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가 가장 쎈 관료조직이다.

모피아의 정권이 교체되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돈을 쥐고 있어 기업에서부터 금융기관까지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모피아’라는 용어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재무부 출신 공무원이 금융감독당국과 민간 금융기관에 잇따라 낙하산으로 내려와 금융권을 장악했다.

막강한 파워와 연대의식으로 뭉친 이들을 재무부(MOF·Ministry of Finance)와 이탈리아 범죄조직‘마피아(Mafia)’를 합한‘모피아’로 부르기시작한 것이다.

지난 1994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한 재정경제원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인‘모피아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이전까지 모피아는 사실상 경제기획원의‘통치’를 받았다.

1960~80년대 경제개발시대에 경제권력은 경제기획원(EPB·Economic Planning Board)에 있었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세워진 1960년대 경제기획원은 예산과 기획을 담당한 경제실세 부처였다. 금융과 세제 등 실물을 맡은 재무부는 한 수 아래로 평가됐다.

당시 경제부총리는 경제기획원 장관이 겸임했다.

경제기획원이 경제개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자원을 분배하면, 재무부는 이에 따라 세율을 책정하고 은행 등 금융권을 감독했다.

모피아의 힘이 커진 것은 재벌이 성장하기 시작한 1970년대이다. 당시 재무부는 시장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은행금리를 결정하고, 몇몇 기업주를 선택해 은행 돈을 쉽게 빌려 쓰도록 했다.

그 위상은 김용환 재무부 장관 시절(1974년 9월~78년 12월) 최고조에 이르렀다. 재무부가 경제기획원보다 앞장서서 경제 정책을 주도한 유일한 시기이다.

김 전 장관은 당시 은행감독원에 대기업 대출 규제를 담당하는 여신관리국을 신설하고 재무부 이재국 출신을 국장으로 앉혀 대기업의 자금줄을 틀어쥐었다. 기업에 할당할 자금을 확정했고, 대기업은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로비를 벌여야 했다.

이때부터 재무부 출신은 은행, 제2금융권의 상층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은행의 돈줄도 쥐고 있었다. 은행원이 특별 상여금을 받으려면 재무부 허락이 필요했다. 은행 담당자가 새벽부터 재무부로 출근해 종일 대기하다 퇴근 직전 상여금 지급 재가를 받기도 했다.

모피아의 1차 전성시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경제기획원 출신 김재익 경제수석이 정책을 주도하면서막을 내렸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출범시켰다. 모피아는 다시 부활했다. 금융과 세제는 물론, 예산 편성 권한까지 갖게 되면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재정경제원이 출범한 다음해 재무부 출신 친목단체인 재우회(財友會)는 경제기획원 출신 친목단체인 경우회(經友會)와 통합해 재경회(財經會)를 발족시켰다.

초대 재경회장은 재무부 출신 남덕우 초대 재우회장이 선출됐다. 재경회는 모피아 간 끌어주고 밀어주는 막강한 이너서클로 발돋움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모피아에게도 위기였다.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재경원은 재정경제부, 예산청,금융감독위원회로 분리됐다. 통상교섭기능과 통화신용정책은 각각 외교통상부와 한국은행으로 이관됐다.

모피아는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치한 금융감독위원회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 시기 모피아를 대표하는 인물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당시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비상경제대책위원회’위원장을 맡던 김용환 전 장관이 재무부 장관 시절 자신의 밑에서 금융정책과장으로 있던 이헌재 조세연구원(현 조세재정연구원) 자문위원을 금융감독위원장에 앉혔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소방수’로 불러들인 것이다.

이후‘이헌재 사단’은 곧 한국 경제를 장악했다. 모피아가 결집한 금감위 사무국은 19명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200여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금융위원회)이 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외환위기 당시 재경원 차관을 지냈던 강만수씨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외환위기 때 금융정책을 총괄했던 윤증현 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강만수 전장관의 후임으로 복귀했다. 최중경(지식경제부 장관), 김석동(금융위원장)등도 대거 복귀해 다시 모피아 전성시대를 이뤘다.

현재 모피아는 금융감독 영역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관치와 낙하산 인사는 여전하다.

모피아의 네트워크 핵심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이다. 이헌재 전 장관, 윤증현 전 장관, 한승수전 국무총리, 서동원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한덕수 전 총리 등은 모두 김앤장 고문으로 활동한 바 있다.

모피아는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는 과정에서도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핵심 요직을 독차지해 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며 모피아(옛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의 세력이 퇴조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그 변화의 바람이 읽혀지고 있다. 에서 그 변화의 바람이 읽혀지고 있다.

모피아 출신 금융기관장이 잇따라 낙마했다.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행장에 각각 내부출신 권선주 행장과 민간 출신인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이 내정됐다. 한국은행 총재도 모피아 출신이 아닌 내부 출신인 이주열 전 부총재가 낙점됐다. 금융위원회 부행장 출신인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도 연임에 실패
했다.

모피아가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청와대가 모피아 논란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여 민간 출신 금융인을 기용한데 기인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
석이다.

금융 산업의 특성상 금융기관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고 있다. 모피아를 낙마시킨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면서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결국 금융기관 스스로가 손을 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당국이 하나은행에 대한 집중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에 이어 승유 전 회장까지 조사를 하고 있다.

김 행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공식 징계 통보를 받아 진퇴 갈림길에 서게됐다. 김 전 회장은 미술품 구입, 거액의 특별 퇴직금과 고문료 등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앞서 김 전 회장은 2011년 퇴출을 앞둔 미래저축은행에 유상증자로 지원하도록 김종준 당시 하나캐피탈 사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지시한 혐의로 주의적 경고 상당을 받은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하나캐피탈 사건으로 김승유 전 회장과 관련된 징계가 마무리된 게 아니다”면서“과도한미술품 구매 등 각종 의혹에 대한 개별검사를 통해 들여다보고 있는데, 문제소지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권 일각에선 하나은행의 계열은행은 외환은행이 모피아출신인 윤용로 전 행장을 낙마시킨데대한 보복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김선제 한국증권경제연구소 연구소장은“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일련의 개혁 정책이 모두 벽에 부딪히고 결국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들 모피아 인맥이 실세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피아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선 금융감독권한을 민간 공적기구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기업구조조정촉진법 또는 그와 유사한 관치 구제 금융제도를 없애고 금융산업 정책에 관한 권한을 제외한 모든 금융감독 권한을 민간 공적기구에 이관하는 식으로 모피아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현재 금융분야에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했는데 모피아 출신 금융관료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거나 해결 모색을 위해 민감한 정책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며“옷 벗고 나와 낙하산으로 어디로 갈지만 생각하는, 집단적 사익을 추구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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