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적 임금·복지 등 노동자 권리 보장이 우선... 비정규직 차별 철폐 ‘EU 노동정책’ 모범답안
-‘비정규직 권리입법·노동시장 3대 정책’ 병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삶의 질 정상화해야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공정뉴스〉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4부작 시리즈로 살펴본다. 우선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원인과 현재 상황을 알아본 후, 해결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고용형태가 아닌 ‘처우’가 본질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사용사유 제한 4법'을 발의했다. 근로기준법, 기간제법, 직업안정법, 파견법 등에서 사용 제한을 두는 이른바 '비정규직 사용 제한 패키지 법안'이라고도 불린다.

해당 법안은 현행법을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고, 부당한 인력 운영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한다는 명분하에 발의됐다. 내용도 응당 그에 따른 것들이 담겼다.

출산 및 육아, 휴직 또는 질병과 부상 등으로 기존 근로자 결원 발생, 사업 완료, 또는 특정 업무의 완성 기간을 정한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첫째. 파견법 전면 개정을 통해 특정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하는 경우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이를 어길 시 직접 고용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둘째다.

발의된 법안의 명칭대로 기간제 근로자, 파견근로자 사용에 대한 내용들을 일부 '보기 좋게' 손질했다. '사용사유 제한 법제화'는 2017년 일자리 로드맵을 통해 언급된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사용사유 제한은 결국 비정규직 근로자를 없애고,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겉으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이 법안이 왜 자꾸만 속 빈 강냉이처럼 느껴지는 걸까.

사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비정규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부터 짚어봐야 할 듯싶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을'인 노동자들, 그 속에서도 '슈퍼 을'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기간제, 파견 등의 고용형태를 비난하고, 철폐를 요구한다. 하지만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쟁취하고 싶은 승리가 과연 '비정규직 철폐'인가? 겉모습만 보고 쉽게 대답하자면 "당연하지"를 외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 알맹이로 들어가 살펴보면 답은 달라진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다.

그들이 바꾸고 싶은 것은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현격하게 차이 나는 임금, 직접 고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장받지 못하는 각종 복지 혜택, 4대 보험에 들어있다 하더라도 책임회피식으로 방치되는 권리와 같은 것들이다.

그저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과 고용불안 해소가 아니라, 비정규직이란 타이틀 아래 꼬리표처럼 붙는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개선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정부는 사용에 대한 원칙만 뜯어고치려고 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두고서 헛다리만 짚는 모양새다. 이러니 자본 좀 있는 기업들은 자회사를 설립해 '사용 형태'를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변환하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낮은 임금은 그대로 둔 채.

'고용형태'는 모두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과 수요에 맞게 다양해야 하고,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임금과 대우가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너무 불합리하니 다들 정규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임금도 낮고, 대우도 안 좋은데 고용까지 불안한 비정규직을 누가 반길까.

기간제, 파견직 근로자가 기업의 필요에 따라 한시적으로 고용되는 임시직이라면 늘 고정적 형태로 고정된 임금을 받는 정규직보다 더 높은 임금과 대우를 받아야 마땅할 것만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런 점은 지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비정규직의 임금이 올라 기업과 단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증가하는 것보다 고용형태는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으로 또 다른 '편법'을 만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교통사고가 많으니 도로와 차를 없애자는 식의 무모한 발상에서 벗어나 본질에 집중하자. 비정규직의 문제는 정말 '비정규직의 사용'인가, 아니면 '비정규직의 처우'인가. 현재 고용상 차별을 야기하는 것은 '고용형태'인가, 그들을 활용하는 기업과 사회의 '인식'인가.

EU 노동정책 벤치마킹

동일 노동을 해도 노동자의 신분에 따라 급여 차이가 난다면, 사회 전반에 차별 의식을 확산시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참고할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고용기간 이외엔 완전히 철폐한 EU의 노동정책이다. EU는 역내 노동자의 합리적 취업을 법제화해 모든 기업이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동일 직장에서 동일 노동을 할 경우, 동일 급여와 근무 시간, 휴가, 보험 제공 등을 의무적으로 이행토록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EU 노동법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임금 착취나 부당노동행위 등은 거의 발생치 않는다. EU 노동법은 고용주가 동일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의 작업장소를 빈번하게 바꾸는 것도 금지했다.

이에 따라 EU 28개 소속 국가 노동자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국적, 성,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다. 아프리카나 중동 난민이 목숨 걸고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것은 바로 EU 노동법에 의해 노동자들이 법적 평등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51년 만든 '동일 급여' 선언은 'EU 소속 국가 노동자들은 유럽연합 내 어느 곳으로든지 이동해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으로 EU 인권헌장과 노동법에 명시됐다.

분단국의 고통과 모순이 깊은 한국이 깊이 살피고 도입해야 할 제도가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통한 노동자 권익 보호조치다. 탈북자의 정착 문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로 해소할 수 있고, 먼 훗날 통일될 경우 남북 노동자 차별 요인을 해소할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

해외 노동력 급증에 따른 갈등 심화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서 그 대안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EU와 같이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합당하고,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비정규직 권리입법

신자유주의 20년 동안 노동시장 유연화 과정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날로 악화돼 왔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우선 비정규직 고용 남발로 인해 꾸준히 증가해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 규모를 감축해야 한다.

다음으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과 임금 등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아 양극화되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고용조건 개선을 추진키 위해 비정규직 주체형성의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추진하되, 지켜야 할 원칙들은 ▲2006년 식 노사 간 맞바꾸기가 아니라, 비정규직 권리입법이 돼야 한다. ▲비정규직의 내적 이질성을 인정하고, 전체 비정규직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입법화의 실현 가능성과 실질적 효과를 동시에 고려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비정규직 정책 대안의 기본 전제는 상시적 업무의 경우 국민 생명・안전 담당 업무와 함께 사용업체가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비상시적 업무에 한해서만 비정규직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의 책임을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에 대해선 사용업체가, 비상시적 업무의 비정규직에 대해선 사회가 분담한다. 이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선 비상시적 업무의 수요 시점, 기간,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산업・업종별 광역 지역단위에선 예측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비정규직의 총공급량과 사유제한 비상시적 업무의 총수요량을 관리하며 개별 수요와 공급의 매칭을 통해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개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장하도록 한다.

이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위한 재정지출은 비정규직을 고용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비정규직 사용을 통한 노동력 사용의 유연성이라는 혜택을 전유하는 사용업체들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하다.

상시적 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위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비정규직 권리입법의 과제들로 ▲노동자 개념 확대, ▲간접고용 노동자 사용규제, ▲(초)단시간 노동자 보호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과제는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생산방식 변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기존의 고용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고용관계들이 등장하며 전통적 노동자와는 다른 형태의 종속성을 지니는 노동자 유형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외양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속성을 함께 지니기 때문에 전통적 유형의 노동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노동법적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가 노동법・사회보장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용계약이 아닌 위임・위촉・도급계약 등 민・상법상의 계약을 체결해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인 것처럼 위장하도록 하는 악의적 사례들도 많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의 근로자 개념 정의를 확대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근로자 개념 규정들은 사용종속성 중심으로 협애하게 해석하고 있어(1994년 대법원판례) 관련 법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

노조법 제2조 제1호엔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타인을 고용하지 않은 자로서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

이를 “다른 사업주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로 개정해 경제종속성과 조직종속성도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과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으로써, ▲도급・파견 구분의 법제화 ▲불법파견 응징 ▲사용업체의 사용자 책임·의무 부과 ▲파견·용역업체의 책임・의무 부과로 구성된다.

용역노동에 대한 별도의 규제 장치가 없는 탓으로 도급을 위장한 파견노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법무부·노동부 공동의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과 함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설에 기초한 판례들에 의존해 도급과 파견이 구분되고, 불법파견 여부가 판단되고 있다.

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과 학설・판례들에 기초한 도급・파견 구분은 일관성을 지니기 어렵기 때문에 도급과 파견의 구분 기준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사용업체들은 현재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상당정도 면제받고 있는데, 그 자체가 사용업체의 간접고용 노동자 사용의 핵심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용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사용의 편익은 취하되 그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사용업체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적정 수준에서 사회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상의 근로자 개념 확대에 상응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실질적 사용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 사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동3권을 보장 받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정과 소득불안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견・용역 업체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고용한 고용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책임지도록 해 사용업체의 책임 분담을 간접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파견・용역업체는 노무제공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용업체에서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비파견 대기기간에도 고용업체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과제는 초단시간 차별처우 법규정을 철폐하고, 시간비례보호원칙의 부정적 효과를 교정하는 것이다. 현재는 주당 15시간미만을 노동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에 대해 사회보험, 노동복지, 고용안정성 등에서 차별 처우할 수 있도록 법제화돼 있다.

산재보험을 제외한 고용보험,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의 의무 가입을 면제하고, 유급주휴일・주휴수당과 연차유급휴가・연차수당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또 1년 이상을 근무하더라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규정된 퇴직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용업체들이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서 다수의 초단시간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것은 초단시간 노동 차별처우라는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란 점에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단시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채택한 시간비례보호원칙이 차별처우를 보강하는 부정적 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비례보호원칙의 부정적 효과를 교정할 필요성이 있다.

임금을 노동시간에 비례해 지급하는 교환적 임금과 노무제공 여부에 따라 지급하는 보장적 임금으로 구분해 생활보장성 임금은 동등하게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시장 3大 정책

비정규직 권리입법은 상보적 노동시장 정책과 함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우선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비정규직 사용의 사회적 규제만으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적절한 노동시장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그 핵심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강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시, 고용보험제도 확충이 있다.

우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취업보장 방식의 고용안정성을 제공해야 한다. 영리목적의 노동력 중개 사업은 구직자 재정 부담과 불법파견 등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구직자들이 유료 직업소개업체를 주로 이용하는 것은 공적·비영리 무료 직업소개업체들에 비해 양질의 일자리를 빨리 알아봐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해 중간착취를 해소하고,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스칸디나비아모델은 바람직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시해 취업 시 소득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조건 격차를 축소키 위해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처우를 금지해야 한다.

또한 고용형태를 넘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초기업 수준에서 실현해 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비정규직 사용의 인건비절감 인센티브를 제거해야 한다.

아울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불안정성 수당을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선 고용안정성 결여를 물질적으로 보상해야 한다. 사용업체에 대해선 비정규직 고용의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도록 하면 비정규직 고용 인센티브를 일정 정도 상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용보험 제도를 확충해 비취업 시 소득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제도의 비적용율이 60%를 넘는다. 따라서 고용보험 구직급여 수급 요건을 완화해 비정규직도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용보험 구직급여 수급기간을 12~24개월로 연장하고, 구직급여를 소득보전율 70% 수준으로 증액해 고용보험이 명실상부한 소득안정성 보장 효과를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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