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삼성이 미르·K재단 등 최순실씨 측에 239억 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청와대의 압박 사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17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이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장관한테 찬성을 종용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 한 위원은 15한겨레기자에게 당시 (문형표) 복지부 장관한테서 (합병에) 찬성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 지인을 통해 “‘합병이 부결되면 삼성그룹의 승계가 암초에 부딪히고 우리 경제에 중요한 기업에 충격이 올 수 있다. 국가 경제 혼란이 올 수 있으니까 찬성하는 게 옳다’, ‘청와대의 뜻이다. 찬성을 표시해달라는 전화도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청와대를 곧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으로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1 0.35 비율로 이뤄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 일가 지분(42.19%)이 많은 제일모직 쪽에 유리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합병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으로, 이 부회장 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해야 안정적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기에 삼성에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에 적극 반대하면서 암초에 걸리는가 했지만, 합병안은 같은 해 717일 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출석 주식의 3분의 2(66.7%)보다 불과 2.8%포인트 많은 69.5%의 찬성을 얻는 데는 국민연금(당시 지분율 11.02%)의 찬성이 결정적이었다.

시민단체 등은 이 합병으로 올해 나온 고법 판결에 따라 1:0.4의 비율을 적용하면 최소 581억 원, 연금 내부 평가에 따라 1:0.46의 비율을 적용하면 최대 1164억 원의 손해를 국민연금에 입히고,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에는 최소 3718억 원에서 최대 7445억 원의 이득을 얻게 했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당시 의결권 자문업체의 반대 권고에도 불구하고 찬성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민감한 사안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넘겨 찬반 여부를 결정해온 것과는 달리 투자위원회 차원에서 결정하는 데 그쳤다. 이 전문위원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안건을 (우리한테) 보내지 않고 자체적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관계자는 전문위원회에 맡겼다면 반대가 우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자체적으로 로비에도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전문위원은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찾아와 합병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다른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도 지인들이 수차례 전화해 찬성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의 부탁으로 전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태도를 둘러싼 의혹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다시 불거졌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이 불공정한 비율로 이뤄진 합병에 찬성해 6천억 원의 손실을 떠안았다며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최씨가 사실상 설계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삼성이 거액을 출연한 것에 이어 최씨 개인회사에 280만유로(35억 원)를 송금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삼성과 최씨 쪽의 커넥션이 주목받는 것이다. 합병안 가결 일주일 뒤에 이재용 부회장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독대했고, 그 다음달에는 삼성전자가 최씨 회사인 독일 비덱스포츠에 송금을 시작했다.

검찰은 당시 박 대통령을 독대한 재벌 총수 7명이 민원을 제출한 대가로 미르재단 등에 대한 지원에 나섰을 가능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대한승마협회장이 돼 최씨 딸 정유라씨 지원을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 12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청와대 등의 움직임이 최씨 쪽에 대한 삼성의 지원 대가라는 의혹이 짙어지면서 박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대가성이 인정되면 박 대통령은 뇌물 혐의 적용을 피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에 대해 윤소하 의원(정의당, 비례)문 이사장은 메르스를 제대로 막지 못해 사퇴했는데 메르스가 한참 창궐할 때 보건복지부의 수장이 이를 막는데 전력하기는커녕 국민연금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의원은 문 이사장은 올해 국회 업무보고에서 본 의원의 질의에 삼성물산 합병 결정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혜택이나 이런 것이 매매 과정에서 반영된 것은 아니고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얘기했다면서 후안무치한 일이며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윤 의원은 문 이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하고,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하여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해명자료를 내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에게 찬성을 종용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 해당 부서로부터 현안 사항으로 보고 받았으며 전 직장 동료였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에게 쟁점 사안과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통화한 바는 있으나, 찬성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돈을 보낸 것은 뭘 바라고 한 게 아니라 최씨 쪽 인사의 협박으로 뜯긴 것이라며 미르재단 등에 출연한 것도 관행적으로 해온 준조세 성격의 지원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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