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 “여배우 10명만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 사명감으로 뭉쳤다”
"단지 여성의 이야기라서 뭉친 것은 아니다... 젠더만 생각하기보다 사람 전체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

 

국내 공연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한 작품에서 힘을 합쳤다. 23일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프레스 콜에는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오소연 등 10명의 여배우가 참석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했다. 남성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 작품은 오로지 10명의 여배우들이 극을 이끌어 간다.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사는 한 가족의 파국을 담고 있다. 권위적인 가장이자 미망인인 베르나르다 알바와 그녀의 통제를 받는 딸과 하녀들이 극을 이끌어간다.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의 결혼 발표 이후 자매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가족의 붕괴가 주 내용이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뮤지컬 <See What I Wanna See>로 유명한 미국 뮤지컬 작곡가 겸 극작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작품이다.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완성됐다. 이 작품은 2006년 미국 링컨센터 오프브로드웨이 극장 밋지 E. 뉴하우스에서 초연된 이후 드라마 데스크상, 외부 비평가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뮤지컬 <팬텀>, <시라노> 등을 연출하며 꾸준히 한국 관객을 만나온 구스티브 자작이 작품을 맡았다. 

한 가족의 파국을 담고 있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그 시대의 시대상을 담아 여성의 인권과 그들의 삶,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 절규, 행복을 담았다.

마르타리오(전성민 분)

한 집안의 유일한 남성이자 가장이었던 남편이 죽고 그를 이어 가문을 이끌어 가기 위해 권위적인 가장이 된 미망인인 베르나르다 알바(정영주 분)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통제를 받는 딸과 하녀들이 극을 이끌어간다. 권위적인 가장 베르나르다 알바를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려는 다섯 명의 딸 앙구스티아스(정인지 분) · 막달레나(백은혜 분) · 아멜리아(김환희 분) · 마르타리오(전성민 분) · 아델라(오소연 분)의 이야기다. 

베르나르다 알바(정영주 분)와 네 명의 딸, 막달레나(백은혜 분) · 아멜리아(김환희 분) · 마르타리오(전성민 분) · 아델라(오소연 분)

극 은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가 결혼을 발표하고 자매간에 갈등이 벌어지게 되는데, 여기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알바의 노모 마리아 호세파(황석정 분), 충직하지만 기묘하게 갈등을 주도하는 집사 폰시아(이영미 분), 베르나르다 일가에 대한 제3의 시선과 적절한 간섭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하녀와 동네사람들(김국희 분), 어린하녀(김히어라 분) 등이 가세하면서 극은 멈출 수 없을만큼 빠르게 끝을 향해 달려간다.

첫째딸 앙구스티아스(정인지 분)에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베르나르다 알바.
첫째딸 앙구스티아스에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베르나르다 알바, 그리고 그를 막아선 집사 폰시아(이영미 분)

 

이번 작품에서 연출을 맡은 구스티브 자작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세대 갈등, 억압받지만 자유를 부르짖는 여성의 이야기 등이 섬세하게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극 중 어린하녀와 그외 다양한 인물의 형상을 맡은 김히어라 배우
집사 폰시아(이영미 분)

 

이어 "정영주 배우가 한국의 '한(恨)'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 한이란 것이 이번 작품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베르나르다'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베르나르다가 왜 이런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여자가 됐을까... 그 이면에는 과거 남편으로부터 받았던 폭력과 성적학대 등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자가 이끄는 세계에서의 결과물이다. 대물림된 폭력의 결과물.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됐어야 했던 그녀의 폭력은 딸들과 연결되는 지점이다"고 덧붙였다.

마르타리오 (전성민 분)
아델라(오소연 분)

 

 

아울러 "베르나르다가 그간의 삶에서 배운 건 폭력과 억압에 의한 통제였다. 그녀가 배운 모든 것들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고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게 베르나르다의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어린하녀(김히어라 분)

 

작품을 쓴 로르카의 이야기를 한국의 감성과 사회적인 부분을 잇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던 그는, "억압받는 여성들, 세대 차이 등 로르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 지구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집안에서 억압된 여자들과 바깥 세상에서 열려 있는 남자들 이야기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고 부르짖는 소리를 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자유를 부르짖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노모 마리아 호세파(황석정 분)

 

연출을 맡은 그의 말에 베르나드다 알바 역을 맡은 정영주는 "일부러 들춰내서 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깊이 숨겨둘수록 지적받지 않고 흠이 되지 않을 본능에 대한 이야기. 지금의 지구인들은 (본능에) 충실하게 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막달레나(백은혜 분)

 

이어 정영주는 "꿈을 꾸면서도 그 너머의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것 같다. 부단히도 실패는 내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뭉뚱그려 놓은 작품이다. 10명의 여자배우가 연기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 이야기다"라며 "이제는 이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이고 또 용기 내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싶다"고 작품의 의의를 전했다.

앙구스티아스(정인지 분)

 

아울러 "우리 배우들도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라서 뭉친 것은 아니다. 젠더만 생각하기보다 사람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해서 보면 더 다양한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관전 포인트를 전했다.

아멜리아(김환희 분)

 

24일 개막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11월 12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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