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취소시 직원·주주·경영진 반발에 소송전 장기화 가능성
저가항공 시장 진입장벽 낮추는 계기 될 수도

진에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면허취소의 위기에 처했다. 일부 보도에서 국토교통부가 진에어에 면허취소 결정을 내리고 직원과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1~2년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즉각 부인했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질 경우 후폭풍은 더 거세질 전망이어서 국토부는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진에어, 면허취소 후 적용 유예?
<경향신문>은 국토부 등을 인용해 진에어 직원 고용, 소액주주 주식가치 손실 문제 등을 감안해 면허취소 후 적용 유예 대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지난 22일 보도했다. 이 보도 후 국토부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애초에 국토부는 미국 국적인 조현민(35) 전 진에어 부사장의 불법 등기이사 재직에 대해 면허 취소가 아닌 최대 5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가 이런 방안을 검토 중인 이유는 진에어 면허 취소 결정을 내릴 경우 조 전 부사장의 진에어 등기이사 재직을 확인하지 못한 10여명의 국토부 직원들도 면허 취소에 준하는 정직 이상 중징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담당 사무관·주무관 등 실무자들에 대한 동정론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일자리 문제를 고려한 청와대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여론은 싸늘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갑질’ 문화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행동에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대대적인 ‘갑질’ 문화 청산에 나선 문재인 정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할 경우 불똥이 정부에 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결국 여론의 압박에 의해 면허취소 후 적용 유예설이 나왔다. 국토부는 지금까지 법무법인 4곳에 의뢰해 진에어 면허 취소와 관련된 자문을 받았다. 법무법인 4곳 모두 법리적으로는 면허 취소가 가능하지만 구체적 사실관계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국토부는 또 다른 법무법인에 진에어 면허 취소가 가능한지 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주식과 고용 승계 문제는 충분히 검토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존 항공사가 진에어를 인수하면 고용 문제와 소액주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에 대해 진에어 직원들은 분노하고 있다. 익명의 한 진에어 직원은 28일 cbs <김현정의 뉴스 쇼>와의 인터뷰에서 “오너 일가하고 국토부 공무원들의 잘못된 짬짬이를 가지고 전 직원한테 연대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라며 “총수 일가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 자체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1~2년간 유예하는 대안에 대해서도 “결론은 면허 취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물컵 갑질’ 사건을 계기로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 2010년부터 6년 동안 진에어 등기이사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현행 항공사업법과 항공안전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은 국적항공사 등기임원을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항공면허 취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조 전 부사장이 2016년 3월 등기이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법을 소급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문제가 복잡해졌다. 면허 취소를 한다고 해도 행정소송으로 가면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저가항공 시장 진입 장벽 철폐되나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선 ‘항공산업 활성화를 위한 진입규제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모인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국토부를 비판했다. 국토부가 과당경쟁을 막는다는 논리로 저가항공 시장에 신규 진입을 어렵게 해 비효율적인 기존 항공사를 과도하게 보호하고 소비자 선택권은 줄이는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왼쪽부터) 홍승희 국토교통부 항공산업과 사무관, 김호태 공정위 시장구조개선과장, 김동민 충북일보 편집국장, 중원대 이준세 교수, 충남대 정세은교수, 민주당 윤후덕 의원, 미 북텍사스대 홍석진 교수, 세종대 황용식 교수, 민주당 이원욱변재일(얼굴가린이)의원, 한국당 김규환 의원.(사진=한원석 기자)
(왼쪽부터) 홍승희 국토교통부 항공산업과 사무관, 김호태 공정위 시장구조개선과장, 김동민 충북일보 편집국장, (앞줄)중원대 이준세 교수, 충남대 정세은교수, 민주당 윤후덕 의원, 미 북텍사스대 홍석진 교수, 세종대 황용식 교수, 민주당 이원욱·변재일(얼굴가린이)의원, 한국당 김규환 의원.(사진=한원석 기자)

홍석진 美 북텍사스주립대 교수는 “항공사가 몇 개 있어야 적정한지를 정부가 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신규 진입자가 들어와야 시장에 혁신이 일어나고 소비자 편익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는 “국토부는 경쟁을 제한하고 있는데 항공산업은 바다처럼 열려 있고 무한 경쟁을 한다”며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도 “항공기 한 대당 적게는 100개 많게는 26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진입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1978년 40년간 유지하던 미국의 항공시장 진입 규제가 철폐된 뒤 3년간 항공사 생산성은 두 배로 증가하고 항공권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국내 항공여객산업의 경쟁력과 서비스 품질 향상, 가격 하락,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진입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에어의 면허취소 후 적용 유예 및 다른 항공사의 진에어 인수에 대해 항공업계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가 자회사인 에어부산이나 에어서울 등을 통해 인수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인수 자금 문제로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날 참석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자본금 150억원, 비행기 3대에서 자본금 300억에 비행기 5대로 진입장벽을 높이려 하고 있다”며 “진에어를 인수하려면 주가를 포함해 예비비까지 최대 1조원까지 필요한 상황에서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진에어 사태를 통해서 경쟁을 저해하는 저가항공 시장의 무리한 진입장벽이 완화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정서상 ‘진에어의 면허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1900명에 딸린 식구까지 1만명의 생계가 달려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에서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솔로몬의 지혜가 발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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