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재용 경영 승계 ‘꼼수’...정경유착 법·질서 ‘해악’
에버랜드전환사채·X파일·합병 등 이재용에 무리한 경영 승계가 ‘오너 리스크’

기업은 경제적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이다. 기업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체이다.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의 경영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세계화된 자본시장에서 모범적 기업지배구조를 위한 제도와 관행을 만들고 있다.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투명성이 확보되면서 기업의 가치가 제고된다. 투자자 관점에서 기업의 분식회계 등 스캔들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투명한 지배구조는 기업의 가치, 주주의 가치를 증대 시킨다. 한국 기업들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감시 주주권 보호 이사회구성 내부감시기구 강화 이해관계자 권리 보호 등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을 지향해야 한다. <공정뉴스>는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에 해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재계 1위 기업인 삼성그룹 계열사 간 지배구조와 합병 등 경영환경을 분석한다.

삼성의 경영권 세습이 이루어 지고 있다. 창업주 호암 故 이병철 회장ㅡ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세)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3세)으로 승계되고 있다. 사진은 이재용 부회장(左), 이부진 사장(中), 이서현 이사장(右) 남매가 3세 승계에 주인공이다.
삼성의 경영권 세습이 이루어 지고 있다. 창업주 호암 故 이병철 회장ㅡ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세)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3세)으로 승계되고 있다. 사진은 이재용 부회장(左), 이부진 사장(中), 이서현 이사장(右) 남매가 3세 승계에 주인공이다.

삼성(三星)은 국내 재계 1위 기업이다. 세계 12위(2018년 12월 기준)이다.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은 1938년 28세 때 자본금 3만 원과 은행 자금 20만 원으로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시작됐다.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성전자 등을 설립했다.

이병철 회장은 10명(4남 6녀)의 자녀를 뒀다. 삼성은 CJ그룹(구, 제일제당), 한솔그룹, 신세계그룹 등으로 분리됐다. 87년 이 회장이 타계한 이후 이건희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반도체 투자를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현재 삼성의 자산총액은 363조 원(2017.12.기준)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 14조에서 규정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1위)이다.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 등 16개 상장사와 삼성디스플레이·삼성바이오에피스 등 48개 비상장사를 두고 있다. 사실상 삼성물산이 지주회사이다.

삼성전자의 1984년 매출은 1조3000억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8년 170조3000원으로 120배 넘게 회사 외형이 커졌다. 2002년부터 확고부동의 재계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30조 원대로 올라섰다.

삼성그룹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전체 누적 매출액은 3070조 원이다. 누적 순이익은 259조 원(24.30%)이다. (한국CXO연구소 2020.2.20.).

삼성의 지배구조는 재계의 최대 관심사이다. 고 이병철 회장(창업·1세)→이건희 회장(성장기·2세)→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3세)으로 경영 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재용 안정적인 승계 구도 완성이라는 지상 명제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룹의 소유구조는 이건희 회장과 일가가 삼성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삼성자산운용·삼성카드 등)·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S 등)의 지배하는 구조가 완성됐다. △지배구조 단순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 정보기술(IT) 계열사 지배력 확대가 됐다. 한마디로 삼성의 합병은 상속과 대주주의 지분 강화를 위한 것이다.

삼성은 최근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총수 일가의 불법행위 등을 실효성있게 작동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 순환출자 고리...이재용 지배력 강화

현재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를 통해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금산분리 관련 규제 환경 변화와 대주주에 대한 법원 판결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지배구조 개편이 ‘시계 제로’에 빠졌다.

삼성은 지난해 ‘A→B→C→D→A’처럼 계열사가 순환 구조를 이루면서 지분을 보유하는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해소했다.

2018년 삼성화재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정리했다. 4월 삼성SDI가 보유하던 삼성물산 주식 404만2758주(2.11%)를 장 마감 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전량 매각한다. 오너 일가에서 지분을 취득할 수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블록딜 방식을 택한다. 같은 해 9월 삼성전기와 삼성화재도 각각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2.61%)와 261만7000여주(1.37%)를 처분했다. 블록딜 방식을 택했다.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강도 높은 지배구조 개편에 호응했다.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를 뼈대로 하는 비교적 간결한 지배구조 토대가 마련됐다.

삼성은 삼성물산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거느리고 있는 형태다. 지배구조에서는 지주회사도 아닌 애매한 상태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규제 당국이 요구하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완벽히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금산분리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이면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라는 압력도 커지고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보고서에서 “지배구조와 성과보수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당국의 칼날도 더욱 날카로워졌다. 삼성그룹에 이를 대입하면 삼성생명이 지배구조와 관련해 이 부회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으로 꼽혀 중점 사안이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의 단초가 된 금융당국의 삼성바이오 지배구조 판단이 애초부터 무리한 해석이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삼성물산으로 옮겨 지배구조 정점에 올라서는 것이 투명하면서도 간결해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막대한 자금과 대내외 경영 이슈가 산적한 상황에서 이를 현실에 옮기려면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관련 재판 과정에서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사업에 대한 경영능력으로 인정받아야지, 지분 몇 퍼센트를 갖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재용 시대 개막, 삼성생명ㆍ삼성전자 처리 골머리

순환출자 고리 문제를 해결한 후의 핵심 관건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처리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부처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금산분리) 원칙을 내세워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을 매각하라고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현행 지배구조는 중장기적으로 해소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은 금융 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정한 '10%룰'을 맞추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2018년 5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각각 0.36%, 0.06%의 지분을 매각한 것 역시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에 따른 지분율 상승을 막기 위함이었다. 2018년 말 기준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율(보통주 기준)은 각각 8.51%, 1.49%다.

하지만 금융계열사들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자산 평가 기준을 취득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보험업법 개정안과 금융그룹이 비금융 계열사 발행 주식을 5% 이상 소유하는 경우 초과분을 5년 이내에 매각하는 내용의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안 등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최소 5%의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데, 종가(4만4850원)로만 환산해도 13조원이 넘는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이 중 일부를 삼성물산이 사들이는 방안이 시장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는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삼성전자의 지분 가치가 삼성물산 자산(18년 말 개별 기준 33조8800억 원)의 절반을 넘어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강제 전환되면 현행 지주사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20% 이상으로 늘려야 하고, 공정위가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방안이 통과될 경우 이 비율은 30%이상으로 늘어난다. 삼성물산은 서초사옥을 매각하는 등 현금 자산 보유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대외환경이 위축된 데다가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및 생명 모두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물산ㆍ제일모집 합병 통해 지배구조 '개편'

삼성물산은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7%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삼성생명 19.3%, 삼성바이오로직스 43.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그룹 전체의 진용이 짜여 있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수 관계인과 함께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만 따졌을 때는 17% 정도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전체의 지주회사로 거듭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그룹도 2017년 공식적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보유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로 올라설 경우에는 지주회사법에 따라 보유자회사 주식가액이 총자산 40조원(개별기준)의 50%를 초과하게 돼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된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강제 전환되면 삼성전자 지분 20%를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된다.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삼성전자의 발표와도 상충할 뿐 아니라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하는 소요금액만 51조에 달하게 된다.

삼성물산이 강제로 지주회사 전환을 피하면서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려면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43.3%를 다른 자회사에 팔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2% 정도를 사들여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올라서야 한다. 이 경우에는 애초 삼성물산이 합병할 당시 바이오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다.

또한 지분 매각이 현실화하더라도 삼성바이오 지분을 팔아 얼마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참고로 삼성바이오의 시가총액 기준(26조원 수준)으로 삼성바이오의 지분 43.4%는 11조원 수준이다.

이재용 재산증식 비법 61억 원 종자돈 23년만에 9조원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승계 과정에서 무리수를 보였다. 과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에 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수사를 받고 구속됐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지난 2017년 1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이 직접 쓴 최후 진술서를 읽어 내려갔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 첫머리에 자신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빚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이재용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1억 원을 받았다. 이 돈이 삼성을 물려받는 종잣돈이 됐다.

이 부회장은 먼저 에스원과 제일기획, 삼성엔지니어링 등 비상장사의 주식이나 주식연계채권을 사들인 뒤 상장차익을 남기는 식으로 승계자금을 불렸다. 결정적으로 주목을 받은 사건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주식을 인수할 때 생겼다.

이 부회장은 1996년 에버랜드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인수한 뒤 주식으로 바꿔 지금의 승계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이 부회장이 CB 인수에 들인 돈은 48억 원. 이 돈이 25년이 흐른 지금에는 삼성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이 부회장의 재산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9년 한국의 50대 부자(2019 Korea's 50 Richest People)' 분석 결과, 61억 달러(9조 원대)이다. 23년 동안 61억 원이 9조 원대로 불린 것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의 지렛대 역할을 한 에버랜드는 지금의 삼성물산으로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곧 삼성물산을 지배하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삼성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지분 17.08%를 보유한 이 부회장이다.

삼성SDS는 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크지 않다.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SDS 지분(9.2%,시가 1조5016억 원)은 상속재원으로 활용하기에 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은 1996년 삼성SDS 지분을 처음 매입한 뒤, 1999년에는 이 회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했다. 두 차례의 인수에 들어간 돈은 100억 원을 넘지 않는다. 특히 BW와 관련된 일은 나중에 삼성 특검으로 번져 이건희 회장이 유죄판결(2009년 8월)을 받는 걸로 끝난다. 그는 넉 달 뒤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이 부회장으로 승계과정에는 흠집이 남았다.

실제 삼성 승계과정에서 불거진 숱한 비판은 쌓이고 쌓여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2017년 2월)으로 이어진다. 17년 구속은 2015년 이뤄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등이 문제가 됐다. 삼성은 당시 합병은 승계와 무관하다고 항변했음에도 이 부회장은 약 1년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삼성 후계자로서 이 부회장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만큼 그가 짊어져야할 짐도 만만찮아 보인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지배구조 개편 흑역사

삼성그룹은 2013년 하반기부터 적극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지배구조 개편을 본격화했다.

삼성전자는 삼성그룹 매출의 69%를 차지(2018년 1분기 각 사 감사보고서 기준)하고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그룹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지분 보유가 필수다.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2015년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 뿐이었다. 이에 그룹 차원에서 비상등이 켜졌고 빠르게 이재용 경영권 승계가 추진됐다.

그룹 경영권이 이재용에게 정상적으로 상속 또는 증여되기 위해서는, 13조원에 달하는 이회장의 국내자산에 대해 약 6조원 정도의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내야 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삼성과 이재용은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방식을 추진한다. 결과적으로 분식회계와 합병 등 탈법을 통해 이재용은 삼성물산의 대주주가 됐고, 이를 통해 이재용은 삼성전자 지분 4.6%를 소유해 사실상의 그룹 총수로 등극했다.

즉,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으로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한 지배구조가 구축된 것이다.

합병 이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이 부회장으로 올라서면서 지분율이 23.23%까지 높아졌다. 최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비중이 52.24%까지 높아지면서 삼성물산을 통한 지배가 가능하도록 판이 짜여졌다. 현재는 이 부회장의 지분이 17.08%까지 낮아졌다. 특수 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은 총 32.95%다.

경영권 승계 작업... 치졸한 꼼수

승계의 목표는 ‘최소의 돈을 사용해 그룹의 핵심 계열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후계자에게 넘기는 것’이고, 상용하는 수법은 ‘후계자에게는 유리하고, 일부 주주들에게는 부당한 분할·합병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간에 비상장 회사나 자사주를 적당히 끼워 넣으면 이런 조작이 훨씬 쉬워진다. 회계법인만 딱 눈감아주면 된다.

삼성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 회계사기 사건이 이런 승계 작업의 교과서 격이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회계 법인을 동원해 기업 가치를 조작하고, 은폐하는 모습이 너무나 원시적 이라는 점이다. 멀쩡해 보이는 꺼풀을 조금만 벗기면, 그 속에는 초일류기업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 ‘너무나도 원시적이고 적나라한 거짓말’이 자리하고 있다.

승계의 목표와 전형적인 수법을 되새길 때 역시 핵심은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 간의 합병을 둘러싼 가치 조작이다.

먼저, 2015년 5월 작성된 삼정KPMG(이하 삼정)와 딜로이트안진(이하 안진) 보고서를 보면, 왜 그해 7월에 마무리된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 간의 합병이 얼마나 희대의 사기극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바의 가치는 별도의 가치평가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증권회사 리포트를 평균 냈음이 정식으로 확인됐다. 그것도 숫자 인용도 틀리고, 계산의 근거도 없는 그야말로 한 장짜리 숫자놀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두 보고서는 가치 조작의 ‘조금 더 큰 그림’을 보여준다. 그것은 영업 가치와 비영업 가치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이다. 예를 들어 제일모직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해 가치를 뻥튀기해야 할 삼바 주식은 정상적으로 처리하면 비영업 가치에 속하는 비상장 주식에 불과했다. 그리고 비상장 주식은 별도로 공정가치 평가를 정밀하게 하지 않는 한, 대부분 장부가로 평가한다. 실제로 그동안 제일모직은 삼바 주식을 비영업 자산으로 계리해 왔고, 그 장부상 가치는 대략 3400억 원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두 회계법인은 이 지분을 영업용 자산으로 돌린 후 별도 평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증권회사 리포트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비영업 자산으로 분류된 주식을 영업용 자산이라고 우기려면 무엇인가 근거가 필요하다. 놀이동산과 패션 사업을 하는 회사였던 제일모직이 바이오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 보이게 하는 논거 말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신수종 사업’이라는 유령 사업이었다.

두 회계법인은 이 실체도 없는 유령 사업의 가치를 3조원으로 뻥튀기하면서 이 사업과 삼바 주식을 합쳐서 바이오 사업부문이라는 영업부문을 창조해 낸 것이다. 그러면서 통상적으로 장부가치로 평가하는 ‘비영업 자산 중 비상장 주식’의 가치를 6조원(신수종 사업까지 더하면 9조원)대로 부풀린 것이다. 3400억 원짜리 가치가 6조원이 되는 마법은 이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영업 가치와 비영업 가치의 조작을 통해 가치를 왜곡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바로 현금자산의 처리다. 삼바 가치 조작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현금 자산의 부당한 처리는 (구)삼성물산의 가치를 억지로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합병 이전 (구)삼성물산은 약 1조8000억 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자산이 삼성물산의 가치평가 과정에서 그대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두 회계 법인이 이 현금자산을 전액 영업용 자산이라고 간주하여 별도 평가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즉 사업을 위해 들고 있는 돈이고, 사업에서 나오는 가치는 이미 별도로 다 계산해 두었으니 이 현금을 따로 봐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금 1조8000억 원을 전액 영업자산으로 처리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그 규모가 너무 크다. 이 경우 정상적인 방법은 이 중 영업에 사용될 부분은 적당히 추산해서 제외하고 나머지는 비영업 자산으로 간주하여 가치평가에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서만 삼성물산의 가치는 1조8000억 원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반대로 제일모직이 보유했던 영업용 자산인 에버랜드 유휴토지는 친절하게도 비영업용 자산으로 재분류하여 그 가치를 뻥튀기했다. 여기에는 물론 추진한다고 했다가 합병이 끝나고 즉시 없던 일이 된 용인시와의 이상한 사업계획이 한몫했다. 그 금액이 대략 1조원에서 1조8000억 원이다. 삼성물산 주주들은 이렇게 조작된 가치평가 보고서에 그만 깜박 속아 넘어간 것이다.

찻잔 속 지배구조 개편?... 이재용 체재 그대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활발했던 2018년과 달리 2019년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았다. 후속 작업이 이뤄진다면 삼성물산이 중심인 구도는 변함이 없겠지만,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마친 만큼 나머지 과제들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부문만 우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삼성 측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 등을 겪으면서 지배구조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총수 공백 사태를 겪으면서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 계열사별 독립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경영과 감시의 독립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해 이사회의 책임과 독립성을 강화했다.

삼성은 최근 준법감시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독립기관이다. 이재용 환송심 재판부가 기업범죄 양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후 ‘한국형 컴플라이언스’를 만든 것이다. 준법감시위원회가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계는 삼성이 스스로 추진해온 일련의 변화와 관계없이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일부만 손질을 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김선제 한국증권경제연구소장(성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은 “삼성에게 시급한 것은 정부 당국이나 시민단체 및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라면서 “지배구조 개편이 총수 일가의 사익을 위한 개편으로 이뤄지면 안된다. 국내외 투자가와 한국 경제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각 계열사마다 운영의 독립성과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주주가치 제고와 경영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이재용 시대의 숙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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