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상아탑 옛말‘성추문 전당’

‘상아탑’이 잇단 성추행 논란에 얼룩졌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가는 성범죄로 먹칠됐지만 대학 당국과 교육부가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대학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이승한)는 상습적 성희롱 발언으로 해임된 대학교수 한모씨가 학교 교원소 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해임 처분은 지나치다”면서 취소해야 한다고 22일 밝혔다.

“브래지어 사이즈 잘알아”

한 씨는 2012년 3월부터 모 지방대학의 관광영어과 조교수로 재직했다. 학교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한씨는 수업 도중 학생들에게“미국 여자들은 다 풍만하다.

그런데 한국 여자들은 계란후라이 두개 얹고 다닌다”는 등의 발언으로 학생들에게 성적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

이외에도 수업 중“여자는 팬티스타킹 2호가 예쁘다”거나“나는 여자들의 브래지어 사이즈도 잘 안다. C컵, D컵”이라고 발언했다.

생리통을 이유로 결석한 여학생에게는 약을 먹고 생리주기를 바꾸라고 언급해 성적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학기 내내 여성 비하 발언을 반복한 그가 계속 여학생들의 몸을 훑어본다는 민원도 접수됐다.

또 한 씨는 수업 도중 남학생에게“나는 큰 가슴을 가진 여자가 오면 흥분 된다”는 문장을 영작해보라고 했다가 남학생이 불쾌감을 드러내자“너 고자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한 씨가 이런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되고 수강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성적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라면서도“다만 수업 교재에 일부 성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어 한 씨가 교재의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성적인 표현을 과하게 사용한 것으로 강의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한 씨의 성희롱 행위는 말로만 이뤄진 것이고 신체접촉은 없었다. 개방된 장소인 강의실에서 다수의 학생을 상대로 이뤄진 것으로서 폐쇄된 장소에서 특정인에게 행해지는 것보다 학생들이 느낄 성적 혐오감이 상대적으로 약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결국 법원이 성희롱 교수를 구제해 준 것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자 나체사진 촬영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한 전직 교수는‘혹 떼려다 혹 붙인’신세가 됐다.

여제자 수십 명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그가 원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가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은 것. 대전고법 제1형사부(김승표 부장판사)는 여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충북 모 대학의 전직 교수 49살 정모씨에게 징역 1년2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피해자들을 위해 총 1천만원을 공탁했고 피해자 일부가 처벌을 원치 않는데다 초범인 점을 감안해도 원심의 형은 너무 가볍다”고 강조했다. 정 전 교수는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사직서가 수리돼 퇴직 처리된 상태다.

정 씨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여학생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게임을 핑계로 몸을 더듬는 등 총 23차례 여대생들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 씨는 학점이나 장학금 등을 빌미로 제자들을 유인했다. 피해 여학생에게는 시험 출제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방법으로 무마를 시도했다.

이처럼 대학 교수 성추문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관련사건은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3일에는 술을 마시고 동성 제자 3명을 성추행한 국립대 교수 기소 소식도 전해졌다.

청주지방검찰청은 술을 마시고 남학생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 등)로 국립대 교수 A(41)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청주 자신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제자 3명의 몸을 더듬거나 나체 사진을 촬영하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피해 학생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A교수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대학 총장, 교수 직접 고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주선 새정치민주연합의원은 지난 3일 교육부에 성범죄로 기소되거나 해임된 대학교수의 학교명과 직책 등을 포함한 ‘최근 5년간 대학 내 성범죄 현황’자료를 요청했다.

이를 통해 박 의원이 받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작년까지 4년제 대학의 성범죄 건수는 100건, 성범죄 교원은 31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통계에 잡힌 대학은 78개교로 전국 4년제 대학(198개)의 39%에 불과하다. 특히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대학에는 최근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서울대와 고려대가 포함돼 있다.

여기서 자료 제출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이들은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교육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역시 대학의 성범죄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주선 의원은“통계로 현실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대안을 만들 수 없다”며“최근 대학교수의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교육부는 기초적인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최근 정부와 대학가에서는 관련 규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비위를 저지른 사립학교 교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의원면직을 제한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교육부는 올해 성범죄로 형이 확정된 학교 교사나 대학교수를 교단에서 퇴출하는 법령 개정을 올해 상반기 추진 중이다.

또 최근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 총장의 고발로 경찰조사를 받게 됐다. 덕성여대는 최근 박상임 총장 직무대리 명의로 이 학교 A교수를 성추행 혐의로 서울 도봉경찰서에 고발했다.

고통을 받았을 피해자가 직접 수사기관에 처벌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 학생을 보호할 엄격한 의무가 있는 학교의 당위적 태도가 결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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