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갖춘 인재풀 확대→경영진 배제 독립적 선임→활동 평가지표 마련, 로드맵 구축해야
사외이사 선임 시 도덕적 판단-선임 후 시간과 노력 투자 필요, 주주와 거래소 역할론도 부상

 

우리나라에 사외이사제도가 생겨난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듬해부터다. 처음엔 상장법인들을 대상으로 도입됐다. 이후 2001년부터 증권거래법상 사외이사제도 운영이 의무화됐다. 대주주와 대표이사로부터 독립된 인사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어느덧 사외이사제도가 본격적으로 운영된 지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여러 논란은 해마다 증폭되고 있다. 사외이사의 전문성이나 독립성은 고질적인 지적사항이다. 관료나 경제계, 법조계 등 힘쓰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 위한 경쟁도 문제다. 주요 그룹 상장사에 사외이사로 있는 유력인사는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에 〈공정뉴스〉는 대기업 사외이사제도의 현황과 주요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상적 개선방안에 대해 분석해 본다.

사외이사제도 취지 부활 방법들

사외이사 제도의 핵심은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다. 이를 위해 우선 선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사외이사 제도의 본래 취지는 견제와 균형이다. 이 같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외이사 선임 절차를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다듬는 것이 먼저다. 현재 상장기업 대부분이 사외이사추천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상당수는 독립성이 결여된 채 운영된다.

미국의 경우 엔론 회계부정 사태 이후 도입된 ‘사베인스-옥슬리법’에 따라 경영진의 사추위 개입이 원천 봉쇄된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추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사외이사 자격 조건에 능력, 자질뿐 아니라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중요 요건으로 고려하는 등 실질적인 독립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이 경영진을 배제하고 전원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사추위를 도입하는 등 점차 선진화된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수나 경영진이 영입한 사외이사는 해당 인사권자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사외이사 후보군을 금융협회 등 제3의 기관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평가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사안에 대한 사외이사의 의견과 출결 상황, 이사회에서의 질문 횟수, 발언시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를 공개해 사외이사가 성실한 감독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도 “기업들이 주주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외이사를 지배주주나 경영진에 우호적인 인사로 채우려는 경향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사외이사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인력 풀 확대와 사외이사에 대한 정보제공 의무화 등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과도한 연봉 대신 교통비와 식비, 자문비 정도만 지급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대기업 사외이사의 단위 노동시간 대비 연봉은 과도한 수준이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회 운영도 보다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안건의 중요도에 따라 이사회 결의 방법에 차등을 두는 것도 방법”이라며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위원회는 분야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사들 간 이해 상충이 빚어지는 업무는 관련 이사를 미리 배제하는 등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의 이사회 의장 겸직 금지와 관련해 지금은 공공성이 중시되는 업종인 금융회사에 한해 원칙적으로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할 수 없게 돼 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13조 1항에서는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에게 맡기도록 하고 있다.

단, 2항에서는 사유를 공시만 하고, 선임 사외이사를 두면 이 같은 의무를 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경영 자율이 중시되는 재계 트렌드 역시 이사회 의장과 CEO를 분리해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퇴직 고위공직자 도덕적 판단 필요


KBS와 재벌닷컴이 분석한 결과, 권력기관 출신 고위공직자들의 10대 그룹 재취업 비율은 2018년 37%에서 지난해 44%로 상향됐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강화된 현행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에 의하면 퇴직일부터 향후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는 취업할 수 없다. 특히 고위공무원은 부서뿐 아니라 소속 부처 및 기관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는 취업할 수 없다.

그럼에도 퇴직 고위공직자의 업무관련성이 의심되는 사외이사 재취업 비율이 증가하고 있어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퇴직공직자 재취업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된다. 문제는 여러 가지로 지적된다.

우선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퇴직공직자의 편법을 이용한 재취업과 임의취업 등도 적지 않다.

또한 취업제한기간 3년 경과 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기관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의 경우 여전히 약발(?)을 발휘한다. 이는 법제도의 규제범위를 뛰어넘는 것이기에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에 맡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위공직자 출신이라면 최소한 재취업할 기업이 전관예우 차원에서 자신을 임용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경유착과 불법 로비 가능성이 있는 기업으로의 재취업은 스스로 자제하는 능력을 보여줄 때 우리 국민들의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질 것이다.

‘주주대표성 강화’ 묘수

“셀프(self)평가만 막으면 사외이사들의 자기 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이 강화될 걸로 봤다. 경영진에 대한 견제도 가능해지고. 그래서 ‘외부평가’를 하자고 한 것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사외이사 외부평가제 배경을 이렇게 전했다.

이는 2018년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가로막혔다. 금융위가 제출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외부평가에 대한 실효성 의문, ▲은행권의 반대, ▲이사회 참석률 등 단편적인 기준 중심의 평가 한계 등을 이유로 들었다. 결국 사외이사제도 개선을 위한 강제안은 무산됐고, 현실적으로 ‘운영의 묘’를 찾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런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주주대표성’ 강화라는 게 중론이다. 예컨대 지분 5% 이상 주요 주주들이 참여하는 ‘주주위원회’를 만들어, 사외이사 후보를 내는 것이다. 이는 법 개정이 필요 없고, 한국거래소의 상장규정이나 지배구조 모범규준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우리금융지주가 민영화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을 도입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사회의 주주대표성 확보를 통해 이사회의 경영감시기능이 강화되면 사외이사의 자기 권력화 문제, 외부세력의 개입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민연금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주주권행사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지배구조상 문제가 있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만 이사후보를 추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요 주주들의 적극적 경영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투자자 공시를 강화하는 5%룰 완화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5% 공시룰은 적대적인 M&A(인수합병)가 빈발하는 미국이 도입한 제도여서 많은 국가에서 시행하지 않고 있다.

박경서 교수는 "이사회의 주주대표성 강화가 가장 유효한 대안"이라며 "다만 국내 제도상 기관투자자가 주주로서 적극적인 경영참여 활동을 하기 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사에 대한 책임추궁 측면에서 주주소송 등 민사구제의 활성화도 법제도 개편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거레소가 나서야 할 때

·일본은 도쿄증권거래소 상장규정으로 기업지배구조 코드(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를 2015년 6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상장기업들이 이를 채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경우 채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원칙 준수-예외 설명 방식이다.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이사회 등의 책무를 규정한 ‘기본원칙4’ 항목의 세부 조항으로 ‘독립 사외이사를 2명 이상 선임’하도록 명시했다.

·2001년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은 15억 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러 결국 파산했다. 이후 회계 분야에서는 샤베인-옥슬리법을 제정해 ▲회계감독위원회(PCAOB) 설립, ▲감사인 독립성 강화, ▲기업 책임 강화, ▲재무공시 개선 등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해 상장회사 이사회는 독립이사가 과반수 이상 되도록 했다. 또 독립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 이사선임위원회, 보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2016년 말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은행 이사회는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 5명과 사내이사 2명, 예금보험공사 추천 비상임 이사 1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과점주주 쪽 이사들이 과반수를 넘는다. 과점주주 쪽 이사들은 당연히 과점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돼 있기 때문에 경영진 견제 등 주주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핵심은 ‘사외이사’가 아니라 ‘독립이사’다.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회사 바깥에 있는 교수, 회계사, 관료 출신 인사 등을 사외이사로 두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돼 있어 견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립 사외이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기업지배구조에서 중요하다.

우리나라 오너나 경영진은 껄끄러운 독립 사외이사를 싫어한다. 경영간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독립 사외이사를 강제로 두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기업들의 개별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규제에는 기업들의 반발이 크다. 다른 이사들과의 충돌로 회사 운영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현행 상법에서는 상장회사의 전체 이사 중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만 지켜지고 있고, 사후 감독할 주체도 마땅치 않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법보다는 거래소 상장규정과 같은 연성규제를 활용한다. 거래소가 적극적으로 나서 상장회사들을 관리 감독한다. 우리나라도 법으로 의무화해 기업들을 규제만 하기 보다 정부가 거래소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외이사로 선임될 수 없는 결격사유를 상법에 규정함으로써 사전 규제로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결격사유는 2년 이내에 해당 회사 업무에 종사했던 사람, 최대주주의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최대주주인 법인의 직원, 회사 모회사 또는 자회사 직원, 회사와 거래관계 등이 있는 법인의 직원 등으로 구체화돼 있다.

일단 회사 바깥에 있는 사람이면 오너, 경영진의 친구이거나 추천대상자도 사외이사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사외이사에 대한 임명권이 오너나 경영진에 있는 상황에서 ‘독립성’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미국은 거래소 상장규정에 독립이사의 요건을 규정해 놓고, 그에 더해 ‘이사가 독립적이었는지 여부’를 법원의 해석에 따라 사후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판례를 보면, 독립이사는 회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너나 경영진의 영향력 하에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안 된다.

여기에 더해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은 엔론 사태 이후인 2003년, 사외이사의 독립성 판단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경제적 관계 뿐 아니라 사회적, 인간적, 감정적 관계까지 따져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지수 법과경영연구소 소장(미국 변호사)은 “2003년 이후 사외이사 독립성 판단 때 경제적 이해관계나 지위 보상 등을 따지던 것에서 사회적, 인간적 관계까지 판단하게 됐다”며 “지금은 다시 좀 후퇴한 상황이긴 하지만 독립성에 대해 엄격히 판단하는 경향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면 턱없이 못 미친다. 지금이라도 사외이사의 독립성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형식적인 면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독립성은 반드시 강화돼야 할 부분”이라며 “대기업 대부분이 계열사에 사외이사를 먼저 선정해 전달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가 적절한 인물을 충분히 탐색하고 검증하는 공정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도 상장사 절반 정도가 준수하는 기업지배구조 코드에 독립 사외이사를 2명 이상 선임하도록 했다. 독립 사외이사는 오너, 경영진이나 소액주주로부터 독립적으로 회사 전체를 위해 의사결정 하도록 돼 있다.

권종호 건국대 교수는 “모든 기업들에게 획일적 지배구조를 강요하면 형식적으로 법을 지키겠지만, ‘오너나 경영진에 대한 견제’라는 법 취지에 맞게 사외이사제도 등이 운영되기 어렵다”며 “일본처럼 기업에게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준수할지에 대해 선택권을 주고, 공시를 통해 시장에서 평가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함께 논의하고 설득해서 같이 가야할 동반자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은태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은 “법이라는 강성 규제로 해놓았는데 제도가 법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 누가 감시, 감독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검찰이 할 것도 아니고, 금융위가 할 수도 없다. 연성 규제로 한다면 공공기관인 거래소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거래소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 제대로 일을 하려면, 정부가 거래소에 힘을 실어줘 선진국처럼 거래소의 기능과 역할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지수 소장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서 거래소가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우리나라 거래소는 매출이나 이익 등 재무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고들이 기업지배구조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거래소가 지배구조 감시 체제를 제대로 갖추고 실행력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 거래소도 상장 단계에서 지배구조를 살펴보고, 상장 이후에도 2년마다 점검하긴 하지만 그걸 강제할 메커니즘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상장폐지나 경고 등의 조치로 기업들을 압박하면서 바람직한 쪽으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거래소가 힘을 받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거래소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기고 있다. 이 소장은 “일본에서는 주주 이익 보호,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거래소를 주요 파트너로 삼았다”며 “일본에서는 거래소가 회사로 하여금 계속 깨어있도록 똥파리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우리 거래소도 그런 역할을 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거래소 상장규정 등 연성규제 쪽으로 정책 중심을 바꾸고 기업들과 함께 (기업지배구조 개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제도 3大 개혁방안

 

 

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CEO보다 건설적인 이사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기업 실적에 관해 대다수가'유능한 경영자'를 떠올리지만, 미국 및 유럽에서는 기업 성과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사회'를 떠올린다.

글로벌 기업의 혁신 성과에는 항상 유능한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부각된다. 반면, 국내 기업의 성과 및 실적과 관련해 이사회의 역할이 조명되거나 평가된 경우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사외이사 임기를 강력하게 제한한 이유는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제도에 관해 시민단체 및 학계로부터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가 CEO의 의사결정에 찬성만 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2019년 조사 결과,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 안건은 100% 원안대로 가결되는 진기록까지 수립됐다.

사외이사가 거수기에 머문 이유는 국내 기업들이 이사회의 역할 강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1997년 IMF 이전까지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다.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제도는 역사도 짧고, 전문성 역시 부족했다.

그 결과, 이사회에서 경영진의 주장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한 사외이사는 없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반대표를 행사한 사외이사가 해당 기업에서 연임되기는 불가능했다. 이에 비해 글로벌 기업의 이사회 멤버 중 80% 이상의 사외이사는 경영자 출신으로 구성돼 해당 기업의 경영자와 다른 목소리를 건설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사외이사는 경쟁사의 사외이사를 겸할 수는 없지만,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조치를 두진 않는다. 즉, 특정 회사에서 장기간 사외이사로 근무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은 보장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의 레빈슨 이사회 의장은 무려 20년 넘게 사외이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재계가 상장사의 사외이사 임기 6년 제한이 지나친 규제이자,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의 사외이사 제도가 임기를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기간 임기를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 기업의 이사회가 거수기가 아닌 능동적인 이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기업의 사외이사는 평균적으로 연 7회 이사회에 참석하고, 이사회 업무를 위해 연평균 100시간 넘게 자신의 노력을 투입한다. 또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때로는 견제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의 경우 이사회는 분기별로 1회 개최된다. 분기별 개최되는 이사회 역시 1시간에 그쳐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심도 있게 검토 및 판단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하다.

경영자에게 제대로 된 조언과 통찰력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거수기 역할에 불과한 현재의 사외이사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단순히 6년 임기 제한을 넘어 국내 사외이사 제도가 개혁, 개선되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해당 업(業)을 명확히 이해하고, 업계 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전문성 지닌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사외이사는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넘어 중장기 전략 수립 및 미래 리더십에 필요한 조언을 통해 기업 성장에 기여해야 한다. 국내 상장사 사외이사 상당수는 업종과 무관한 분야로 구성돼 경영자의 리더십 함양 및 경영계획 수립에 관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중장기 전략 및 장기성과에 대한 CEO 평가에 사외이사의 적극적인 견제 및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글로벌 기업인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사외이사는 CEO의 장기성과에 대한 비전, 구성원 존중을 기반으로 한 조직문화 등을 토대로 경영진을 견제 또는 지지한다.

반면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는 기업의 단기성과 평가에만 머물러 있다. 기업이 중장기 전략과 CEO 승계 계획 등을 체계적으로 준비, 수립하고 있는지를 사외이사가 제대로 심사, 목소리를 내야 국내 기업의 혁신 및 성과도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다.

마지막으론 사외이사가 이사회 업무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요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분기별 1회, 1시간에 불과한 이사회 진행은 경영자의 리더십과 기업 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김선제 한국증권경제연구소장(성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은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세부 내용을 주주총회에 보고하고, 사외이사가 기업 경영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평가해야 기업 성장에 기여하는 사외이사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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