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수늘리기용’ 법안발의&법사위, 법안처리과정 딴지 걸기... 국민 속이고, 정당정치 의미 훼손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법’ 최고 입법으로 선정... 선심성 공약 → 공약 이행률 19대보다 소폭 하락

 

#〈공정뉴스〉는 20대 국회를 돌아보며 5편에 걸쳐 주요 사건과 입법 활동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 20대 국회 성적표를 바탕으로 21대 국회의 나아갈 방향도 함께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대 국회 법안 관련 전수조사

지난 2월 뉴스타파는 국회가 민생법안의 처리는 뒷전에 둔 채 건수 늘리기 법안발의에 충실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20대 국회가 가결한 법안 2497건을 전수 분석한 뉴스타파는 이 중 945건의 법안이 용어를 일부 변경하거나, 사실상 사라진 법률을 폐지하는 건수 늘리기 법안이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또한 국회의원들이 법안심사 소위를 늘리는 국회법 개정안에서 강제성을 제외시키고,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폐지하는 법안에 대해 소극적이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뉴스타파 는 ‘민식이법’과 같은 민생법안이 미뤄지는 동안 20대 국회에서 어떤 법안들이 처리됐는지를 전수조사 했다. 조사결과, 단순히 용어를 순화하는 ‘건수늘리기용’ 법안이 391건으로 전체의 15.6%에 달했다.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법안이거나 민생에 영향이 매우 큰 법안은 345건, 13.8%로 ‘건수늘리기용’ 법안보다 적었다.

이런 문제점은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한 민생당 황주홍 의원에게서 눈에 띄게 확인됐다. 뉴스타파 에 따르면 황 의원은 무려 696건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 중 407건이 ‘건수늘리기용’ 법안이다.

대표적으로 황 의원은 “회사나 기관 등 조직 내에서 여성들의 승진을 가로막는 이른바 ‘유리 천장’을 없애기 위해 조직 안에 ‘유리천장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이 법안을 모든 공공기관 관련법마다 개별적으로 개정안을 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황 의원이 제출한 ‘유리천장위원회’ 법만 모두 219건에 달했다.

‘건수늘리기용’ 법안은 국회의 작동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뉴스타파 는 ‘건수늘리기용’ 법안들이 법안 심사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그 피해를 국민들이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제윤경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서 법제관 1인당 업무부담은 1년간 18대 62건에서 20대 190건으로 급등했다. 또 법안처리를 담당하는 국회 상임위 소속 직원과 사무처 법제실 직원이 크게 늘어 인건비도 같은 기간 200억 원이 증가해 세금이 더 쓰였다는 점이 확인됐다.

‘건수늘리기용’ 법안의 문제는 일부 국회의원들도 인지한 사안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는 지난해 9월 25일 ‘건설업자’ 용어를 ‘건설사업자’로 변경하는 법안이 논의됐다. 회의록에서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이 법안에 대해 비판하며 “업자하고 사업자하고 뭐가 달라요?”, “이런 법 정말 수치스러워요”라고 발언한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건수늘리기용’ 법안이 유지되는 이유를 지적하기도 했다. 우선 내용과 상관없이 발의한 법안의 수가 많으면 ‘입법왕’으로 불리는 관행이 있다. 앞서 등장한 민생당 황주홍 의원은 ‘건수늘리기용’ 법안을 다수 발의했지만, 많은 언론이 검증도 없이 황 의원을 ‘입법왕’으로 소개한 보도를 냈다. 또한 현역 의원의 공천심사에 법안 발의 수가 반영된다는 점이다. 뉴스타파는 민주당에서 공천심사에 법안 실적을 반영한 영향이 컸다는 점을 지적했다.

‘건수늘리기용’ 법안과 함께 문제가 된 것은 법안처리 과정이었다. 법안 발의와 처리 과정에는 국회의원들의 문제도 있지만, 국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뉴스타파는 그 중 하나로 국회 법사위 문제를 짚었다.

지난 2016년 국회 환노위는 서류 전형에서 외모와 관련된 내용을 적을 수 없도록 하는 채용 절차 공정화에 대한 법률 개정안을 두고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사진 부착 금지가 쟁점사항이었지만, 토론 끝에 여야 할 것 없이 합의를 이뤄냈다. 사진 부착이 신원 확인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에서 2007년에 도입한 표준계약서에 이미 사진란이 제외돼 있다는 점, 상당수 기업들이 이미 사진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통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법사위를 거치며 맹점을 잃었다. 이미 환노위에서 논의된 사진 부착 문제를 법사위에서 또다시 논의했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이거야말로 법사위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라며 법안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새누리당 윤상직 의원은 “사진부착 금지 이렇게 하는 것이 과잉규제”라며 환노위의 결정에 반대의견을 냈다. 결국 이 법은 합의되지 못한 채 1년 10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1년 10개월 뒤 심사위원들이 대거 바뀌면서 논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김도읍, 이완영 의원이 환노위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본인확인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 결과 법안은 결국 사진 부착 금지 조항을 뺀 채 통과됐다. 환노위에서 이미 토의를 통해 이끌어낸 결론을 법사위가 뒤집어버린 것이다.

뉴스타파는 법사위 문제를 여당과 야당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실제로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폐지와 관련된 법률은 모두 여당의 주도로 발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여당에서 야당으로 위치가 바뀐 뒤에는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아울러 뉴스타파 는 법안처리 과정의 기초인 국회 상임위의 법안심사 소위원회 회의 개최일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대 국회의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 개최일은 665일로 1개 상임위 당 1년에 평균 10.3일이었다. 이는 1년 평균 11일을 개최한 19대 국회보다 줄어든 수치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들이 법안 심사의 기초가 되는 회의를 한 달에 한 번도 안했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일하는 국회법’이 등장했지만 법안이 시행된 이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 이유는 국회혁신자문위원회가 제시한 국회법 개정안에서 “법률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는 매주 1회 이상 개회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담긴 조항을 국회의원들이 반발해 빼버렸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국회 운영제도개선소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의원들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일부 의원들이 반발했고,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회의록에서 강 의원은 일하는 국회법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무슨 국민학교 어린이회도 아니고”, “무슨 5공 때도 아니고”라며 법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법안은 강제성이 사라진 채 타협됐고, 실효성을 잃었다.

반면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는 일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뉴스타파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월급과 관련된 법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추적했다. 20대 국회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 결과 국회의원 1인당 연간 4천7백만 원의 입법 활동비와 특별 활동비를 삭제하고, 현재 세금을 내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보수를 과세 대상으로 바꾸는 등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개정안 내용에 일부 의원의 반발이 이어졌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국회의원에게 차량지급이 없고, 행정부의 부처별로 쓰는 비용과 같은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줘야 되는 것, 당연히 받아야 되는 것도 못 받고 있으면서 있는 것 자꾸 내려놓는 게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고 발언했다. 앞선 내용과 함께 봤을 때 회의는 적게 하고, 특권은 많게 해야 한다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대표·공동발의 분석

중앙SUNDAY가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연구팀, 입법 빅데이터 분석업체 폴메트릭스와 공동으로 20대 국회 활동을 분석했다. 지난 1월 기준 대표발의 건수를 기준으로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황주홍(민생당, 696건) 의원이었다. 이어 박광온(더불어민주당, 387건)·이찬열(미래통합당, 323건)·김도읍(미래통합당, 237건)·박정(더불어민주당, 229건) 의원 등이 뒤를 이었다.

황주홍 의원의 대표발의 건수는 2·3위 의원들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의 매일 1~2개의 법안을 발의해야 가능한 숫자다. 발의 건수 10위 내의 다른 의원들도 2~3일마다 한 개씩 법안을 대표발의 한 셈이 된다.

대표·공동발의를 합치면 이찬열(미래통합당, 4544건) 의원이 가장 많은 발의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주홍(민생당, 4012건)·신창현(더불어민주당, 3703건)·박정(더불어민주당, 3060건)·김철민(더불어민주당, 2582건) 의원도 발의 건수가 많았다.

정당별로는 10위권 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7명(신창현·박정·김철민·김해영·윤관석·김정우·윤후덕), 미래통합당 2명(이찬열·이동섭), 민생당 1명(황주홍)이 올랐다.

자신의 대표발의 법안에 가장 많은 동료 의원의 참여를 이끌어 낸 ‘마당발’은 이동섭 의원이었다. 이 의원이 대표발의 한 법안에 총 239명의 의원들이 공동발의로 참여했다. 정운천(미래한국당) 의원은 221명, 주승용(민생당) 의원 217명,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214명, 이명수(미래통합당) 의원 211명, 정세균(더불어민주당) 의원 207명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두 거대 정당의 경우 공동발의가 주로 정당 내에서만 이뤄져 정당 간 협치는 활발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공동발의 건수 중 당내 공동발의 비율은 미래통합당이 92%, 더불어민주당이 90%에 달했다. 타 정당과 힘을 합쳐 공동발의 한 비율이 10건 중 1건에 못 미치는 셈이다. 특히 양 정당 소속 의원들이 상대 정당과 공동발의 한 건수는 5396건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공동발의 중 2%, 미래통합당은 5%의 비중에 불과했다.

반면 소수 정당인 정의당의 경우 당내 공동발의(41%)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의 공동발의(44%)가 더 많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바른미래당(5%)이나 민주평화당(3%) 소속 의원들과의 공동발의 빈도가 정의당 소속 의원들과의 공동발의(1%)보다 높았다. 한규섭 교수는 “다당 구조 하에서 원활한 입법 활동을 위해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개인별로는 황주홍(5814건)·이찬열(5649건)·최도자(1958건) 의원이 타 정당과의 공동발의 건수가 가장 많았다. 10위권 내에 있는 국회의원 가운데 과거 바른미래당 소속은 6명(이찬열·최도자·주승용·장정숙·이동섭·김관영), 민주평화당이 3명(황주홍·김종회·정인화), 정의당이 1명(윤소하)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은 톱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정당 간 협치에 대한 동기가 약했음을 보여줬다.

정당 간 거리는 2017년 대선을 기점으로 더욱 멀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국회의 대선 전후 공동발의 비율을 살펴본 결과, 대선 이전에는 전체 공동발의 가운데 약 43%가 정당 간에 이뤄졌다. 하지만 대선 이후엔 이 비율이 26%로 크게 낮아졌다. 한규섭 교수는 “대선 이후 높은 대통령 지지율에 기대어 집권 여당이 ‘협치’보다 ‘개혁’ 드라이브에 치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타 정당과의 공동발의 비중이 대선 이후 급격히 낮아지는 경향은 모든 정당에서 공통적으로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대선 이전에는 전체 공동발의의 약 30%가 타 정당 소속 의원들과의 공동발의였다. 하지만 대선 후에는 절반에 못 미치는 14%로 떨어졌다. 미래통합당도 대선 이전 26%였던 정당 간 공동발의가 대선 이후 10%로 하락했다. 대선 이후 양대 정당이 극단 대립하는 정국이 이어지면서 협치 의지도 약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20대 최고의 입법은...
 

20대 국회 입법 중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법'이 국민으로부터 가장 큰 호평을 받았다. 국회사무처는 국민 1만5880명에게 '20대 국회에서 처리된 법안 중 좋은 입법'을 조사한 결과, ‘특권 내려놓기 법’을 선택한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52.3%로 나타났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해당 법은 정치·행정 분야에서는 방탄 국회 방지, 의원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법이다. 이번 조사는 정치·행정, 경제·산업, 사회·문화·환경 등 3개 분야로 나눠 진행됐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법’은 전 분야에서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입법으로 선택됐다.

정치·행정 분야에선 음주운전 처벌 강화법(34.4%),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법(24.3%) 등이 뒤를 이었다. 경제·산업 분야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추진된 '제조물 징벌적 손해배상책임법'(37.7%)이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어 금융소비자보호법(30.8%), 건축물 안전 강화법(30.0%) 등으로 집계됐다.

사회·문화·환경 분야에선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한 근로시간단축법이 34.6%로 2위였다. 이어 디지털성폭력 방지법(29.4%), 감정노동자 보호법(21.9%) 등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지원단에 속한 전문가 82명은 규제샌드박스 3법(50.0%), 데이터3법(38.8%), 미세먼지특별법(30.5%) 등을 '좋은 입법'으로 선택했다.

아울러 역사적 의미가 큰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6,25전쟁 민간인 학살등 국가폭력에 의한 과거사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가 본회의를 2주 앞두고 국회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다. 이에 여야 행안위 간사들의 합의가 이뤄지며 본회의에 가까스로 통과됐다. 다만 배·보상 조항이 통합당 반대로 빠지게 돼 피해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밖에 ‘민식이법’을 비롯한 ▲어린이 사고 관련 법안, ▲근로시간 단축법,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방지법인 ▲미투법률안 개정, 패스트트랙법인 ▲공수처법, ▲검경수사조정법, ▲준연동형비례선거법 등 역사적 의미가 큰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됐다.

상임위 법안 처리율 순위

지난 3월 기준 의안정보시스템 국회 위원회별 통계에 따르면 17개 상임위원회 중 법안 처리율이 가장 높은 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로 접수된 법안만 1859건을 기록했다. 이 중 처리된 법안은 1243건으로 66%의 처리율을 보였다.

뒤이어 기획재정위원회는 전체 법안 접수 2134건 중 971건을 처리해 45%대의 처리율을 보였다. 보건의료 법안을 주로 다루는 보건복지위원회는 총 2601건이 접수된 가운데 1145건을 처리해 44%의 처리율을 보여, 3위에 링크됐다.

이 밖에 주요 상임위원회별 법안 처리율을 살펴보면 ▲국토교통위원회 43%(2247건 중 978건 처리), ▲국방위 41%(582건 중 241건 처리), ▲외통위 40%(460건 중 188건 처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36%(1314건 중475건 처리), ▲여성가족위원회 35%(404건 중 143건 처리) 등으로 집계됐다.

반면 행안위를 포함해 문체위 등은 19%대의 낮은 법안 처리율을 보였다. 특히 정보위는 10%의 낮은 처리율을 기록, 17개 상임위원회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공약 이행도 집중분석

선거공약을 분석ㆍ평가하는 시민단체인 매니페스토본부가 20대 국회의원들의 후보시절 공약과 임기 내 공약이행도를 분석했다. 매니페스토본부는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의원들이 내놓은 선거공약이 얼마만큼 정책으로 실현됐는지 따져봤다. 이번 평가와 분석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정책 중요도와 성격 등 정성평가는 배제하고, 공약 개수와 완료율 등 정량평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분석은 현역 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체평가서를 토대로 진행됐다.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 5명, 총리 및 장관직 4명, 평가서 미제출자 27명을 제외한 217명이 분석 대상이었다. 매니페스토본부는 공약을 국정ㆍ지역ㆍ입법ㆍ재정 등 유형별(중복가능)로 분류했다. 또 본회의를 통과했거나 필요재정이 모두 확보된 경우(장기계획은 확보가 예정된 경우)를 완료로 분류했다. 법 제정이나 개정 또는 재정확보가 필요하지 않은 공약은 사업종료를 완료로 봤다.

20대 국회의원들의 지난 4년 동안 선거공약 완료율은 50%를 넘지 못했다. 매니페스토본부가 지난해 12월부터 2개월간 공약 이행도를 분석한 결과 20대 의원들은 총 7,616개의 공약을 내걸고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임시국회 이전까지 완료율은 46.8%(3,564개)로 나타났다. 19대 국회의 51.2%보다 4.4%포인트 낮은 수치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약 완료율이 49.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자유한국당(47.7%), 대안신당(41.3%) 순이었다. 공약 완료율이 낮은 정당은 바른미래당(25.8%), 무소속 의원(26.4%), 정의당(29.6%) 등이었다. 정당 규모가 작고, 상임위 위원수가 적은 것이 입법과정과 재정확보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풀이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충북지역 의원들의 공약 완료율이 56.8%로 가장 높았다. 부산(55.6%), 경기(54.5%)가 뒤를 이었다. 공약 완료율이 낮은 지역은 충남(25.9%), 경남(30.6%) 순이었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정치인 중 공약 완료율이 가장 높은 의원은 심재권(강동구을) 민주당 의원으로 조사됐다. 총 63개의 공약을 내서 60개(95.2%)를 완료했다. 서영교(중랑구갑ㆍ92.0%) 민주당 의원과 박용진(강북구을ㆍ89.9%) 민주당 의원이 뒤를 이었다.

경기ㆍ인천 지역 의원 중에선 김정우(군포시갑) 민주당 의원이 총 39개 공약 중 36개(92.3%)를 완료했다. 대전ㆍ충청ㆍ강원ㆍ세종 지역 의원들 중에는 이후삼(충북 제천시단양군) 민주당 의원이 총 25개의 공약 중 19개(76.0%)를 완료했다. 광주ㆍ전남ㆍ전북ㆍ제주 지역 의원들 중에는 이춘석(전북 익산시갑) 민주당 의원이 46개의 공약 중 42개(91.3%)를 완료했다. 송갑석(광주 서구갑ㆍ88.2%) 민주당 의원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높은 공약 완료율이 곧바로 의정활동의 성실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후보 시절 제시한 공약 자체가 동료 의원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의원도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적은 공약을 낸 만큼 공약 이행도가 높게 나타날 수도 있는 셈이다. 따라서 후보시절 공약 개수는 의정활동에 임하는 자세를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분석을 진행한 이광재 매니페스토본부 사무총장은 “공약 개수는 계약서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만들어 내밀었냐는 의미다. 계약서를 보면 후보자의 자세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대 국회 전체 의원들의 평균 공약 개수는 35.2개로 집계됐다. 이 중 가장 많은 공약을 제시한 의원은 박정(경기 파주시을) 민주당 의원이었다. 총 116개의 공약을 내 이 중 65개를 완료했다. 이어 김종민(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민주당 의원이 110개, 강길부(울산 울주군) 무소속 의원이 101개의 공약을 냈다.

정당별 평균 공약 개수는 민주평화당(평가표 제출 의원 4명 평균)과 정의당(2명) 이 44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민주당 39.1개(106명), ▲한국당 31.8개(78명), ▲새로운보수당 30개(7명), ▲우리공화당 27개(1명), ▲대안신당 23.8개(6명), ▲바른미래당 23.3개(4명) 순이었다. 무소속 의원(9명)의 평균 공약개수는 33.7개였다.

하지만 모든 의원이 이처럼 많은 공약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20대 국회의원 중 10개미만의 공약을 내고도 당선된 의원이 10명(민주당 4명ㆍ한국당 4명ㆍ새로운보수당 2명)이나 됐다. 이는 일부 유권자들이 정책보다는 정당 또는 인물에 투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선은 정권 평가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공약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공약을 유형별로 살펴본 결과, 입법이 필요한 공약은 전체 공약의 15.4%(1,173개)에 불과했다. 입법기관의 일꾼을 뽑는 선거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입법공약을 가장 많이 낸 의원은 위성곤(제주 서귀포시) 민주당 의원으로, 총 26개(본회의 통과 50.0%)의 공약을 제시했다.

이어 ▲이명수(충남 아산시갑ㆍ25개ㆍ36.0%) 한국당 의원, ▲박정(경기 파주시을ㆍ23개ㆍ30.4%) 민주당 의원 순으로 많았다. 반면 입법 관련 공약을 한 개도 내지 않은 의원도 33명(한국당 15명ㆍ민주당 12명ㆍ무소속 3명ㆍ새로운보수당 2명ㆍ대안신당 1명)에 달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국회의원들은 법 제정이나 개정을 많이 해도 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입법공약에 소홀하다”며 “향후 총선에선 입법공약을 많이 낸 의원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에 대한 고려 없는 전시성 공약도 다수 발견됐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투입이 필요한 공약은 전체 공약의 59.1%(4,497개)를 차지했다. 그런데, 재정공약을 내놓고도 필요재정 총액을 산출하지 않거나, 제출하지 않은 의원이 33.2%(72명)에 달했다.

지방의원 출신인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재정추계를 못하고 있다는 것은 후보들이 공약을 급하게 만들다 보니 스스로도 어느 정도 예산이 필요한지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며 “해당 사업이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공약을 제시한 결과 사업추진이 더디거나 연기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확보재정이 현저히 낮은 사업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후보들이 재정공약을 내기 전에 해당 사업의 필요성, 방향성을 사전 검증한 후, 우선순위를 선별해 공약을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원들이 지역구를 대표해 국회에 입성한 만큼 지역공약은 전체 공약의 78.7%(5,886개)나 차지했다. 지역공약을 가장 많이 낸 의원은 강길부 무소속 의원, 김종민 민주당 의원, 박정 민주당 의원 순으로 각각 101개, 96개, 95개를 제시했다.

선수별 공약 완료율은 큰 차이는 없었지만, 다선의원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3선 의원이 49.4%로 가장 높았고, 4선 이상(48.3%), 초선(46.4%), 재선(44.2%) 순이었다. 이를 두고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물갈이’ 분위기와 이에 따른 인재영입이 공약 실천 측면에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김용호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은 “초ㆍ재선 시절에는 정치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과를 적게 낼 수밖에 없다”며 “3선 이상은 돼야 비로소 경험과 추진력이 생기는데, 선거 때마다 ‘물갈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다 보니 국회는 임기마다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번 평가를 통해 의정활동계획서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20대 총선에서 매니페스토본부는 후보들에게 ▲의정활동 목표, ▲국정현안 과제, ▲상임위 및 입법 활동 계획 등이 담긴 의정활동계획서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를 제출한 의원들(194명)의 공약 완료율은 48.6%로, 그러지 않았던 후보들(44명)에 비해 10.5%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의정활동계획서를 통해 후보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출마했고, 당선 후에 어떤 상임위원회에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등의 평가가 가능하다”며 “유권자들도 의원들의 의정계획서를 꼼꼼히 살펴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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