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로 OECD국가 대부분 사회복지제 신설·확대... 우리만 방역 성공에 취해 뒷걸음질
정부·기업 의지부족... 장기적 안목에서 노동자건강권 확보해야 미래 바이러스 대처에 도움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비상상황이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 특히 보건의료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스페인은 일시적으로 모든 병원을 국유화했고,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GDP의 10% 가량을 코로나 극복을 위해 사회복지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런 세계적 추세와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방역에만 신경 쓰고, 근본적인 보건의료복지에 대해선 무관심해 보인다.

물론 당장 방역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복지제도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태에 항상 임시방편적 대응만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부의 태도에 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의연)이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보의연은 최근 ‘상병수당제도와 유급병가휴가를 즉시 도입하라!’ 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민 모두, 특히 저소득층이 보건의료복지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 발표가 이뤄졌다.

이에 〈공정뉴스〉는 보의연의 전진한 정책국장을 찾아 이번 성명서와 관련된 구체적 의견을 들어봤다.

#최근 ‘상병수당제도와 유급병가휴가를 즉시 도입하라!’ 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코로나 사태에서 생활방역 1수칙이 ‘아프면 3~4일 쉬어라’ 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수칙으로 1수칙을 들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에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등 사회·경제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수칙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코로나라는 비상시국에 우리의 노동자들은 방역에 성공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이에 현실적 대책이 절박하다고 느껴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쳐서 근로능력을 상실했을 때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돈 문제다. 정부가 1년에 8,000억 ~ 1조 7,000억 원의 너무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며 제도 마련을 회피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정부의 태도가 괘씸하다고 생각한다.  건강보험은 누적 흑자가 20조원이다. 올해도 코로나 사태로 환자들이 병원 이용을 자제해 흑자가 예상된다.

가장 화가 나는 건 건강보험법상 20%를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불법 누적 미납금만 25조 원에 이른다. 한마디로 노동자보건의료에 돈 쓰기가 싫어 제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기업이 7.3%에 불과하다.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 3%, 서비스업 9.6%만이 취업규칙에서 유급병가를 정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들이 유급병가를 보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은 무한 이익 추구 집단이다. 회사 이익이 최우선이지 노동자케어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착취의 대상으로 본다. 착취를 해야 이윤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아파도 참고 일하러 나오게 하거나 쉬면 무급병가를 제공하는 게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무한 이윤추구 집단인 기업이 알아서 복지를 제공하리라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것이 문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부가급여)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 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으나, 아직까지 대통령령으로 정하지 않아 상병수당제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지 못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가?

“알다시피 대통령령은 시행령이다.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못하는 걸 보면 기업들의 이해관계, 기재부의 예산 핑계 때문인 거 같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6월부터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픈 노동자가 제대로 쉬고 치료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뿐 아니라, 맹아가 될 수 있는 제도까지 지방정부에서 시행 중인 셈이다. 중앙정부가 못 하는 일을 지방정부에선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가?

“상병수당제도와 유급병가휴가제 미비는 복잡한 제도적 장벽, 시스템 부조리 문제가 아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예산 사용과 관련 있다. 중앙정부는 보건의료에 쓸 예산을 다른 곳에 쓰고 싶은 거다. 기업지원이나 규제완화 같은 곳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보건의료에 쓴 것이다. 즉 서울시의 강한 의지가 작용해 실시하게 된 것이다”

#결국 상병수당 제도 시행은 정부 의지 문제로 보인다. 아프면 쉬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아프면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과연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건강보험보장성이 선진국은 보통 70~80%다, 한국은 최저급인 63%다. 그런데 말로만 보장성 강화를 말하고, 실제론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의료 영리화 추진, 비급여 증가 등을 병행하고 있다.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라고 본다. 만약 실제로 건강보험보장성을 실시해 효과를 보려면 상병수당제도가 필수다.

상병수당제도가 없으면 국민들이 민간보험에 의존하게 되고, 이에 병원은 과잉진료를 하게 된다. 상병수당제도를 실시하면 이런 고리도 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별로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전진한 국장은 노동자들을 위해 상병수당제도와 유급병가휴가제의 조속한 실시를 간곡히 바라고 있었다.
전진한 국장은 노동자들을 위해 상병수당제도와 유급병가휴가제의 조속한 실시를 간곡히 바라고 있었다.


#한국처럼 유급 질병휴가를 보장하지 않았던 미국이 최근 유급 질병휴가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럽 국가들도 유급병가를 확대하고 있다. 병가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 지원을 확대한 나라도 있다. 사회보장 제도로서 건강보험이 있는 나라 중 상병수당이 없는 곳은 이제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그래도 한국은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 비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미국보다도 훨씬 높다. 경제적 이유로 인한 미충족 의료도 많다. 의료비 보장이 잘 안 될 뿐 아니라 아프면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에 더더욱 치료를 못 받는 것이다.

그러니 아파도 치료 받지 못 한다. 의사가 선한 의지가 있어도 제도가 없으면 그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가 없다. 유럽 등 선진국처럼 우리도 제도적 보완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해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한국은 유럽과 달리 병가 등 유급휴가가 잘 돼 있어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동의하나?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유급병가가 OECD 평균 5~10일 이고, 네덜란드는 최대 2년을 보장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유럽은 기존제도 확대, 미국은 새로 신설하고 있다. 우리만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가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

이에 사회적 거리두기 지속은 상수로 둬야 하지만, 저소득층은 무한정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경제적 형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있는 사회·경제적 제도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달 박능후 장관이 건강보험 상병수당제도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어떤 방향으로 도입돼야 한다고 보는가?

“박 장관이 서울시 제도처럼 제한적이고, 선별적으로 도입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래선 안 된다고 본다. 서울시 제도는 중위소득 100% 미만에 한정해서 하고 있다. 중위소득이면 1인 가구 월 150~160 인데, 160 이상인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건 아니다. 우리도 외국처럼 시민권이 보장되는 전면적, 보편적 도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보건복지부 등 관련 기관에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 사태이후 미국과 유럽은 사회복지에 많은 예산을 쏟아 붇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초기 대응 성공에 취해 오히려 사회복지가 잘 돼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방역은 잘 하고 있지만,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한 근본적 대비는 전무한 상태다. 또한 이번 사태로 선진국들은 공공성과 복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우리는 재난 자본주의, 의료민영화에 방향성을 두고 있어 걱정이다. 이제라도 코로나 사태의 진정한 교훈인 사회복지제도 강화를 새겼으면 좋겠다. 그 중심에 상병수당제와 유급휴가제 실시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전 국장은 평일엔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주말엔 병원에서 진료를 한다. 노동자 건강권과 의료복지를 위해 일하다보면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이런 전 국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방역 성공뿐만 아니라 사회의료복지도 안착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Tip

1. 상병수당제도-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앓게 될 때, 요양에 필요한 비용 외에 따로 더 받는 수당. 일반 근로자의 휴업 수당과 같다.

2.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 정규직과 달리 유급휴가가 없고, 근로기준법상 유급병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용근로자, 아르바이트생, 1인 자영업자가 질병, 부상으로 아파서 입원하거나 건강검진 시 입원, 검진으로 인한 소득상실에 대해 1일 84,180원, 연간 최대 11일간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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