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법 시행 1년 감정노동자 고통은 되레 악화
-출근부터 퇴근 때까지 매일 180-250건 민원처리

감정노동자보호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이 지난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심각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에 노출되어 있다는 실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인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지난해 10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정노동자 보호와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병원, 백화점, 콜센터, 정부기관 등 노동자 276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여성 62%, 남성 42%가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때문에 심리적 치유가 필요한 상태였다. 응답자 중 70%'감정노동자 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공정뉴스>는 감정노동자로 일했던 A씨의 취재 협조를 얻어 감정노동자 문제를 알아본다.

 

TM센터 (사진자료 뉴시스)
TM센터 (사진자료 뉴시스)

A(·41)는 감정노동자였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약 4년간 대한통운의 전국 콜센터에서 근무했다.

중부권 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전시 대덕구 읍내동에 소재한 대한통운 고객센터에 입사한다.

전국 콜센터인지라 규모도 컸다. 10여명이 한 팀을 이룬 9개 팀과 사고처리팀 1팀이 있다. 그리고 교육을 담당한 QA강사 2~3명이 근무했다. 평균 1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2개의 아웃소싱 회사가 하청업체를 맡아 운영했다. A씨는 그 중 한 곳인 효성ITX 소속이다. 당시 A씨는 30여명의 동기들과 함께 입사를 했다.

고객의 택배를 접수하고 문의를 확인만 하면 될 것이라는 A씨의 생각은 근무를 시작하면서 깨졌다. 생존 전쟁터와 같은 지옥(地獄)이었다.

A씨는 출근에서 퇴근 때까지 매일 수백 통의 전화를 받고 걸어야 했다. 퇴근 무렵에는 말 한마디 할 힘조차 없을 만큼 목은 늘 아팠다.

프로그램에 콜 건수가 매일 체크가 됐다. 하루 IN콜 평균 180~250콜 정도를 처리했다. 고객의 문의를 확인하기 위한 OUT콜까지 합산하면 더욱 많다.

회사는 모니터링을 통해 감시하고 억압적 노동을 강요했다. 콜 수를 늘리기를 요구했다. 컴플레인에 대한 응대 방법을 강요했다. 그리고 컴플레인과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회사로부터 불이익이 내려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 불이익이 수모적이고 반 인권적이라는 데 있다. 고객에게 직접 전화해 사과를 했다. 업무 외 시간에 추가 교육을 받기도 했다.

A씨는 고객센터는 전화만 많이 받는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고객들에게 무시당하고 욕설을 들으면서도 무슨 죄인처럼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수백 번 조아려야 했다면서 명절에 물량이 몰릴 때면 전광판에 고객 대기자가 수백 명이 떴다. 오랜 대기시간으로 전화 연결되는 고객마다 불만과 함께 욕설이 튀어나왔다. 욕 받이는 고스란히 상담사들의 몫이었다.”고 했다.

A씨의 도움으로 만난 B씨를 만났다. B씨는 A씨보다 2-3살 위인 언니이다.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에도 강도 높은 노동을 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B씨는 둘째를 임신 중이라 만삭의 몸으로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로 근무했다.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고객의 욕설이 쏟아졌다. 고객에게 죄송하다면서 임신 중인 상황을 알리고 욕설을 삼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불만에 찬 고객은 니가 임신중이면 니 배를 갈라 그 애새끼를 밟아 죽여 버릴거야.’라는 섬뜩한 폭언을 들어야 했다. 당시 퇴사를 고민했지만 아이들 뒷바라지 때문에 죽지 못해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감정노동자들에 대부분이 A씨와 B씨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화난 고객들로부터 욕이나 폭력 등에 노출되어 있었다.

B씨는 감정노동자들도 고객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려 할 때에 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악성 고객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실제 감정노동자들은 직업상 고객을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이 좋거나, 슬프거나, 화나는 상황이 있더라도 회사에서 요구하는 감정과 표현으로 고객에게 응대해야 한다. 감정노동이 심해지면 노동자들은 감정의 부조화로 우울, 적응장애, 정신적 탈진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고혈압, 심장질환 등의 질병에 이환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근로자들의 직무만족도가 떨어져 기업차원에서 생산성이 감소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TM센터 자료 사진 (사진 뉴시스)
TM센터 자료 사진 (사진 뉴시스)

대한통운 고객센터는 한 달에 한두 번 콜 평가와 업무 테스트가 있다. 이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B씨는 콜 평가 기간에는 콜을 듣고 평가하는 QA강사가 실시간으로 콜을 들으며 쪽지로 코칭을 한다. 문제는 통화중에 고객의 내역을 모니터로 확인하면서 안내를 해야 한다. QA가 수시로 말투까지 간섭하며 쪽지가 날아온다. ‘고객한테 요조체(~구요.~.) 쓰시면 안돼요. 다까체(~습니다.~?) 쓰세요.’, ‘확인사항 누락하셨어요’, ‘이런 거 하시면 감점사항이에요.’라고 쪽지로 지시한다고 했다.

이어 고객을 응대하며 화면을 확인하고 입력해야 하는데 이러한 쪽지들이 수시로 화면에 떠서 앞을 가리면 고객과의 원활한 상담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쪽지 때문에 상담사는 당황스러워 더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콜 평가는 평가기간내의 콜 중 무작위로 한두 개를 뽑아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복불복이다. 운 좋아서 잘했던 콜이 뽑히면 점수를 잘 받는 거고 잘못한 콜이 뽑히면 평가는 망하는거다. 업무테스트는 점심시간에 보거나 퇴근 후 시험지를 받고 시험을 보게 된다. 업무 테스트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몇 차례나 재시험을 보게 되고 때에 따라서 중고등학교 때처럼 깜지를 제출하라고 요구받기도 했다.

B씨는 대기업 소속의 고객센터라면 그나마 처우가 낫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아웃소싱 회사 소속이다.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의 요구에 따라야 계속 재계약이 가능하다. 그래서 당시 콜이 밀릴 때면 점심 식사를 하다말고 콜을 받으러 가라고 요구받기도 했다. 점심도 로테이션으로 팀마다 돌아가면서 먹었지만 콜이 밀리면 여김 없었다. 또 화장실 때문에 자리를 조금 길게 비우면 팀장님이 화장실로 쫓아와 문을 두드리며 빨리 나오라고 촉구해 볼일을 보다말고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연장 근무는 30분이 지나면 수당을 지급한다. 회사는 그러한 점을 악용하기도 한다는 것.

B씨는 퇴근 무렵쯤 콜이 많아지면 연장을 시켜놓고 30분이되기 직전인 25분쯤 로그아웃하도록 시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치사한 방법으로 상담사들의 원성이 많았다. 그렇게 9시부터 6시까지 목 아프도록 상담하고 점심시간도 잘리고 연장 수당도 받지 못하면서 이러저러한 욕설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받게 되는 급여는 쥐꼬리 만하다.”고 했다.

그는 A씨에게 A씨가 근무하던 시기(2005-2009)와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증언했다. 또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고객의 막말 등은 여전하다고도 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들 때문에 콜센터는 이직률이 굉장히 심한 편이다. A씨와 B씨와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은 대부분 이직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한통운은 계약물류(Contract Logistics), 택배, 포워딩, 항만, 건설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SCM부문(P&D본부, W&D본부), 택배부문, 포워딩부문, 건설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것보다 B2B 상대로 거래를 더 많다. 택배보다 더 큰 스케일의 자체 대량 화물수송이나 철도 연계 화물수송에 강점을 보이는 물류회사이다.

경기도 광주(곤지암HUB)·군포·용인, 청주(옛 청원군), 대전(목상동), 옥천 HUB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1930년 조선미곡창고가 모태가 된 대한통운은 1945년 해방이후 한국미곡창고로 사명이 변경됐고 1962년 한국운송(구 조선운송)과 합병된 뒤에 1965년 자회사 대한통운해운을 새운 뒤 1968년 동아그룹에 불하되며 민영화됐다. 1997년 외환위기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8년 금호아시아나에 인수됐다. 2011CJ에 재매각이 됐다. 현재 지배구조는 CJ제일제당(40.16%), 자사주(20.42%), 국민연금(7.1%)순이다.

A씨가 근무하던 대전 고객센터는 중계터미널이다. 전국의 택배가 대전으로 모였다가 중계 작업을 거친 뒤 다시 전국으로 흩어지게 된다. 고객센터 바로 옆이 중계터미널이 위치해 있다.

고객센터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통신사, 은행, 홈쇼핑 등은 상담사에 대한 인권 대우가 심각한 상황이다.

A씨는 20094년간 일했던 대한통운을 그만둔다. 건강악화가 이유였다. 출근 때부터 퇴근 때까지 고객을 상대로 응대하면서 목이 상했다. 어느 날 화난 고객을 응대하면서 갑작스롭게 목소리가 안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그는 일을 그만두고 병원을 다녀야 했다. 회사를 다니는 4년 동안 우울증 등을 앓아 왔다고 한다.

감정노동자들은 우리은행 등을 기피 1위 기업으로 꼽는다. 우리은행 콜센터는 주기적으로 잡코리아, 커리어 등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인광고가 올리고 있다. 이는 그만큼 나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회사들에 근무하는 상담사들은 스트레스로 금세 그만두게 되므로 그만큼 많은 인원이 다시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콜센터가 이렇게 인권도 무시당하는 스트레스가 심함에도 경력직 상담사들은 다시 상담사로 취업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장애인이나 경력단절 여성, 나이가 많은 여성들도 갈 수 있는 직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 기업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잘 받아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또 다시 고객센터를 가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 20181018일 고객들의 폭언이나 폭행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시행했다.

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고객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당했을 경우 사업주에게 보호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사업주가 이에 대한 개선의지가 없거나 거부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더 지난 현재 시점에서 감정노동자들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지난 201910월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발표한 감정노동자 보호와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0%감정노동자 보호법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라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감정노동자들의 문제는 고객의 폭언과 폭행만이 근본적인 원인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의 부당한 근로자에게 대한 처우와 시스템 문제까지 얽혀있어 근로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길이 없는 것이다.

A씨는 "감정노동자 역시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회사 측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닌 전화 받는 기계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욕설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기본적인 식사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시간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감정노동자들도 인간적 대우가 절실하다. 고객의 민원을 처리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감정 환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이어 "감정노동자보호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측의 노동자들을 향한 태도와 근본적인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똑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사측의 조속한 시스템 구축만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킬 수 있다. 정부는 감정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명확한 해결책을 마련해야한다. 수년 동안 끝없이 반복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괘도난마(快刀亂麻) 할 정부의 새로운 정책을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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