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1천800TEU급 컨테이너선.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1천800TEU급 컨테이너선.

'갑(甲)질'보다 무서운 '을(乙)질'이 등장했다. 입찰 담합을 통해 갑을 속이고 14년간 부당이득을 챙긴 을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철퇴를 맞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장 지배력이 높은 대기업들이 담합해 중소ㆍ중견기업에 피해를 줬던 일반 사례와 정반대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CJ대한통운, 글로벌, 동방, 세방, 한국통운, 케이씨티시 등 6개 운송업체들이 현대중공업이 발주한 중량물 운송용역 입찰에서 담합한 행위를 적발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업체들의 담합은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약 14년 동안 총 34건에 걸쳐 이뤄졌다. 공정위는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68억 3,9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이 발주한 운송 물량을 수의계약으로 따내야 했던 운송업체들은 2005년부터 계약자 선정방식이 입찰로 변경되자 담합에 나섰다. 현대중공업이 최초로 제시한 운송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입찰을 유찰 시켰다. 현대중공업은 운송업체들의 담합을 모른 채 높게 형성된 입찰 가격을 내고 관련 부품을 운송해야만 했다.

현대중공업을 14년 간 속여온 운송업체들의 자산은 대기업인 CJ대한통운을 제외하고 대부분 1조원 안팎의 중견기업이다. 가장 많은 28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동방의 총자산은 6,200억원으로 현대중공업 총자산의 2%에 불과하다. 1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세방의 총자산도 1조원 수준이다.


공정위는 거대 대기업과 협력사 관계를 유지해온 중견 기업들이 14년 간 담합을 유지해온 것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이번 사례처럼 중소ㆍ중견기업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입찰 부정을 저지르는 사례가 없는지에 대해서도 더 살펴볼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협력관계에 있던 운송 사업자들이 장기간 담합을 유지하면서 운송비용을 인상시킨 행위를 적발ㆍ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경제 근간인 운송분야의 비용 상승을 초래하는 입찰 담합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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