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중근 '집ㆍ병원ㆍ법원'제한 조건부 병보석...공식적 활동재개 '눈살'
체어맨의 ‘휠체어 사랑’... 이건희, 정몽구, 정태수, 김승연, 이호진 감옥탈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는 주인공인 나이제(남궁민 분)가 VIP 수감자인 오정희(김정난 분)의 병보석을 위해 희귀병으로 진단서를 조작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나이제는 서서울교도소의 주도권을 놓고 선민식(김병철 분)과 한판 승부를 펼친다. 선민식은 교도소를 사실상 장악하고 VIP 수감자들에게 갖가지 병명으로 병보석을 줘 친인척이 운영하는 하은병원에 입원시킴으로써 부정축재 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 오너 등 ‘힘 있는 사람들’이 병보석을 악용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인식을 바탕으로 나왔다는 평가다. 회장님들의 ‘황제보석’에 대해서 알아본다.

이중근 부영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중근 부영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민단체, 이중근 재수감 촉구
시민단체들이 이중근(79) 부영그룹 회장이 이른바 ‘황제보석’을 누리고 있다며 재수감을 촉구하고 나섰다.

인천평화복지연대와 경제민주화네트워크는 지난 8일 이같이 주장하고 이 회장의 보석 취소와 재수감을 요구하는 시민 행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회장이 ‘황제보석’이나 다름없는 병보석으로 161일 만에 풀려났고 이후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며 “그러나 법원은 기존 보석 조건을 ‘3일 이상 여행하거나 출국할 경우 미리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보석으로 변경해 줬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이 회장의 혐의 대부분이 회사 경영과 관련돼 있다”며 “주거를 제한하지 않는 보석 결정으로 회사 등지에서 임직원들을 만나 증거인멸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재판부가 허가한 ‘황제보석’ 탓에 결국 이 회장은 증거인멸의 특혜까지 보장받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대표적인 사법 적폐로 규정하고 보석 취소와 재수감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시민 행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9일에는 이중근 회장의 황제보석을 취소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앞서 지난해 2월 이 회장은 4300억원에 달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를 비롯해 조세포탈, 공정거래법 위반, 입찰방해, 임대주택법 위반 등 모두 12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어 5개월이 지난 7월 이 회장은 “수감 생활로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며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어 지난 11월 법원은 1심에서 이 회장에게 5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구속된 후 20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병보석을 청구했고 법원은 거주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지정된 병원과 법원 출석 외에는 외출을 못 하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하지만 보석으로 풀려난 이 회장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노인회 회장 자격으로 지난해 11월 부영그룹 소유의 무주 덕유산리조트를 찾아 ‘2018년 대한노인회 합동 워크숍’에서 개회 연설을 했다. 이 회장은 올해 초 대한노인회 이사회에 참석해 총회 연설을 하고, 이달에도 대한노인회에서 열린 노인 정책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불거진 황제보석 논란
많은 재계 인사들은 구속이후 급격히 병세가 나빠져 휠체어에 의지하면 법정에 서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이 형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이러한 ‘황제보석’의 역사는 지난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조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그는 ‘휠체어 재판’의 원조로 ‘황제보석’의 혜택을 제대로 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 전 회장은 수서비리, 한보사태 등에 굵직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모두 일곱번의 유죄 선고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다섯 번의 실형을 받았다. 정씨는 97년 한보사건과 관련해 징역 15년형이 확정돼 5년 5개월을 복역하다가 고혈압·협심증의 병세로 석방됐다.

하지만 진단서를 발급해준 이모 전 서울대병원장이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병원비로 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무죄를 확정했다.
정태수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강릉영동대 교비 7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2심 재판 도중인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현재까지 해외 도피 중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휠체어와 인연이 깊다. 지난 2007년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에게 ‘보복폭행’을 가해 실형을 선고받은 김 회장은 재판정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김 회장은 2012년 8월 재벌총수로는 흔치않게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한화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들에게 거액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다. 하지만 이후 5개월만인 2013년 1월 수감 중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됐다.

휠체어에 탄 채 법원으로 출두하는 김승연 한화회장. (사진=뉴시스)
휠체어에 탄 채 법원으로 출두하는 김승연 한화회장. (사진=뉴시스)

 

‘청부폭행’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이윤재 피죤 회장,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2012년 실형을 선고받은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도 휠체어를 이용했다.
특히 이호진 전 회장은 2011년 140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4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전 회장은 실형이 확정된 후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 등을 이유로 수감 63일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어 법원은 2012년 집과 병원만 오가는 조건으로 병보석을 허가했다.

하지만 간암이라던 이 전 회장은 한 방송사 카메라에 술·담배를 즐기는 모습이 포착돼 법원은 지난해 12월 이 전 회장을 다시 구속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은 지난 2월 두 번째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될 경우 이 전 회장은 2021년10월까지 ‘옥살이’를 해야 한다.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도 병보석과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번갈아 가며 받았다. 그는 지난 2008년 12월 구속된 후 2009년 7월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아내고 이후 여러 차례 기간을 연장하다가 2009년 11월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휠체어에 탄 채로 법원에 출두하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휠체어에 탄 채로 법원에 출두하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고무줄잣대’ 병보석 비판 나와
유독 기업 총수 등 재계인사에게 집중되는 형 집행정지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이호진 전 회장은 지난 8년간 전직 대법관 2명을 비롯해 대부분 전관변호사로 구성된 100여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병보석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인 김남희 변호사는 “법원이 판결이나 법집행에 있어서 재계에 대해 유달리 관대한 처벌 한 건 사실”이라며 “유사한 병세가 있을 때 다른 수감자에 대해서 같은 처우를 할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진짜 위독한 병에 걸려도 병보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병보석을 받지 못한 대표적인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창신섬유 故 강금원 회장이다.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퇴임후인 2009년 4월 검찰에 배임 및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었다. 구속기간 지병인 뇌종양이 악화되어 진단서까지 떼어 보석을 신청했으나 거부되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후 보석이 허가돼 빈소 방문 후 수술을 받고 요양 생활을 했으나 2012년 8월 2일에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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