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법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해도 실정법은 지켜야 한다는 이 말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70∼399)가 독배를 마시면서 한 말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는 거짓이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관한 플라톤(BC 427~ 347)의 책,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어디를 읽어보아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권유한  크리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소크라테스)  ... 하지만 살날이 얼마나 남지 않은 것 같은 노인이 뻔뻔스럽게도 가장 중요한 법률을 어기면서까지 탐욕스럽게 삶에 집착한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

(크리톤) 나는 할 말이 없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만두게나, 크리톤. 그리고 법률이 권하는 대로 하세. 신께서 우리를 그쪽으로 인도하시니까”  (『크리톤』의  마지막 부분)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 마지막 한 말도 "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고대 그리스의 의술의 신 - 필자 주)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 말고 기억해두었다가 그 분께 빚진 것을 꼭 갚아주게."였지, ‘악법도 법’이란 말이 아니었다. (『파이돈』의 마지막 부분)

그렇다면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어떻게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와전되었을까? 그 단초는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교수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제공했다. 그는 1937년에 펴낸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썼다.

‘실정법주의’는 현행 법률이 완전무결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독일의 법사상인데, 일본도 이를 중요시 했다.

한편 오다카는 경성제국대학 시절 한국인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고, 그의 제자들이 해방이후 한국 법학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오다카의 생각이 여과 없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국내에 널리 펴졌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인 1960년대에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런데 1989년에 나온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연구문제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 주제에서 공부한 바에 비추어 토론해 보자란 문제를 실어 '악법도 법이다'를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싣고 있었다. 이는 1960년대와 다를 바 없어 너무 경악스럽다.  

더 큰 문제는 2004년 초에도 중· 고교 교과서에 ‘악법도 법’이란 말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소개되어 있는 점이다. 2003년 11월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연구관들로 팀을 구성해 1년 가까이 초 · 중 · 고교 사회 교과서 15종 30권을 검토했는데, 이들 교과서에는 헌법과 기본권, 헌법재판 등에 대한 설명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곳곳에 있었다.
 
심지어 어느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시고 숨진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준법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 제시했다. 

그리하여 2004년 11월7일에 헌법재판소는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준법정신 강조 사례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교육인적자원부에 교과서를 고쳐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면서 소크라테스 일화를 준법정신과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 2004년 11월 7일)

‘악법도 법’이라는 말의 출처와 원전을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다니 참으로 분통터지는 일이다. 적어도 교과서 편찬자라면 플라톤의 『크리톤』은 읽어보고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실을 위한 치열한 검증은 학문이나 언론이나 필수이다. 더구나 거짓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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