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증 기업 사내유보금 가계소득으로 환류 돼야...재계 사유 재산 몰수 Vs 정부 감세 특혜로 얻은 돈

기업이 쓰지 않고 쌓아둔 사내 유보금이 500조 원을 넘는다. 이 사내 유보금에 대해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과세 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재계의 반발이 심하다. 사내유보금 과세를 둘러싼 재계, 정부, 국회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사내유보금 주주 배당 유도

정부는 올해 추경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 대신 내년 예산을 당초 계획보다 늘려 편성할 방침이다. 특히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시선이 집중됐다. 기업의 자금을 풀어 가계소득을 늘린다는 대책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취임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의 배당 성향이나 투자를 보면 기업의 사내유보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과세나 (배당이나 성과금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 등 제도적인 장치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번 수입 중 앞으로 설비투자나 인수합병(M&A) 가능성을 대비해 쌓아둔 일종의 ‘비상금’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내유보금엔 세금을 매기거나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정부가 염두에 둔 강수다. 이를 주주 배당이나 직원 성과급으로 쓰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다만 최 부총리는 기업의 반발 등을 의식한 듯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사내유보금에 패널티를 줄 생각은 없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제도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삼성 182조 4천억원 1위

정부가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최근 10대 그룹 사내유보금이 최근 5년 새 거의 2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10대 그룹 81개 상장사(금융사 제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1분기말 사내유보금은 515조9천억원으로 나타났다.

5년 전인 2009년의 271조원에 비해 90.3%나 급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보율도 986.9%에서 1,733.9%로 747%p나 높아졌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당기 이익금 중 세금과 배당 등의 지출을 제외하고 사내에 축적한 이익잉여금에 자본잉여금을 합한 금액이다. 이를 자본금으로 나누면 사내유보율이 된다.

10대 그룹 중 사내유보금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삼성으로 5년 새 86조9천억원에서 182조4천억원으로 두 배가 넘는 95조4천억원(109.8%)이 늘어났다.

삼성전자 유보금이 70조9천억원에서 158조4천억원으로 87조5천억원(123.4%) 늘며 그룹 유보금 증가액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41조2천억원에서 113조9천억원으로 72조6천억원 늘어나며(176%) 2위를 기록했고 SK(24조1천억원·70%)와 LG(17조원· 52%)가 뒤를 이었다.

이들 4대 그룹이 10대 그룹 사내유보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8.3%로 대부분이었고 특히 이중 35.4%가 삼성그룹 몫이었다.

포스코(11조원·33%)와 롯데(10조3천억원·63%)가 10조원 이상 유보금을 늘리며 5, 6위에 올랐고 현대중공업(8조2천억원·74%), GS(4조9천억원· 72%), 한화(3조4천억원·90%) 순으로 뒤를 이었다.

한진만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사내유보금이 2조2천억원(-52%) 줄었다.

10대 그룹 81개 상장사 중 사내유보금이 늘어난 곳은 67곳이고, 줄어든 곳은 한진해운, 삼성전기 등 14개사에 불과했다.

1천억원 이상 늘어난 곳이 57개사였고, 1조원 이상 증가한 곳도 26개사였다.

CEO스코어 고위 관계자는 "통상 유보율이 높을수록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배당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평가받는 반면 투자와 배당 등에 소극적이란 지적도 있다"며 "유보금에는 현금 외에 투자로 인한 유형자산과 재고자산 등이 포함돼 있어 곳간에 현금이 쌓여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이중과세다” 반발

‘사내유보금’ 과세 문제에 재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 10곳이 정책토론회를 급하게 열었다. 이 자리에선 사내유보금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16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전남대 김영용 경제학부 교수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사유재산 몰수의 성격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또 김 교수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복지국가라는 허울을 좇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치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정부의 시각이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사내유보금이 적정 수준보다 지나치게 많다는 입장이지만, 기업의 주장은 다르다. 이미 법인세 명목으로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이 유보금이기 때문에 이것에 과세하면 이중과세가 된다는 것이다.

송원근 전경련 본부장은 “사내유보금은 80% 이상이 이듬해에 설비투자나 장기채권 투자 등에 쓰이기 때문에 현금성 자산과 혼돈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내유보금은 미래에 사용할 돈이지 남아도는 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간부는 “사내유보금의 현금 비중은 15%도 안 된다”며 “M&A나 투자에 대비해 쌓아둔 돈을 배당이나 성과급으로 쓰라는 건 지나친 경영 간섭”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대기업은 주주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어서 배당을 해봐야 내수 진작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기금을 동원하는 것도 손쉬울 순 있지만 손실이 나면 어차피 정부가 메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내유보금 과세는 1991년 비상장사를 대상으로 도입한 적이 있다. 비상장사가 이익금을 사주에게 배당하면 사주가 소득세를 물기 때문에 절세를 위해 사내 유보시키는 걸 막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 데다 이중과세라는 비판에 직면해 10년 만인 2001년 폐지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내유보금 지출 확대 방안은 과거처럼 강제적으로 추진하려는 게 아니라 세금 혜택 등을 줘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며 “재계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최 부총리는 18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간 선순환을 구축하여 가계와 기업이 상생하는 돌파구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가처분소득 증가 긍정적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잠겨 있는 자금을 가계 쪽으로 돌리려는 최경환 팀의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갈수록 가계와 기업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 간극을 메울 필요가 있다는 평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국민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기업의 잉여 소득이 가계 소득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학계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기업 유보금이나 배당 등을 통해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리겠다는 최 후보자의 구상은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시키는 방법이 중요하다”면서 “기업의 배당 성향을 높일 수 있는 정책과 함께 최저임금제를 통한 실질임금 인상과 노동시장의 근로조건 격차 축소 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고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내유보금이 122조원에 달했다”며 “원칙적으로 세금을 제외하고 기업의 당기 이익금 대부분은 주주에게 배당해야 하는데 상법은 자본충실의 원칙에 따라 그 일부를 사내에 유보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것을 과도하게 축적하고 있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홍 소장은 “기업 금고에 쌓여 있는 돈이 추가 배당이나 추가 임금, 추가 과세 등을 통해 실물경제로 흘러나오면 투자와 소비 모두가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미국,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도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헌 서울대 교수의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사내유보의 목적이 조세회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조세회피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과세대상이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사내유보를 통한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유보소득에 과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사내유보금 과세를 통해 선진국에 비해 낮은 배당성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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