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지하주차장 여사장 납치사건 ‘전모’

▲ 송경엽 전 수사반장

기획수사의 달인, 송경엽 전 수사반장이 그동안의 수사비화를 세상에 공개한다. 송 전 수사반장은 당시 귀신이라 불릴 정도의 정확한 수사방향 설정, 끈질긴 추적과 공적수사로 각종 대형 사건을 해결한 인물. 1970년대 중반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요원으로 경찰에 투신한 송 전 수사반장은 서울시경 형사과와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중부 경찰서 강력반장, 청량리 경찰서 강력계장을 거쳤다. 특히 1994년 현대종교 탁명환 대표 피살사건, 1995D 약국 여주인 살해사건, 동익당 한의원 떼강도 사건 등 국민이 주목한 대형 사건을 잇따라 해결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본지는 연재를 통해 극비로 남겨졌던 그의 수사비화 등을 듣고자 한다. -편집자 주-

<2> 종묘 지하주차장 여사장 납치사건 전모

19922월 나는 중부경찰서 형사 관리 계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에서 강력사건을 수사하다 형사계의 제반 행정 및 서무업무 등 지원업무를 보는 자리로 옮긴 이 후 일선 현장에 대한 그리움이 한창일 때였다.

여사장 납치사건이 서울 종묘주차장에서 발생했다. 여사장이 납치된 장소가 종로경찰서 관할이었으나 공범이 돈을 인출하려다 중부경찰서에 연행돼 중부서형사계가 수사를 맡게 됐다. 중부서 형사 과장은 이 사건 심각성을 고려해 당시 공석이던 강력3반장에 나를 겸직 발령해 이 사건을 맡겼다. 사건을 맡은 나는 갈취한 통장과 신용카드로 현금인출을 시도하기 위해 하려다 체포된 공범을 만나러 갔다.

20대 초반의 가냘픈 여인이었다. 범행을 주도한 주범의 애인이었다. 피해자의 회사 직원들이 은행에 피해자 명의의 통장과 카드의 출금을 정지시켜 놓은 걸 몰랐던 그녀는 주범 하모가 피해자로부터 빼앗은 통장과 카드로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려다 은행 창구 직원의 신고로 현장에서 붙잡혔던 것이다.

나는 우리 경찰서 상황실과 형사들에게 그녀가 검거된 사실을 절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조치했다. 특히 종로경찰서 쪽으로 검거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을 잘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주범을 비롯한 나머지 범인들이 그녀가 검거된 사실을 알면 어디론가 튀어버릴 것이고, 그러면 범인을 찾는 것은 물론 피해자의 안전도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이용해 범인을 끌어들이는 유인 공작수사에 나섰다. 나는 직원들에게 그녀를 중부서 관내 명보극장 맞은편 호프집으로 데려가서 대기하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은 심부름만 한 거니까 큰 죄는 없다. 그 대신 당신이 잡혔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연기를 잘해라. 어차피 모두 검거될 테니 당신이 협조하면 선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협조를 유도 했다. 그녀는 나의 설득에 호프집에서 주범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무서워 죽겠어.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다가 갑자기 경찰들이 은행에 들이닥치고. 그래서 겁이 나서 돈은 못 찾고, 정신없이 빠져나왔는데, 어떻게 왔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전화하려고 우선 호프집에 들어와 있는데, 이리 와서 빨리 나 좀 데려가줘라며 울먹이는 연기를 하며 통화를 했다.

그녀는 호프집 주인에게 위치를 물어가며 주범에게 자신이 있는 호프집 위치까지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가 시킨 대로 주범과 통화를 하는 내내 실감나게 벌벌 떨었는데, 전화를 끊고서도 계속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잡힌 것이 두려워 정말 떨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통화가 끝나자 직원들에게 그녀를 감시토록 하고 나는 곧바로 호프집은 물론 주변 사거리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건물 2층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수사를 지휘했다. 그리고 일부 수사요원은 호프집 맞은편 다방에 잠복시켰다. 사람을 납치한 정황으로 보아 주범은 주도면밀하기 때문에 곧장 호프집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범죄자들의 특성중 하나가 의심이 많다는 것이다. 주범은 아마 의혹이 해소될 때 까지 그녀를 이곳저곳으로 불러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가정해 인원을 배치했다.

나는 계속 그 다방 입구를 주시한지 약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용의자로 보이는 친구가 다방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는 한동안 서성이며 주변 정황을 살피더니 다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즉각 다방에 잠복해있는 요원들에게 지금 하얀 셔츠 입고 들어가는 친구를 체포해라. 칼 같은 흉기를 가지고 있을 터이니 검문하지 말고, 양팔을 잡고 즉시 검거해라고 지시했다.

우리 팀은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너무나 순조롭게 그를 검거했다. 주범인 하모 씨는 예측대로 칼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양편에서 요원들이 순식간에 팔을 붙잡고 체포를 하자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붙들려 나왔다.

그 현장에서 직접 하 씨를 취조한 끝에2명의 공범이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나머지 2명도 그런 식으로 유인하여 체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공범들을 유인 체포할 때면 늘 족쇄를 가지고 다녔다. 미끼로 데려가는 범인의 다리를 족쇄로 채워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도망을 갈수 없음은 물론, 유인되어 오는 공범이 그의 검거 사실을 알 수 없도록 수갑을 풀어 자연스럽게 공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범인들은 주범의 애인인 여자 1명을 포함하여 납치범들은 모두 4명이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울리던 동네 친구들로 인적이 드문 지하주차장에 은신해 있다가 혼자 고급승용차를 타고 와서 주차하는 여성을 납치하여 차에 태운 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돈을 강탈하는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들을 구속시키고 사건은 해결했지만, 지하주차장이 범죄의 사각지대라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찜찜했다. 그 당시에는 CCTV도 흔치 않을 때였다. 음침하고 인적이 드문 지하주차장에서 여자 혼자 차를 주차시키다가는 옴짝달싹 못하고 피해를 당하는 그런 환경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의 보도 자료를 각 언론기관에 배포하면서 여성전용주차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제안에 관심을 가진 SBS TV 시사프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출연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형백화점과 쇼핑센터 등 여성 운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건물에는 지상주차장이나 지하 1층을 여성전용으로 하되, 출입구에는 반드시 CCTV를 설치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한다며 여성전용주차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후 이 사건을 지휘했던 서울지검 강력부에서는 여성전용주차장 구역을 설치토록 행정지도하고, 현행주차장법 등 관련법규에 주차장 내 경비인원수, 경보 및 감시장치 설치기준을 신설 또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건의하고 나섰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했던 종묘지하주차장은 14백대가 주차할 수 있는 지하 15층 공간 중 지하 2층 한가운데에 42대분을 여성 전용공간으로 할애하고, 상주 안전요원 2명을 배치했다. 대형 백화점과 쇼핑센터 등에서는 나의 제안대로 여성전용주차장을 따로 마련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등 각종 조치가 뒤따랐다. 내 제안대로 여성전용주차장 설치제도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도 길을 가다 여기저기 핑크빛으로 표시된 여성전용주차장만 보면 아직도 그 당시 수사하던 추억이 새롭고 가슴이 뿌듯해 왔다. 간혹 여성들이 많은 곳에 특강을 가면 나는 여러분, 제게 박수 좀 쳐주세요. 제가 바로 여성 여러분을 위해 여성전용주차장제도를 신설하는 데 일조한 사람입니다하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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