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 한국 파독광부 간호·조무사 연합회장 인터뷰

▲ 김두진 사회정상화운동본부 이사장

대한민국은 영화‘국제시장’의 흥행으로 아버지의 삶에 주목한다. 60, 70년대 어려운 시대상황에‘우리의 아버지’는 열심히 노력했다.

이중 대표적인 아버지상은 가족을 위해 광부의 삶을 택해 독일로떠난‘우리의 아버지’이다. 그들의 노력은 60, 70년대 가족의 삶을 윤택하게 했고 국가재건의 초석이 됐다.

그 당시‘우리의 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를‘한국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연합회’하 대경 회장님께 듣는다.

- 한국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연합회는 어떤 단체인가?

△ 1963년부터 1977년 사이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 직업으로 파견되신 분들의 모임 입니다.

1,000여명의 회원이 등록 되어있고 회원들의 어려움과 당시의 국가재건의 공헌을 알리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영화‘국제시장’의 흥행이 후 파독 교민들의 삶이 여러 계층으로 부터 주목받게 된다. 소감은?

△ 얼마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친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시절 고생 하였지만 50여년이 지나 다시금 노력과 헌신을 인정받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파독교민들의 희생으로 국가재건의 원동력으로 평가되는 생각은?

△ 국가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광부들은 자기먹을 식대만 남기고 다 고국으로 송금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필리핀보다도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 더불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습니다. 당시 GNP성장률이 5.5%대 였고 이중 우리가 송금한 규모가 2%대 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 합니다.

- 하대경 회장님께서 독일로 떠나신 이유?

△ 대학졸업과 군제대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경제 기반은 형편 없을 때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많지 않았지요.

그래서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해외로 눈을 돌렸고 때마침‘파독 광부모집’광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국내실정이 어렵고 꿈(희망)을 이루기에는 미흡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이 현직 교사, 경찰공무원, 서울대 졸업 등 여러 출신들이 가정형편도 어려웠지만 자신의 꿈(희망)을 따라 독일로 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파독 교민들의 현지에서의 삶은?

△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이야 하지요. 독일에 광부로 7,936여명, 간호사로 11,540여명이 파견 됐습니다. 그렇지만‘독일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란 생각으로 차별없이대해 주었습니다.

지금생각해 보면 광부로 막장에서의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땅속으로 100미터 내려갈수록 기온이 1도씩 높아집니다. 막장은 40도이상으로 매우 더웠습니다.

막장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데 숨쉴 공기가 필요해서 그랬습니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탄가루가 날려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참 열악했지요. 이러한 환경을 참으며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가 통계한 바로는 탄광에서 일하신 분 중 60여명 사망자가 발생 했습니다. 머나먼 타지에서…참 안타까웠습니다.

- 우리들의 아버지로서 해주실 말씀?

△ 광부, 간호사들이 독일로 떠났던 시대상황을 다시금 되새겨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하며 후세까지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나라가 다시금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우리가 독일로 떠날때의 꿈(희망)을 다시금 되새겨 어려움을 헤쳐 나가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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