다.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설치한 공공미술품들이 기괴한 게 많다는 이유에서다. 2017년 서울로7017 개장 때 신발 수천 켤레를 늘어놨던 ‘슈즈트리’,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 ‘아마벨’ 등 과거 논란이 됐던 공공미술품들이 재소환 됐다.

이 논란은 문화예술진흥법 9조로 옮아갔다. 9조에 따르면 1만㎡ 이상 건축물을 신ㆍ증축할 때 건축주는 건축 비용의 1% 이하 범위에서 회화, 조각 등 미술작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미술 발전도 돕고, 삭막한 도시에 숨결도 불어넣자는 취지다.

하지만 ‘저승사자’를 계기로 공공미술품 논란이 일자 서울시, 경기도 등 각 지자체들은 공공미술품 관리를 더 강화했다. 미술계 불만은 관리 강화야 당연한 것이지만, ‘개선’이 아니라 ‘개악’에 가깝다는 이유다.

건축물공공미술작품 심의 강화방침에 맞서기 위한 TF의 이성옥 공동위원장은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된 수준 미달 조형물들은 조각가들을 배제한 입찰 병폐의 문제임에도 마치 조각가들의 커넥션이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며 “심의위원회 구성, 심의 기준의 일관성에 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서울시는 심사위원을 ‘80명 풀(pool)단’에서 ‘20명 고정제’로 바꿨는데, 이 가운데 조각 전공자는 6명뿐이고 그나마 특정 대학 출신에 쏠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수홍 공동위원장도 “미술이 아니라 조경이나 건축 분야 위원들까지 심사에 참가하는데, 이들로 하여금 예술성까지 평가하게 하는 건 잘못”이라 말했다. 문제는 조각가 비리가 아니라 엉터리 심사과정이고, 그 때문에 좋은 작품보다 남의 것을 대충 베낀 업체 측 조형물이 채택되는 게 문제라는 항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계는 ‘선택적 기금제’까지 의심하고 있다. 공공미술품을 설치하는 대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의 70%를 문화예술진흥기금에 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최근엔 이 돈을 해당 지역 시ㆍ도지사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도 마련됐다.

김정희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은 “이상한 조형물을 내세워 공공조형물 전체에 부정적 분위기를 조성한 뒤 작품 설치를 자꾸 부결시켜 기금으로 전환된 돈을 지자체장이 쓰려는 것 아니냐”며 “개정안 통과 등을 막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형건축물 미술작품 총체적 난국

대형건축물 미술작품은 설치를 둘러싸고 '리베이트'가 오가는 등 잡음이 무성하다.

대형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엔 전문 중개인이 개입한다. 리베이트' 의혹 등 잡음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또 작품선정 권한이 건축주에게 있다 보니 설치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발생한다.

인천시의 시내 공원과 건물 앞엔 모두 800여개 미술작품이 설치돼 있다. ▲3000만원 미만 224개, ▲3000만~5000만원 109개, ▲5000만~7000만원 92개, ▲7000만~1억 원 138개, ▲1억~2억 원 219개, ▲2억~3억 원 45개, ▲3억 원 이상 15개다. 나머지는 가격을 알 수 없다.

설치 과정은 건설 업체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시가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 협의체를 구성하면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작품 종류와 가격, 전시 위치 등을 심의하는 식이다.

건축주는 미술작품 설치 과정에서 주로 전문 중개인을 찾는다. 미술작품 없인 건물을 사용할 수 없어 법령에 맞춘 미술품 찾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작가 계약을 비롯해 작품 선정과 작업 진행 등을 맡은 건축주는 중개인에게 일을 맡기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와 작가 선정 문제 등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천지역 건축업자 김 모 씨는 "건물에 어울리는 작품을 찾기보단 대개 시공 조건에 맞춘 작가나 작품을 선정한다"며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공개입찰 할 때 일부 금액을 돌려주겠다는 중개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미술에 문외한인 건축주한테 미술작품 설치를 맡기니 전문 중개인을 찾거나 쓰던 작가를 쓸 수밖에 없어 비리가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단지에선 리베이트 관행이 더 노골적이다. 남동구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를 맡았던 이 모 씨는 "아파트 측에서 작품공고를 내면 2~3곳이 입찰 경쟁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사주체에 리베이트를 조건으로 내거는 업체들이 있다"며 "심지어 공개입찰이지만 내정자가 존재하는 경우도 많아 업체 쪽에서 항의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관리사무소 소장이나 입주자 대표 등이 작품 밀봉 서류를 몰래 확인한 후 공개회의에서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진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미술인들의 원성도 높다. 작품 공모를 대행하는 중개인들이 관례로 20~30%의 수수료를 가져가면서 작가에게 최소한의 재료비와 제작비만 배정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작가는 "작가는 수수료를 제외한 비용으로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며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설치 작품 사후 관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책임이 건물주에게 있지만 관리에 무관심한 곳이 많다. 부평구내 한 건물 조형물은 흡연구역 옆에 위치해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꽁초를 비벼 끌 정도로 방치돼 있다. 다른 건물 작품엔 쓰레기가 쌓여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시는 건물주 책임이라는 이유로 2년에 한 번 설치물이 신고 위치에 있는지만 확인한다. 시와 구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시는 조형물 설치에 대한 심의만 할 뿐이다"라며 "내부 비리나 사후관리에 대한 법적 권한 또한 시에 없다"고 말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대형건물과 아파트 등에 조형물을 설치할 때 시에 심의위원회가 있어 구에는 책임이 없다"며 "조형물 현황조사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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