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SK, M&A가 그룹자체이자 주력사업 모태... 공격적 M&A 지속 예상
M&A 보수파 삼성·LG도 M&A 강화 움직임... 롯데, 규모&빈도수 최고

 

#〈공정뉴스〉는 3부작에 걸쳐 우리나라 대기업의 대표적인 M&A 사례를 돌아보고, 최근의 트렌드도 살펴본다. 또한 앞으로 대기업들이 어떤 자세와 방법으로 M&A를 해야 할지 고찰해 본다. [편집자 주]

1990년에 개봉된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의 주인공 리차드 기어는 기업 사냥꾼이다. 적대적 M&A로 자산을 조각내서 팔고, 이득을 남긴다. 과거 기업의 영광이나 현재 임직원의 삶, 미래 가치 따위는 관심 밖이다.

그로부터 7년 후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IMF에서 돈을 꾼 우리로서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내몰렸고, 외국계 사모투자펀드가 손쉽게 기업들을 주워 담았다. 몇 년 후 외국계 사모투자펀드는 ‘먹튀’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을 되팔고 나갔다. 손에 큰돈을 쥔 채로 말이다.

벤처 붐이 일던 1990년대 후반에는 돈 한 푼 없이 기업을 인수해 몇 가지를 손질한 다음 차익을 남기고 팔아 치우는 전문 ‘꾼’들이 횡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M&A로 몸집을 불린 대기업들이 무기력하게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업 또는 자산을 사고팔고, 합치고 떼어놓는 일은 지금도 반복된다.

#대기업별 M&A 역사

M&A는 기업으로서는 큰 폭의 성장 또는 위기를 넘기는 수단이, CEO에게는 짜릿한 경험 또는 큰 모험이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기업이 ‘오래전부터’ M&A로 성장하고, 위기를 돌파해왔다. 한편에선 M&A가 독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SK
 

 

자산기준 재계 3위인 SK그룹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 빨간색 주유소 간판과 이동통신 광고가 아닐까. 현재 SK그룹을 이끄는 에너지와 통신은 둘 다 M&A로 시작됐다.

선경직물로 출범한 SK그룹은 섬유업계의 수직계열화가 한창 진행되던 1980년 대한석유공사 주식 50%를 671억 7800만원에 인수했다. 대한석유공사는 1982년 유공으로 이름을 바꾼 후 오늘날 SK에너지로 이어진다. SK그룹은 수많은 인수와 합병, 분할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을 사업 지주회사로 삼아 원유 정제업은 물론 각종 석유화학업도 수행하고 있다.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할 당시 사업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워커힐여행사와 선경식품 매각, 이듬해엔 선경반도체 해산, 선경유화와 워커힐교통을 내다팔았다. 그룹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또, 1990년대 중반까지 소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키우고, 해운업에도 진출했으나 주력사업은 석유화학과 에너지였다.

SK그룹이 또 한 번 도약한 계기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다. 당시에는 엄청난 고가인 4271억 원을 들였다. 한국이동통신 인수는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자마자 정치적 특혜 시비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한 아쉬움을 떨쳐내는 순간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이 현재 SK텔레콤이다.

에너지와 통신 부문 1위를 구가하던 SK그룹이 2011년에 다시 한 번 모험을 시도한다. 수차례 매각에 실패한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어 결국 승자가 된 것이다. SK텔레콤을 인수 주체로 앞세워 약 3조4천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당시 하이닉스 인수는 오히려 우려가 많았다. 하이닉스는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에 한참 뒤진 D램 분야의 2위 사업자였다. 대한석유공사나 한국이동통신이 국내 1위 사업자였던 점을 고려하면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더군다나 D램 가격 하락으로 하이닉스는 대규모 적자를 보였다.

그런데 하이닉스 인수를 완료하는 시점에 D램 업계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세계 3위인 일본 엘피다가 파산 신청하고, 다른 업체들도 감산에 들어가면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입지가 공고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D램 가격이 반등하며 SK하이닉스로 재탄생한 2013년에는 인수가격에 육박하는 금액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반도체는 에너지, 통신과 함께 명실공이 SK그룹을 이끄는 삼두마차가 됐다. 몇 해 전에는 CJ헬로비전과 OCI 머티리얼즈를 인수해 유료방송과 반도체 소재 사업 강화에도 나섰다.

#한화
 

 

2014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한화그룹은 삼성그룹과 놀라운 거래를 발표했다.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등 삼성그룹 계열 4개사를 한화그룹이 인수키로 한 것이다. 방위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을 동시에 강화하는 거래다.

사실 한화는 곧 M&A 기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국내 대기업 M&A 역사가 한화그룹에 새겨져 있다고 평가한다. 그룹의 주력인 한화케미칼은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에서 비롯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정아그룹, ▲한화갤러리아는 한양유통, ▲한화생명은 대한생명, ▲한화에너지는 여수열병합발전, ▲한화솔라원은 중국의 솔라원파워홀딩스, ▲한화큐셀은 독일의 큐셀 등의 인수에서 시작됐다.

태양광을 포함한 에너지와 석유화학, 금융, 유통·레저 등 그룹의 주력이 거의 모두 M&A를 통해 형성됐다. 김승연 회장의 수완도 좋다.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의 경우, 2002년 M&A 당시 누적 손실(2조3천억 원)을 2008년에 모두 털어냈다.

#두산

몇 해 전 신입사원 구조조정으로 비난 받은 두산 그룹도 M&A로 체질을 바꾼 대표적인 대기업이다. 두산그룹은 2000년 한국중공업, 2005년에는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했다. 현재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다. M&A를 통해 그룹 주력을 소비재에서 중후장대사업으로 바꿨다.

체질 변화는 1990년대부터 모색됐다. OB맥주 매각으로 신호탄을 쐈다. 자의 반 타의 반 뼈아픈 구조조정을 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M&A 시장에서 두산의 저력은 사업 재편기술에서 빛났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사의 소형건설장비부문인 ‘밥캣(현 DII)’을 인수하면서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다. 이러자 포장재 사업 계열인 테크팩 지분을 MBK 파트너스에 매각했다. 또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소주사업을 롯데에 넘겨 총 9천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특히 테크팩 매각 과정에서 MBK가 인수자금 절반을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두산이 테크팩 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하면서 부채로 떠넘긴 것을 인수키로 했다. 국내에서는 새로운 기법이었다.

2009년에는 사모투자펀드와 손잡고 설립한 두 개의 특수 목적회사(SPC)에 한국항공우주(KAI) 지분을 비롯해 두산 DST, SRS코리아, 삼화왕관을 매각했다. 매각 규모만 7800억 원에 달했다. 두산그룹은 2800억 원을 출자해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다. 2012에는 자본이냐, 부채냐 논란이 됐던 영구채 발행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시작됐다.

아울러 박용만 전 회장은 재무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해외 원천기술 보유업체를 인수했다. 또 이탈리아 방산 업체인 핀메카니카의 에너지·발전사업 자회사인 안살도에네르기아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이 비록 최근 건설경기 부진과 중국 중장비 사업 고전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으나 어떤 돌파구를 선보일지 주목받는다.

#금호아시아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승자의 저주’라는 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저돌적이라는 표현마저도 부족하다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은 2002년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우여곡절 끝에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대한통운까지 계열로 편입했다.

대우건설을 금호건설과 연결해 건설업체 1위로 올리고, 대한통운을 아시아나항공과 연계해 육해상 수송로를 장악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나도 소화하기 힘든 기업을 2년 사이에 둘을 먹었으니 배탈이 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당시 대우건설 인수자금은 무려 6조4천억 원. 이 가운데 절반을 18개 금융기관에서 빌렸다. 금호그룹의 현금창출력을 고려했을 때 채권단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 금호그룹은 담보로 대우건설 주식에 풋백옵션(매도 선택권)을 제시했다.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2천원에 미치지 못하면 주가 차액만큼 금호그룹이 보상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대우건설 주가는 한때 6천 원대로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건설 경기부터 때렸다. 결국 금호아시아나는 2009년 대우건설을 다시 내놓기로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4조1천억 원을 들여 대한통운을 인수했으니 위기는 그룹 전반으로 퍼졌다.

#STX

STX그룹이 2011년 하이닉스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에 참여할 때 시장은 물론 언론도 앞 다퉈 말렸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건설은 물론 조선과 해운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그룹이 수조원의 빅딜에 다시 참여한다니 우려가 컸다.

STX그룹은 현금성 보유 자산이 3조 원대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STX그룹은 본 입찰에 불참한 후 2012년 말부터 계열사들을 매각, 채권단 자율협약, 법정관리로 차례차례 밀어 넣었다.

쌍용중공업의 임원이었던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한누리컨소시엄을 구성해 2000년 쌍용중공업(STX엔진)의 지분 34.5%를 163억 원에 인수하며 STX를 일으켰다. 2001년 대동조선(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도 차례로 인수했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2007년 세계 2위의 크루즈선 건조업체인 노르웨이의 아커야즈(STX유럽)를 전격 인수했을 때다. 당시 유럽은 이름도 모르는 한국의 한 기업이 아커야즈를 인수하자 충격에 빠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 조선공업단지 투자와 함께 STX그룹의 차입금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 금융위기로 조선과 해운에서 구멍이 났다.

#삼성, LG, 롯데

2011년 6월 삼성그룹의 물류를 담당하는 삼성SDS가 대한통운 인수전 참여를 선언했다. 유력 인수후보였던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꾸렸다. 대한통운에 군침을 삼키던 롯데그룹도 놀랐지만, 옛 식구인 CJ그룹은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CJ그룹 인수 자문사였던 삼성증권이 자문계약을 철회하면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자극했다. 작은 아버지(이건희 회장)에게 허를 찔린 이재현 회장은 오기의 금액을 써내며 삼성SDS-포스코 연합군을 물리쳤다.

과거 M&A로 재미를 보지 못한 삼성그룹도 2010년 말 미래전략실을 설치한 후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대형 딜보다 주로 중소기술 업체로 치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또,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이 독일의 노바엘이디를 인수한 것처럼 해외 기업 인수에 역점을 두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그룹 내 사업 구조조정이 주춤하지만, 자문업계에 따르면 꾸준히 매물 검토 작업은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보다 M&A에 더욱 보수적인 LG그룹도 달라졌다. LG생활건강이 두각을 나타내는 가운데 그룹의 핵심인 LG화학과 LG전자도 부쩍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LG화학은 2014년에는 미국 수처리 역삼투 분리막(멤브레인) 제조사인 NanoH2O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등 서서히 존재감을 알렸다. 4년 전에도 LG화학은 동부팜한농을 5125억 원에 인수하며 2016년을 열었다.

해외 자원개발에 집중하던 LG상사는 방계회사이던 범한판토스를 인수해 그룹 물류를 강화했다. 다만, 하이엔텍과 웹OS 등을 인수한 LG전자가 업황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로 다소 주춤한 상태다.

롯데그룹도 신세계 등 다른 유통업체들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신동빈 체제가 갖춰진 이후 황각규 부회장 등 탁월한 참모진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M&A 실적을 올리고 있다. 롯데쇼핑은 중국과 동남아에서 유통업체나 복합쇼핑몰 등을 사들이고, 롯데칠성과 롯데제과 등도 동남아는 물론 유럽의 유명 업체들을 인수했다.

롯데는 M&A 규모와 빈도수 면에서 다른 대기업들을 압도한다. 다만 중국 등에서의 손실로 일부 사업을 철수하는 등 완벽한 성공이라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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