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가입 24년만에 첫 격변
韓 경제 위상 볼 때 인정받기 어려워...새 협상 타결 전까지 특혜 유지 가능
공익형 직불제·청년농 육성 등 추진...농민들 요구 사항은 적극 검토할 것

정부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고 세계 무역시스템에 대응하기로 선언했다. 정부는 25일 오전 회의를 통해 이 같은 결론지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가동 이후에도 개도국 대우를 받으며 누려온 방어막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제 자유무역의 거센 바람에 완전히 노출, 우리의 국력으로 대응하는 첫 시험대에 선다는 의미가 있다. 이 같은 개도국 지위 포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따른 것이지만, 결국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08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WTO 개도국 논의 대응 방향'을 논의해 의결했다(사진=뉴시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08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WTO 개도국 논의 대응 방향'을 논의해 의결했다(사진=뉴시스)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08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WTO 개도국 논의 대응 방향'을 논의해 의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우리나라 농업에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농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예산 투자를 포함해 지속적으로 관련 대책을 발표해왔다"며 "이 대책을 더 강화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 협상 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 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Forego)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Not Seek)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의 대외 위상을 고려한 결정이다. WTO 164개 회원국 중 '주요 20개국 협의체(G20) 회원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 소득 3만 달러 이상'을 모두 충족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9곳에 불과하다. 홍 부총리는 "한국의 이런 경제적 위상을 볼 때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개도국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한국과 경제 규모·위상이 비슷하거나 낮은 싱가포르·브라질·대만 등 다수의 나라가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면서 "따라서 개도국 특혜에 관한 결정을 미룬다고 하더라도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에게 개도국 혜택을 인정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 모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홍 부총리는 이날 회의 시작 전 출입 기자단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 협상에 한해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프레임(Frame)으로 이렇게 의사 결정하게 됐다"고 알렸다.
홍 부총리는 다만 "현재·미래 WTO 농업 협상 타결 전까지는 기존 협상을 통해 이미 확보한 개도국 특혜를 변동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서 "미래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영향이 없으며 이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미래 협상이 타결돼야 (한국의) 개도국 특혜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그전까지는 국내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면서 "마무리 단계인 쌀 관세화 검증 협상 결과에도 영향이 없다. 개도국 특혜는 지위와 별개의 사안이므로 과거에 참여한 아시아·태평양 무역 협정(APTA) 등과도 관련 없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3대 정책 방향 아래 한국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쌀 등 국내 농업 민감 분야 최대한 보호 ▲국내 농업에 영향 발생 시 반드시 피해 보전 대책 마련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등이다.
홍 부총리는 "국내 농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나가겠다"면서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농업소득보전법(농업 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과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공익형 직불제는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2020년 예산안에 직불금 관련 금액을 8000억원 늘린 2조2000억원을 담았다.
재해를 입은 농업인의 경영 안정을 위해 농업재해보험 품목을 늘리는 등 보험 제도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청년·후계농 육성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최대 3년 동안 월 80만~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영농정착지원금'과 농지은행 제도 등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홍 부총리는 "그동안 주요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농업 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를 보전하자'는 차원에서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번에는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 차원에서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출발점으로 삼겠다"면서 "항상 눈과 귀를 열고 농민들의 얘기를 듣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쌀 등 일부 농산물에는 예외적인 보호조치를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수입 쌀에 대한 513% 관세도 유지할 방침이며 보조금 역시 WTO에서 허용하는 품목 불특정 최소허용 보조 등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단, 농민지원에 최대한 앞장선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보상 범위와 방법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농업 보조금을 가격을 지지하는 형태로 직접 주는 방식(현 직불금) 대신 가격과 직접 연계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꾸면 지금보다도 지원을 더 늘릴 수 있다”면서 “통상 후진국은 직접 가격을 보조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간접 지원하는 형태며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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