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관계 등 그룹에 도움 되는 상대 찾아 그들만의 혼인문화 형성
범LG家 가장 광범위한 혼맥도... 삼성·현대는 의외로 소박한 혼맥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잘 생긴 재벌 3세 남자와 아름다운 여성의 사랑은 안방극장의 단골 소재이다. 드라마<시크릿가든>은 백화점 재벌3세와 스턴트맨 여주인공의 사랑을 그려 시청률 35%를 넘겼다. 재계에서는 결혼이 만사라는 말이 있다. 재벌들은 복잡한 혼맥으로 엮여 있다. 최근 재벌 가문에도 중매시대에서 자유연애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공정뉴스〉는 10대 재벌 중심으로 그들의 혼맥 문화를 3 번의 시리즈로 살펴본다. 재벌들의 결혼관, 결혼이유·특징 등을 알아보고, 아울러 이혼 양상까지 분석해 본다.

혼사(婚事)이 만사(萬事)다. 1960~1980년대까지 한국 재벌가문에서는 재벌과 유력 정ㆍ관계 자녀들이 정략 결혼이 러시를 이뤘다. 재벌가의 혼맥은 촘촘히 연결된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의 권력을 더욱 굳건히 하는 배경이 됐다. 재계는 정ㆍ관계 혼맥을 비즈니스로 연결, 기업을 키웠다.  1990년대 이후엔 권력의 중심이 자본으로 옮겨감에 따라 정관계 가문의 인기가 떨어지고 성장 배경이나 문화적인 공감대가 유사한 재계 내에서의 혼사가 활발해졌다.

재벌 혼맥 변천史

국내 재벌가의  결혼을 분석한 결과, 전체 367건 중 재벌가끼리의 결혼이 186건을 차지했다. 비율로 따지면 50.7%이다. 절반 이상이 겹사돈 관계이다.

가장 방대한 재벌 혼맥을 가진 기업은 범LG 구씨 일가다. GS, LS, LIG 그룹 등이 속한 범LG가는 '재벌 혼맥 허브'이다. 

GS그룹은 금호 석유화학, 중앙일보, 삼표 등과 사돈을 맺었다. LS그룹은 현대자동차, 두산, BGF리테일, 사조 등과 사돈을 맺었다. LIG그룹은 삼성, 한진 등과 연결돼 있다.

삼성, CJ, 신세계 등 범성성가도 LG, 롯데, 현대 등과 혼맥을 맺고 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건희 삼성회장은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중앙일보 회장)의 장녀 홍라희 전 리움관장과 결혼했다. 이재용ㆍ이부진ㆍ이서현ㆍ이윤형(사망) 등 1남 3녀를 뒀다. 홍 전 장관의 일가는 중앙일보와 보광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차녀 이숙희 씨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해 LG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재계 혼맥은 기업 간 혼사는 물론 정계까지도 이어져 있다. SK그룹 최종현 선대회장의 장남 최태원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결혼하면서 정계로 혼맥을 펼쳤다. 그러나 현재 이혼 소송 중이다.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 아들 김승연 회장은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의 딸 서영민 씨와 결혼하면서 정계와 연을 맺었다.

이처럼 창업주 세대와 그 2세대는 결혼을 통해 사업을 키웠다. 또 자녀를 통한 인연으로 정계 등 힘 있는 권력 기관과 유착관계를 형성해 영향력을 넓혔다.

그러나 3~4세대에선 달라졌다.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인연을 맺거나, 사내연애 후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사원 출신 임우재 씨가 있다. 당시 재벌 3세와 평사원의 결혼으로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화제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15년 만에 갈라섰고, 5년 동안 이혼 소송을 지속했다. 결국 이부진 사장이 임우재 씨에게 141억 원을 지급하면서 긴 싸움을 끝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도 일반인과 사내연애 끝에 2019년 11월 결혼에 성공했다. 이 둘은 김 전무가 2010년 한화그룹 차장으로 입사했을 때 만나 10년간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연 전 빙그레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환 빙그레 차장도 사내연애로 2017년 지금의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신부는 빙그레 식품연구소에서 근무했다.

SK그룹 장녀 최윤정 씨도 2017년 재벌가가 아닌 교제하던 일반인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최 씨는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4살 연상 윤 씨를 만나 교제를 이어갔다. 당시 그들은 '선남선녀 커플'로 불리기도 했다.

기업이 정계나 다른 기업과 사돈을 맺으면서 사업을 키우던 때는 지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사고방식과 문화의 변화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략결혼이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것도 있겠지만, 연애와 결혼만큼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과거와 달리 오너 2세의 자녀수가 적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다른 재벌가에서 자녀의 배우자를 찾기엔 그 수가 부족한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1~2명 정도는 재벌가와 사돈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데, 그 경우 사돈 집안 기업의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굳이 다른 대기업 집안이나 정·관계 인사 자녀와 결혼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연애결혼'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얽히고설킨 재벌 혼맥

국내 재벌家 혼맥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곳은 바로 'LG 家'다. 오랜 역사와 함께 비교적 많은 자녀들로 이룬 혼맥은 인연이 닿지 않는 기업들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무려 10남매의 아버지였던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 구자경 역시 4남 2녀를 뒀다.

구자경의 장남 구본무 회장은 전 보건사회부 장관 김태동의 딸 김영식과 결혼해 정계와 연을 맺었다.

구인회의 셋째 아들 구자학의 차녀 구명진이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넷째 아들 조정호와 결혼하며 한진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구인회의 차녀 구자혜가 대림산업 명예회장 이재준의 아들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과 결혼하며 대림과도 사돈 관계로 이어졌다. 구자혜와 마찬가지로 구자경의 손녀 김선혜는 대림산업 명예회장 이관제의 장남 이해욱과 결혼해 대림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은 화려한 혼맥을 갖고 있진 않다. 다만 차녀 이서현이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차남 김재열과 결혼했다. 차녀 이서현의 결혼으로 삼성家는 정계, 삼양사 그룹 등 유력 가문들과 연결된다.

김재열의 형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가 이한동 전 국무총리의 딸과 결혼했고, 삼양사 그룹과는 사촌 관계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연애에 있어 너그러웠던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9남매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화려한 혼사를 찾기 힘들다. 현대상선 현영원 회장의 장녀와 결혼한 정몽헌과 전 외무부 장관 김동조의 막내딸과 결혼한 정몽준이 그나마 화려한 혼맥을 가진 편다.

실제로 현대家 2세들은 수많은 자녀들로 화려한 혼맥을 만들어낸 LG 家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3세부터 이런 가풍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2세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연애결혼을 통해 결혼에 골인한 현대家 3세들. 현대家 2세 때와 달리 3세들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다 보니 사돈 가문 역시 화려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표와 사돈 사이인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 LG 家인 LS 산전으로 장가간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등은 대기업과 사돈을 맺었다.

대부분의 혼맥이 담백하지만, 현대家에서 유독 눈에 띄는 혼맥은 바로 정몽준 딸의 시가다. 신세계 그룹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는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 그의 셋째 딸 김영자는 GS 그룹의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하며 GS 그룹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이들의 장녀 허유정이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의 장남 방준오와 혼인하며 혼맥을 넓혀나갔다.

앞서 소개한 삼성, 현대家와 달리 자녀들의 혼맥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보인 금호아시아나 창업주 박인천이다. 박인천의 자녀들은 전 국회의원, 전 재무부 장관, 국회의원 등과 줄줄이 사돈을 맺으며 화려한 혼맥을 이어갔다.

박인천의 장남 박성용 전 명예회장은 당시 파격적으로 마거릿 클라크와 국제결혼에 골인했다. 그의 장남 박재영은 구자훈 LIG 문화재단 이사장의 3녀와 결혼했다. 구자훈 이사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 회장의 3남으로 알려졌다. 즉, 금호그룹은 LG그룹과 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박인천의 2남 박정구 회장의 자녀들의 혼맥 역시 화려하다. 장녀 박은형은 대우그룹의 창업주 김우중의 차남 김선협과, 차녀 박은경은 동국제강 회장의 손자 장세홍 한국철강 대표와 결혼했다.

박인천의 3녀 박현주가 대상그룹 창업주 임대홍의 아들 임창욱과 식을 올리면서 금호家의 혼맥은 더욱 화려해졌다. 이들의 장녀 임세령이 삼성家 이재용과 식을 올리며 삼성과의 연까지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금호家는 LG, 대우, 삼성 등의 가문과 혼맥을 통해 이어질 수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재벌가 혼맥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더라도 2,3세들의 결혼으로 작은 연결고리가 생기는 관계였다. 또 정·관계와의 인연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재계, 정계, 언론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재벌家들이다.
혼맥 비중도

범 LG는 재계 혼맥 비중이 36.8%를 기록했으며, 사회지도층으로 넓히면 57.9%로 비중이 높아졌다. 이어 범 삼성(48.4%), 범 두산(48%), 범 롯데(45.2%), 범 한진(40%), 범 현대(38.3%), 범 SK(31.8%) 순으로 사회지도층과 결합한 비중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를 맡은 리더스네트워크는 "10대 재벌 가문 오너 일가가 재계 등 사회지도층 집안을 결혼상대로 선호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사업 영향력을 높이거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혼맥만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재벌의 혼사는 사업의 한 영역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 집안과 혼맥 비중은 범 금호가 41.2%로 가장 높았다. 이어 범 한화(40%), 범 LG(36.8%), 범 두산(36%), 범 삼성(32.3%) 순이었다. 관료 혼맥 비중은 범 한화가 60%였고, 범 한진, 범 효성, 범 SK 등이 20% 이상이었다.

세대별로 보면 창업주에서 후대로 갈수록 사회지도층과 혼인으로 맺어지는 비중이 높아졌다. 1세대는 17.2%에 그쳤으나, 3세 이후는 50.8%로 절반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30대 재벌 혼맥도>를 펴낸 김진방(인하대) 교수는 “정치‧경제‧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예전엔 한정된 자원을 제도권 하에서 분배하다보니 특정 기업에게 금융 대출을 허용해준다든지 여러 가지 특혜가 존재했다”며 “과거 기업은 정계의 힘이 필요해 그들과 혼인을 맺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혼맥을 통해 경영승계를 하는 것은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아무래도 한국의 재벌들은 봉건적 경향이 남아있어 본인보다 못하다던가,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나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한국사회는 이제 일상의 혜택을 누리거나 특혜를 받는 것들이 이제 특정층에게 집중되지 않고, 기업이 정치권력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거나 그렇지 않는다”면서 “혼맥으로 기업 간 결혼이 성사되더라도 사회적 견제장치가 잘 작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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