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맘에 드는 이사 선임·사추위 위원은 기업 우호인사... 중요한 독립성 완전 훼손
-찬성 거수기로 영혼 없는 임무 수행... 방패막이용 전관 선임도 고질적 병폐


우리나라에 사외이사제도가 생겨난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듬해부터다. 처음엔 상장법인들을 대상으로 도입됐다. 이후 2001년부터 증권거래법상 사외이사제도 운영이 의무화됐다. 대주주와 대표이사로부터 독립된 인사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어느덧 사외이사제도가 본격적으로 운영된 지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여러 논란은 해마다 증폭되고 있다. 사외이사의 전문성이나 독립성은 고질적인 지적사항이다. 관료나 경제계, 법조계 등 힘쓰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 위한 경쟁도 문제다. 주요 그룹 상장사에 사외이사로 있는 유력인사는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에 〈공정뉴스〉는 대기업 사외이사제도의 현황과 주요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상적 개선방안에 대해 분석해 본다.

#사추위 위원마저 기업 우호적 인사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를 목적으로 설치된 대기업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사추위) 위원 10명 중 3명이 전·현직 임원 등 해당 기업에 우호적 인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사추위 설치가 의무인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161개사 중 명단을 공개한 156개사 사추위 위원 582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지난해 3분기 기준)에 따르면 34%인 195명이 기업 우호 성향으로 파악됐다.

CEO스코어는 ▲총수 일가·경영진과 학연(고교·대학교 같은 전공, 졸업연도 3년 기준), ▲해당 기업·계열사 임원 출신, ▲해당 기업·그룹과 자문 계약이나 지분 거래 관계에 있는 기업 소속 등 이해관계를 근거로 '기업 우호 성향'을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총수 일가가 사추위 위원장을 맡거나 위원에 포함된 기업이 16곳이었다. 한진칼 조원태 회장, GS·GS건설 허창수 명예회장, 고려아연 최창근 회장 등이 사추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정의선 수석부회장)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조현식 부회장·조현범 사장),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조현범 사장), 넥센타이어(강병중 회장), 카카오(김범수 의장), 한국금융지주(김남구 부회장), OCI(이우현 부회장) 등은 총수 일가가 사추위원이다.

총수 일가는 아니더라도 해당 기업의 대표 이사가 사추위원장인 기업은 삼성SDI(전영현 사장), 대한해운(김칠봉 부회장), 대우건설(김형 사장), 롯데케미칼(임병연 부사장) 등 29곳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대표이사가 사외이사 후보추천 절차에 관여하면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침해당할 수밖에 없고, 경영진의 사외이사 지배가 더 수월해진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과 GS리테일, 영풍은 사추위원 전원이 기업에 우호 성향 위원들이다. SK이노베이션과 한국타이어 등 26곳은 사추위원 절반이 우호 인사다.

재벌 총수가 직접 사외이사를 뽑기도 하지만 측근을 통해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도 있다. 결국, 경영진에 종속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총수가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이사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일부 기업은 아예 사외이사를 정해놓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형식적 절차만 밟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는 "어떤 기업은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사외이사를 맡아달라고 이야기한 뒤 헤드헌터 단계부터 절차를 밟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라고 지적했다.

#‘독립성‘은 먼 나라 이야기

상장사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한 핵심 요건으론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과 경영활동에 조언할 수 있는 전문성이 첫 손에 꼽힌다. 문제는 해당 기업으로부터 수 천 만 원대의 급여를 받을 경우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사외이사가 상당한 연봉을 지급받는 고용된 직원이나 다름없는데 견제와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외이사 제도는 경영진을 견제하자는 게 도입 취지였다. 전문가들이 기업 경영에 다양한 시각을 제기하고, 감시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매년 주총 때만 되면 독립성 논란이 일었다. 기업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연봉만 챙기며 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평균 80% 이상이었지만, 이사회 안건이 부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은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됐다.

특히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반대의견을 낸 것은 딱 한 번밖에 없다. 그것도 나머지 이사들이 모두 찬성해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를 보면, 박재완 전 장관은 2016~2017년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다. 박 전 장관은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중·고교·대학 후배다.

#찬성 거수기로 전락
 


지난 3월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59개 대기업집단 상장 계열사 267곳의 이사회 안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지난해 267개 사에서 2769회에 이르는 이사회가 열려 6332건의 안건이 취급됐다. 이 중 사외이사가 한 명이라도 반대(보류, 기권 포함)표를 던진 안건은 26건에 불과해, 99.59%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100%찬성률을 기록한 곳은 GS, CJ, 대림, KCC, HDC, S-Oil, OCI, 코오롱, 셀트리온, 세아, DB, 삼천리, 유진, SM, 호반건설, 하림, 미래에셋, 카카오, 동원, 한국투자금융, 현대백화점, 아모레퍼시픽, 태광, 영풍, 이랜드 등 43개 그룹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넘었다.

찬성률은 대우조선해양(93.94%), 대우건설(97.02%), 금호석유화학(97.05%), 농협(97.61%), 롯데(98.73%), 태영(99.21%), 한진(99.52%), 한화(99.52%), 금호아시아나(99.67%), 다우키움(99.69%), 한라(99.71%), 신세계(99.83%) 등의 순을 보였다. 족벌경영을 하지 않는 그룹에서 상대적으로 사외이사 찬성률이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개별기업별로는 267곳 중 253곳(94.8%)의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기권, 보류 포함)가 한 건이라는 있는 기업은 KT&G, 롯데쇼핑, 남해화학, NH투자증권, 대우건설 등 14곳에 불과했다.

#고질적 문제... 전관 선임

사외이사 선임 시 자주 논란이 되는 문제점은 전관이다. 전직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대다수 회사엔 1명 이상씩 있다. 그런데, 권력기관과의 관계를 생각해 퇴직 관료들의 임금을 챙겨주는 행위가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전관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3명의 사외이사가 각각 공정위, 검찰, 국세청 출신이다.

신한지주는 박병대 전 대법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POSCO는 사외이사로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 박병원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선임했다. 박 전 회장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냈다. KB금융지주는 선우석호 서울대 객원교수, 최명희 내부통제평가원 부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최 씨는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을 역임했다.

관가 및 정치권 출신 사외이사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사외이사에게는 경영진이 주요한 의사 결정 시 조언 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관 출신 인사들은 이런 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시선 때문이다. 대다수 의안에 주주권익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찬성표만 던지고, 수천만 원의 연봉만 챙겨간다는 오명이 따라붙는 이유다.

최근 의결권 자문사들은 전관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의견을 던지고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현대모비스의 사외이사인 이병주 전 공정위 상임위원에 대해 "2014년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매입과 관련, 현대모비스 이사회에서 일체의 권한을 대표에게 일임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며 재선임을 반대했었다.

반면, 재계는 관 출신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관과 소통하기 위해 이들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도 "이사회 구성이 너무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을 경우 전관도 사외이사로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관 출신 사외이사의 인맥에 기대는 것 자체가 국내 기업의 신뢰를 깎아먹는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관에서 직접 퇴직할 관료들이 어느 회사 사외이사로 갈 것인지 여부를 챙긴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대법관이나 검사장이 로펌 자문을 다 따로 받는 일반 회사의 사외이사로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의문"이라며 "기업이 전관의 로비력에 기대는 모양새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인력풀 빈곤... ‘사외이사깡’

이번 상법 개정안으로 불거진 문제점 중 하나는 사외이사 인재 확보가 난제 중 난제라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설문조사 전문 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상위 200대 상장기업(자산총액 기준·금융사 제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0개 응답 기업 중 50%는 사외이사 선임 시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인력풀 부족’을 꼽았다.

사외이사 후보군이 제한되다보니 한 사외이사가 여러 기업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는 경우가 생긴다. 삼성전자의 송광수 사외이사와 박재완 사외이사는 각각 두산과 롯데쇼핑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현대차의 이동규 사외이사와 이병국 사외이사는 각각 오리콤, LS산전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여러 기업을 돌아가며 사외이사를 맡는 경우도 있다. 정영록 KEB하나은행 사외이사는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김인배 하나금융 사외이사는 KB증권 사외이사로, 허윤 KEB하나은행 사외이사는 하나금융지주로 자리를 맞바꾸기도 했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다른 기업 출신을 영입하는 문화가 없다보니 이해도가 높은 같은 업권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경우도 드물다"며 "유능하고 경험 많은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나면 여러 기업이 사외이사로 영입하려고 경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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