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류호정 의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

정의당에는 심상정(4선) 대표를 제외하고 5명의 초선 의원이 있다. 모두 비례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배진교(초선) 의원은 선출직 구청장 출신으로 오랜 정치 경험을 인정받아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강의미(초선) 의원은 국회에 처음 입성했지만, 시의원을 2차례 연임한 이력이 있어 나름 정치적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비례대표 1번과 2번인 류호정, 장혜영 의원은 21대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청치 초년생이다. 비례대표 5번 이은주(초선) 의원도 27년간 역무원 노동자로 활동한 비정치인 출신이다. 

비례대표 1번인 류 의원이 21대 개원과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항상 21대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으면서 의정 생활 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 됐다. 올해 28세, 사회 초년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나이에 1인 헌법기관으로써 국리민복을 위해 활동하게 됐으니 무리도 아니다. 21대 국회의원 평균 나이는 54.9세이다. 

류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배정됐다. 애초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환경노동위를 우선순위로 신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게이머로 활동했고 민주노총에서 근무한 인연을 바탕으로 문체부나 환노위를 지망했으나 결국 3지망인 산자위에 낙점됐다. 청년여성 정치인으로서 “소외된 현장에서 노동자, 국민과 함께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던 류 의원은 산자위 배정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16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첫 업무보고에서 류 의원은 경북 경주 월성원전 내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과 관련한 정부의 대책을 추궁했다. 그러면서 "맥스터 증설 찬반 투표에 참여한 울산 북구 주민 5만479명 중 94%가 넘는 사람들이 월성원전 맥스터 건설에 반대했다“며 ”사용후핵폐기물 관리는 이제 10만년 뒤를 생각해야 하는 국민의 안전에 관한 문제이다. 안전을 우려하는 울산 주민들의 의견을 배제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25일에는 울산 현장을 찾아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운동본부’와 간담회를 갖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류 의원의 유월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이었다. 21대 국회 개원 이래 초선으론 드물게, 여섯 차례의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과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쿠팡 청소노동자 죽음에 진상 촉구 기자회견’ ‘코로나19 대학생 등록금 환급 촉구 기자회견’ ‘차별금지법 제정 참여 기자회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기자회견’ 등은 그가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점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정의당의 ‘블랙 스완’

정의당의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6월 3주 차 리얼미터 정기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4.4%로 열린민주당 4.5%에 뒤진 4위를 기록하더니, 일주일 뒤에는 그 간격이 더욱 벌어졌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실시한 6월 4주 차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정의당 4.2%, 열린민주당 5.8%로 나타났다. 21대 총선 때 드리워진 그늘이 아직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류 의원을 비례 1번으로 선택한 대가는 혹독했다. 21대 총선에서 기대했던 20석의 꿈이 허망하게 무너지면서 정의당은 겨우 6석 확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선거연령이 18세로 낮아졌고, 처음으로 준연동형비례제를 도입했지만 큰 힘이 되지 못했다. 대중적인 정책 발굴 실패와 거대 양당 비판에만 몰두한 타성도 참패의 원인이지만, 정작 선거를 어렵게 한 건 비례 1번에 대한 논란이었다.   

총선이 끝난 후 선거 실패의 원인을 “당의 핵심 가치인 ‘정의’를 결여한 사람이 그 당의 1번이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부모 찬스라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난하면서도 남자친구 찬스를 쓴 인물을 비례 1번으로 뽑은 것은 실수라는 것이다. 게다가 비난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도 소명할 기회를 주고 재신임을 고집한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청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랫동안 당에 헌신한 강상구는 최종 비례대표 후보에서 탈락했고, 당 대변인, 서울시장 후보 등을 지냈던 또 다른 차세대 대표주자 김종철은 20위를 차지했다.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서도 결과적으로 대중이 이해하지 못할 방법으로 비례 1번을 택해 비난을 자초했다.  

당의 간판인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 1번 심 대표와 2020년 정의당 비례 1번 류 의원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심 대표는 금속노조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던 노조 지도자였다. 류 의원은 게이머, BJ로 활동하던 게임업계 해고노동자였다. 그는 ‘대리게임’으로 자신의 게임 등급을 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공정과 정의를 자산으로 삼아야 할 정의당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지금까지 당을 이끌던 심상정(4선) 대표가 임기를 1년여를 남기고 사퇴를 결정했다. 심 대표의 조기 퇴진으로 당 쇄신의 몫은 비례 초선 5명에게 돌아왔다. 당은 비례 2번 장혜영(초선)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앉히고 8월 전당대회 준비와 쇄신책 마련을 주문했다. 

정의당이 길고 긴 혁신의 터널을 걷고 있다. 당의 지도체제뿐만 아니라 정체성 등 모든 부분을 ‘새롭게’하는 여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정의당이 이 어려움을 헤치고 대중 사이로 돌아올 수 있을까?” 모두가 묻는 말이다.

■ 그럼에도 ‘정치는 약자의 힘’

류 의원은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나름 값진 경험을 거쳤다. 대학 졸업 후 게임회사에 취업해 노조를 만들다 권고 해직 당했고 민주노총 화섬노조에선 선전홍보부장으로 경력을 쌓으며 노조 홍보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색만 화려하고 성난 얼굴로 투쟁을 외치는 무거운 홍보물 일색이었던 노조 스타일을 새로운 세대의 취향에 맞게 변화시켰다. 웹진도 만들고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홍보물로 변화를 주며 각광을 받았다. 노조 홍보물에 류호정이 있던 시대와 없던 시대로 나뉜다는 말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는 21대 1호 법안으로 ‘포괄임금제도 폐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장시간 노동, 공짜 노동의 주요 원인이 되는 제도여서 폐지가 꼭 필요한 법이다. 최근 대형 게임업체들이 포괄임금제 폐지를 선언하고 있지만, 노조가 없는 많은 영세 업체 노동자들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법을 폐지해야만 모든 노동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차별금지법 추진이다. 정의당도 지난달 31일 21대 국회 3대 핵심과제로 ‘불평등·양극화 심화 저지’ ‘사회 공공성 강화’ ‘차별 및 젠더 폭력 근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그린뉴딜추진특별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비동의강간죄’ 도입 등 5대 법안의 추진의사도 밝혔다. 이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법안은 배진교 의원의 대표 발의로 11일 국회에 접수된 상태다. 

류 의원은 벌써 4년 뒤 지역구 출마를 꿈꾸고 있다. 정의당 특성상 비례대표를 하면 당연히 지역구로 내려가 새로운 도전을 선택해야 한다. 이정미 전 대표도 그랬고 심상정 대표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지역구에만 3선을 하고 있다.

지역은 판교 테크노밸리 쪽을 염두에 두고 있다. IT 노동자로 근무했던 지역이고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선 ‘여성청년’이 정치를 한다는 건 큰 도전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어렵고 무모하게 보이는 정치에 도전하게 된 것은 그가 “정치가 약자의 도구”라고 믿기 때문이다.

▲ 류호정 이력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전)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근로자대표. (전)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 정의당 성남시위원회 부위원장. 정의당 경기도당 여성위원장. 정의당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 21대 정의당 국회의원(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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