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正 강풍에 바짝 언 여의도 ‘사정정국’
최경환, 원유철 의원은 시발...최종 목표는 정치개혁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검찰의 칼날이 매서워 졌다. 적폐수사의 칼날이 여의도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다. 국회의원 출신의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낙마했다. 야당의 최경환·원유철 의원도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이밖에 A, B, C 등 다수 의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내사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매서워진 검찰의 칼날 앞에 풍전등화가 된 여의도 정치권 현주소를 분석한다.

검찰의 적폐수사에 대한 칼날이 매서워졌다. 과거 정부 비리가 최종 타깃이던 종래 수사패턴을 벗어나 여야 정치권 모두를 향하고 있다. 사정(司正) 바람에 여야 정치권이 긴장하는 분위기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사정 정국으로 가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시절 국정원이 특별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여야 현직 의원 5명도 국정원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권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16일 국회정보위 전체 회의에서 한 야당 의원은 서 원장에게 “왜 박근혜 정부 것만 수사하느냐. 노무현 정부 등 과거 정부 때 것도 다 조사하라”고 했다.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은 “과거에 국정원 공작 사업비 갖고 386운동권들이 룸살롱 갔다는 의혹도 있지 않으냐. 그것까지 조사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서 원장이 “국정원 예산 자료는 5년 내 것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폐기하게 돼 있어 노무현 정부 때 자료는 없고, 특히 공작 사업비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답하자 한 의원은 “전산에 남아 있을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국정원 특별활동비를 받아 쓴 5명의 명단에 거론된 민주당 의원들도 서 원장에게 “왜 내 이름이 ‘지라시’에 거론되느냐”며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바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한국당 초비상, “야당 칼부림 수순” 주장
한국당은 초비상이 걸렸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과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거나 재판 중인 한국당 의원만 10명 안팎이다. 최경환 의원이 기재부 장관 시절 국정원 특활비를 받았다는 단서를 잡고 검찰이 수사 중인 사실도 이날 알려졌다. 최 의원 측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검찰은 또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원유철 의원 사무실도 압수 수색했다. 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5선 의원을 하는 동안 어떠한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위 위원장인 김성태 의원은 전 수석의 사퇴와 관련해 16일, “전병헌을 제물로 야당에 대한 대대적인 칼부림에 나서려는 수순”이라고 대대적 사정정국이 올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김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댓글공작 혐의로 김관진 전 장관을 구속하고, 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 국정원장들을 싹쓸이하듯 줄줄이 구속하려는 것으로도 모자라 야당 중진의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야권을 겨냥해 전방위적으로 대대적인 사정(司
正)에 나서고 있다”며 같은 당 원유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반발했다.

김 의원은 이어 “적폐청산을 빙자한 사정정국의 본질은 야당 탄압과 정치보복”이라며 “청와대 왕수석을 걸고 넘어지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정치쇼는 결국 야당에 칼바람을 예고하는 기획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여권도 심상치 않아
여권에서도 롯데홈쇼핑 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 소환을 앞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6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정무수석 임명 6개월, 언론보도가 나온 지 9일 만이다.

전 수석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 대통령에게 결과적으로 누를 끼치게 돼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며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없어 정무수석의 직을 내려놓는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롯데홈쇼핑 로비 의혹과 관련해, “과거 비서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저는 지금까지 그 어떤 불법 행위에도 관여한 바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15일 전 수석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 관계자는 “현재까지 수사 진전 상황 등을 감안할 때 당시 한국e스포츠협회회장, 명예회장인 전 수석 직접조사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 수석은 입장문을 내고 “언제든지 나가서 소명할 준비가 돼 있다”며 “검찰의 공정한 조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국 전 수석은 20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국회의원이던 2015년 7월, 롯데홈쇼핑에 압력을 넣어 한국e스포츠협회에 3억3000만원의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제3자 뇌물수수)를 받고 있다.

여권, 당시 미방위 전수조사 주장
19대 국회 당시 미방위 위원이었던 최민희 전 의원은 13일 자신의 SNS에서 “검찰은 2015 롯데홈쇼핑 재허가 과정에 대해 미방위원, 미창부장관 등 전수조사하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최 전 의원은 이어 “전병헌 전 야당의원의 영향력과 당시 여당이었던 구 새누리 미방위원들 영향력은 어느 쪽이 강할까? 최소한 구색맞추기는 해야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때늦은 반응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 수석 문제가 보도된 지 열흘 가까이 지나 뒤늦게 논평을 내는 등 일반적인 야당의 움직임과 사뭇 다르다는 것. 정봉주 전 의원은 팟캐스트 ‘정봉주의 정치쇼’에서 “보통 청와대 정무수석이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고 하면 자유한국당이 거품을 물고 난리가 나야 한다”며 “사퇴 촉구 얘기가 안 나오고 있다”고 의문을 표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롯데 홈쇼핑이 재승인을 받은 시점은 2015년 박근혜 정부’라며 허가를 내준 미방위의 과반수를 차지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도움을 받은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19대 국회 미방위 의원 중 새누리당 출신은 총 12명이다. 당시 미방위원장이었던 한국당 홍문종 의원과 미방위원이던 강길부·이군현 의원은 20대 국회에도 있다. 나머지는 낙선하거나 출마하지 않은 조해진·권은희·민병주·류지영·신의진·이재영·서상기·심학봉·박창식 전 의원이다. 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상동 부장판사)는 방송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롯데 홈쇼핑 강현구 대표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방송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대관 로비 명목으로 상품권 깡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부외 자금을 조성한 뒤 정치인 등에게 후원금 명목 등으로 지출했다”고 적시했다.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금 수천만원을 보낸 것이다. 국문호 정치평론가는 “검찰은 롯데측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로비를 다 해놨는데 (전 수석이) 승인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니,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후원금 3억원을 낸 것이 아니냐고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검찰은 롯데홈쇼핑 의혹과 관련해 최근 수사팀 인력을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과 검찰 등에서 나오는 말을 종합하면, 전 수석 의혹이 불거지기는 했지만 더 큰 그림으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검찰 수사에 대해 여의도 정치권의 한 인사는 “검찰이 변창훈 검사의 죽음으로 내부 분란이 일자 이를 덮기 위해 사건의 방향을 정치권으로 턴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개혁할 수 있는 기회인데, 자신들의 내부문제를 수술하지 않고 정치권 수사에만 집중한다면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을 먹다가 끊으면 내성만 키워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듯이 국가의 적폐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뿌리 뽑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 얼핏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은 지난 2014년 7월 내각 임명장 수여식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이 말을 반면교사로 삼아 ‘적폐청산’에 나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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