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길홍 회장

개혁(Reformation)과 혁신Innovation)은 글자는 다르지만 뜻은 비슷하다. 제도, 기구,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새롭게 뜯어 고쳐 변화와 전진을 실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류사회가 함께 사는 공동체를 형성되면서 개혁은 지도자가 그 공동체를 이끌면서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는 화두도 첫 번째가 개혁이었다.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다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내놓는 그럴듯한 그림과 약속으로 포장된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역성(易姓)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개국했던 정도전(鄭道傳)은 대표적 개혁주의자였다. 고려말 중신때 벌써 토지개혁에 손을 댔다. 조선 개국 후는 유교사상을 통치이념으로 바꾼 해박한 성리학자였다.

조선조의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는 큰일도 주도할 만큼 개혁적이었다. 고려왕조를 개혁의 반면교사를 삼은 개혁공신 정도전은 결국 신하가 중심이 된 왕도정치의 꿈을 끝까지 펼쳐보지 못한 채 139857세로 태종 이방원부하의 칼에 살해됐다. 태조 이성계가 신임했던 당대의 실세 정도전도 끝내는 개혁을 반대하고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조선 중종 때 신진사류의 개혁적인 선비들을 등용해 정치개혁과 도학정치를 시도했던 조광조도 훈구대신의 반발로 기묘사화 때 사약을 받았다.

영조때 실용정치를 창안했던 정약용도 제도개혁을 실천하고 실학사상을 전파했지만 사색당쟁에 휘말려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조선조 말 개화의 주역으로 등장했던 김옥균, 홍영식 등 개혁주의자는 살해됐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목숨은 건졌으나 나중에 박영효는 저도 모르게 친일파가 되어 불행한 최후를 맞은 개혁의 선각자였다.

절대왕권을 등에 업은 조선시대의 개혁주의자들이 생각한 개혁과 혁신의 선견지명(先見之明)들은 역사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정책으로 집행되어 성과를 거두기는 참으로 어렵고 힘들었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광복 70년과 분단 70년을 되돌아보면 역대 대통령과 역대정부는 개혁과 혁신의 공약을 정권의 화두로 내걸고 실천을 다짐했다. 독재정권이라고 불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강권통치로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초법적 조치를 동원하거나 거대여당의 다수결 강행으로 개혁 입법과 혁신정책을 밀어붙였다. 힘으로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와 방대한 조직을 개혁했다. 이때는 다소 무리와 부작용이 발생해도 당위성과 개연성이 인정되면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개혁과 혁신을 단행한 전례가 많았다.

진보성향의 정권이 물러난 후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 연금, 국공기업, 노동시장의 개혁작업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무한정 시간을 끄는지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입을 모아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다짐했던 국회의원의 불체포 등 특권 포기, 겸직금지, 세비 삭감, 선거구 조정 등도 전혀 진척이 없거나 실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서민과 민초들이 나라의 지도급 정치인들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마이동풍(馬耳東風)하는 정치인들에게 다음선거에서 다시 지지표를 던질 수는 없다. 낙선 캠페인을 벌이거나 주민소환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여야 할 것 없이 끊고 매듭짓는 방법을 모르는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용두사미(頭蛇尾)가 되니 정말 한심하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 1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고, 국회 해외자원 개발 국정조사 특위는 청문회 한번 못 열고 활동 시한을 넘겼다. 공무원 연금개혁 특위는 시한이 지났고 노사정개혁 특위도 막바지에 몰리고 있다. 도대체 생산적인 정치현장을 어디서도 찾아보지 못하고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4.29 보궐선거에만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있다.

정치에서 개혁과 혁신은 말의 성찬에 그치고 실제 행동과 실체가 없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요즈음 정치판은 조선조 후기에 조정이 송두리째 목숨을 건 사색당쟁(四色黨爭)에 몰두해 주변의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국토가 유린되고 죄없는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었던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난다.

개혁과 혁신이 주춤하고 진전이 없는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자. 지도자의 자질과 국민성에 문제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는 타협과 토론과 협상이 상식이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상식과 원칙의 정치가 통용하지 않는 정치를 통렬하게 반성해야한다.

일반국민은 법치의 기본을 존중하며 남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시민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공무원 연금개혁, 노동시장 개혁 문제를 다루는 최근의 과정을 살펴보면 너죽고 나 살기식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공무원, 노동자 모두가 갑도 되고 을도 되는 경우가 있겠지만 막무가내식으로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협상을 깨고 행패를 부리는 공무원들을 보면 그들이 과연 국민의 세금을 받아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공직자인지 의문이 간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생존해야하는 외교적 위기, 계속되는 북한 핵의 안보위협, 자영업자가 아우성치는 경제의 장기적 침체등 대내외적인 난제들이 중첩해 있다.

이같은 국가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자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와 국민이 합심하여 당면한 개혁과 혁신의 과제들을 해결하는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정치지도자가 앞장서고 그 다음 국민들이 상대방을 포용하고 서로 양보하는 양식을 발휘해야 개혁과 혁신의 현안을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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