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만들어낸 거짓 행복에 목숨거는 사람들

[사진=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사진=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수천 년 전 고대인들은 자연재해를 보고 '신의 노여움'이라며 두려워했다. 현대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많은 것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더 이상 자연재해가 '신의 노여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함에도 현대인들은 아직도 수천 년 전 고대인들이 믿던 종교·미신 등 을 믿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이단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일반적으로 이단종교 즉, 사이비 종교란 외형적으로는 일반적인 종교 집단의 형태를 가진다. 전통적인 기존의 종교적 교리를 교주의 주관적인 생각 등으로 과장 및 잘못된 해석으로 변질·변형시킨 종교이다.

 

사람들은 왜 종교에 열광하는가.

세상의 부나 학력이나 명예로도 마음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알지만 짊어지고 가야할 책임은 너무나 크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현실에 사람들은 지쳐있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현실에서는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기에 늘 공허하다. ·도박·마약·섹스로 채우려 하지만 그때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종교는 마음의 평안을 준다.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정해주고 사랑을 준다. 그래서 똑똑한 현대인들은 과학과 지식이 주지 못하는 것을 종교에서 찾는다.

[사진=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사진=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왜 사람들은  이단에 빠질 수 밖에 없는가.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무신론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숫자가 전통적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다. 전통적 기존 종교의 교리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기존 교리를 말도 안돼는 의미를 부여하여 변형시킨 이단의 허술한 교리에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존 종교인들 중에도 제대로 자신의 종교에 대한 교리를 모른 체 믿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존 교인들이 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교의 교리는 가르침에 바탕을 둔다. ‘가르침에는 듣기 좋은 사랑과 평안의 메시지도 있지만 질책의 메시지도 존재한다. 양약고구(良藥苦口)라는 말이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의미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충고는 귀에 거슬린다. 집에서 듣는 잔소리도 지겨운데 왜 또 충고를 듣냐 며 불만이다. 이런 교인들의 눈치를 보는 건 성직자들이다. 쓰던 달던 골고루 먹어야 건강할 수 있는데 써서 못 먹겠다고 아우성이니 마지못해 단 것만 준다. 영양의 불균형이 오는 게 당연하다. 이단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교리의 불균형 사이를 파고든다.

이단의 접근은 기존 종교의 교리를 내세우며 다가오기 때문에 처음부터 쉽게 알기 어렵다. 때로는 설문 의뢰로, 때로는 취미모임 등으로 다가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이들의 접근은 아주 달콤하고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단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그 속에 깊이 빠져버린 후가 대부분이다.

[사진=애니메이션 영화'사이비' 스틸 컷]
[사진=애니메이션 영화'사이비' 스틸 컷]

 이단임을 알아도 벗어날 수 없는 이들

드라마 구해줘2’의 원작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를 보면 변질된 종교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나약함과 욕망, 폭력성을 엿볼 수 있다. 수몰예정인 마을에 마을 사람들의 보상금을 노린 일당이 사이비 교회를 세운다. 애니메이션에서 씁쓸했던 장면은 죽어가는 아내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음을 알면서도 흡족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 칠성의 모습이다. 아내에게 자신이 주지 못한 행복을 사이비 교회는 주었기 때문에 그는 아내를 말리지 못한다. 그것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행복을 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 만큼 우리의 현실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 어렵다. 행복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이단은 사랑과 믿음이라는 달콤함을 가장해 다가온다. 이단은 현실의 차가운 벽과 외로움에 사묻힌 이들에게 구원이라는 명목으로 다가온다. 실상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마귀 같은 속임수 뿐이다.

이단 속에서 행복감을 맛본 사람들은 다시 예전의 고통의 현실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이단임을 알게 되도 현실을 부인한다. 행복한 거짓세상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치 않는다.

거짓된 행복은 결국 가정을 파괴하고 나 자신도 파멸한다.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종교마저 가짜가 판을 친다. 간절히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지만 가짜 때문에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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