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무형문화제 53호,대한민국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문화재

▲ 전통의 맥을 잇는 전북 김제 옹기장인 안시성
옹(甕,瓮)은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시대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에서는 “사람에게 소용되는 것으로 도기(陶器)는 가장 필요한 그릇이다. 지금의 마포, 노량진 등지에서는 진흙 굽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이는 질그릇 항아리, 독 종류이다”라고 하여 생활용기로서 독의 중요성을 기록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1990년에 전남 보성의 이내원 씨를 기능보유자로 지정하였고, 지방에서는 청송옹기장 이무남 씨와 전북 김제의 안시성 씨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공정뉴스>에서는 부거리 옹기장 안시성 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부거리 옹기마을>
전라북도 백산면에 위치한 부거리 옹기마을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에 의해 설립되어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옹기가마 6개에서 활발한 제작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 중 5개가 소실되고 안시성 옹기장이 운영하는 옹기가마와 작업장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부거리 옹기가마는 직접 장작을 피워 사용하는 전통 방식으로, 구릉지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가마가 놓일 자리를 마련하고 전통적인 수제 흙벽돌을 쌓아 가마를 구축하였다. 천장에 난 작은 불구멍으로 땔감을 넣어 전체의 온도를 일정하게 조절하기 때문에 가마가 길어도 균일한 소성이 가능한 조상의 슬기가 그대로 남겨진 근대역사유적이다. 더구나 현재까지도 아궁이 부분 일부만 파손되고 그 원형이 제대로 살아있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 403호로 지정되었다. 부거리 옹기가마는 대한민국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문화재로서의 그 보존가치가 크다.

▲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전라도 옹기의 전통을 유지해가는 노력이 존경스럽다. 옹기에 매료된 계기는 무엇인가.

- 대학에서 도자기와 옹기를 만드는 곳에 견학을 다닌 적이 있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큰 크기의 옹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동경에 가까운 매력에 사로잡혔다. 옹기는 도자기로 취급받지도 못했고 서민들의 자잘한 생활용품쯤으로 인식되던 때라 주변 사람 모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우리의 흙으로 서민 생활에 필요한 옹기품들이 만들어지는 것에 친근함과 더불어 애정마저 생겨났다.

1991년에 친구들과 함께 부거리 옹기마을에 참여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은 다른 분야로 떠나갔지만 옹기에 대해서 더 깊게 배우고 싶은 욕심에 옹기를 꾸준히 마주하다보니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지만 투박한 옹기에서 느껴지는 멋과 매력은 지금까지도 늘 느끼고 있다.

▲ 전라북도 무형문화제 53호 김제 부거리 옹기장 ‘안시성’
▲ 옹기분야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특별함은 무엇인가?

- 부거리 옹기는 투박하다. 보면 볼수록 그 속에 담긴 멋과 특유의 맛이 느껴진다. 부거리 옹기를 만드는 기술은 이곳에서 옹기를 굽던 고(故) 변동순 선생님께 전수받았다. 변동순 선생님은 그 아버님 때부터 충남지역에서 옹기를 만드시던 분이어서 자연스럽게 기술을 전수받으셨다. 그분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시면서 옹기를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알고 계신 분이었다. 그 노하우로 만들어진 이 지역 옹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옹기의 어깨부분이 넓은 것이다. 옹기는 지역별로 생김새부터가 다른데 북쪽은 날렵하고 남쪽으로 갈수록 배가 튀어나와 있다. 그 이유는 지역간의 온도에 맞게 만들기 때문이다. 북쪽은 대체로 차가우니 날렵하게 만들어 옹기 사이에 바람이 덜 통하게 하고 남쪽은 날씨가 더운 날이 많아 일부러 배를 나오게 만들어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옹기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생활의 명품이다. 둘째로는 만드는 방식이 간편하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흙을 개어 코일 형태(떡가래라고도 한다)로 옹기를 만든다. 전라도와 제주에서는 쳇바퀴를 통해 만드는데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방식이다. 쳇바퀴를 사용하면 만드는 것도 무척 간편하다.

그 외에도 옹기가 친환경적이고 인체에 해가없고 살아 숨 쉬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 않나

▲ 부거리 옹기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은?

-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 가면 어린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늘 공연을 관람하고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생활 속에서 문화를 향유하게 되니 그에 대한 자부심과 문화적 감성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성장위주의 산업사회를 강조하면서 생활의 편리함은 나아졌을지 모르나 그 때문에 많은 전통적 가치들이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이 땅의 역사와 민족의 애환이 깃든 전통문화들은 반드시 기억되고 계승되어야한다. 그 측면에서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현장학습부터 자주 시행하고 있다. 흙을 만지고 가마 속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불을 지피기도 하면서 스스럼없이 옹기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전통을 몸에 각인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금도 옹기를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큰 숙제다. 경제적 논리만으로 전통을 판단하려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은 살아야하질 않나. 이 딜레마에 대해 정부와 각 부처의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 부거리 옹기뿐만이 아니라 전통문화에 대한 계승방안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한다.

 

 
▲전통적인 옹기의 현대적 활용할 방법은?

-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해서 접시나 다기와 같은 생활 소품과 디자인 용품도 개발하고 있다. 그런 것은 요즘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으며 동호회나 민간에서도 만들어지고는 있다. 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 개발을 주 목표로 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고 옹기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들을 찾아나가야만 한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옹기는 모두를 위해,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전통 옹기에 현대 과학을 접목하여 시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가야하지 않겠나.

▲ 부거리 옹기에 대한 앞으로의 비전은?

- 옹기를, 전통을 알리고 생활 속으로 들어가고 이어가는 것이다. 이미 자비를 들여 해외 도공들과 국내 장인들을 초청해 작은 축제도 열어보았다. 터키나 중국의 도예가들이 우리의 흙으로 그들의 작품을 만들어 제조 기술과 작품의 방향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나누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일부 일반인들의 요청으로 작품제작도 해보았지만 그런 단발성 이벤트로는 우리 것을 지켜가는 데 무리가 있다. 좀 더 많은 전문가들 사이의 교류나 문화적 참여를 이끌어내었으면 한다. 전라도 옹기가 가진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작은 전시관도 건립하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마침 이 근방의 땅값이 저렴하니 “부거리 전통 옹기마을”을 조성해보는 것도 좋겠다. 할 일은 많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근방의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문화관광 코스도 만들고 숙박시설도 만들고 싶고 옹기와 다른 도자기 기술들의 연계도 고민이다. 오늘의 노력은 미래 세대에 또다른 전통으로 기억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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