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조건 충족 위해 엔터식스 포함했다 우선협상자 선정되자 배제 의혹
우선협상자 조건인 '상가임차인' 없이 사업약정, 정당성 도마에

약속과 의리 따위는 없다. HDC현대산업개발 이야기다. 국토교통부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고척 뉴스테이 사업과 관련해 정몽규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우선협상자 지위를 얻기 위해 상가임차인으로 엔터식스를 끌어들였다가 자격을 따내고는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해서다. 상가임차인과 결별했는데도 우선협상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모든 게 계열사인 아이파크몰에 상가임대업을 주려는 정 회장의 지시에서 시작된 일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몽규 회장(사진=뉴시스)

엔터식스 상대 '갑질' 논란, 배경에 눈길
국회교통위원회는 오는 14일 국토교통위 회의실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대한 국감을 진행한다. 이번 국감에서는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정시설(영등포교도소) 부지 뉴스테이개발사업을 둘러싼 분쟁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척 아이파크 조감도(인터넷커뮤니티 갈무리)
고척 아이파크 조감도(인터넷커뮤니티 갈무리)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몽규 회장과 고척 뉴스테이 실무 담당 상무 2명을 증인으로 신청해 둔 상태다. 함 의원 측은 이번 일이 정 회장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사안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에 부당한 '갑질'을 했는지의 책임 공방, 두 번째는 엔터식스라는 상가임차인을 배제함으로써 현대산업개발의 우선협상자 자격에 결함이 생겼는데도 민간사업자 지위를 얻어낸 과정에 대한 의혹이다.
국토위는 정몽규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할지를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국감 증인 출석요구서는 최소 일주일 전까지는 송달을 마쳐야 한다. 이 건 관련 기관인 HUG의 국정감사일이 10월 14일, 종합 감사일이 21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10월 7일~14일까지는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은 현대산업개발과 엔터식스 사이의 갈등에서 출발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구로구 고척동 옛 영등포구치소 부지에 들어서는 뉴스테이 개발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2016년 2월 엔터식스를 찾았다. 컨소시엄을 함께 구성할 상가업체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업은 약 10만5000㎡ 부지에 주택 2214가구와 판매시설 등 주상복합을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사업비는 1조3000억 원에 이르며, LH와 HUG가 설립한 토지지원리츠가 부지를 매입한 뒤, 이를 민간사업자와 HUG가 출자한 뉴스테이 임대리츠에 부지를 임대하는 형식이다. 2022년 6월 준공이 예정됐다.
LH는 이 고척 아이파크의 사업성 확보를 위해 처음부터 공모지침서 참가조건으로 '사업신청자는 판매시설 면적 50% 이상에 대해 상가임차인의 '입점확약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내걸었다. 또한 해당 상가임차인은 '최근 3년 동안 연간 총매출액이 평균 1000억 원 이상(별도 기준)인 사업자'로 자격이 제한됐다.
현대산업개발은 매출 조건을 충족한 엔터식스와 손을 잡았고, 덕분에 2016년 9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듬해 말 구로구청에서 인허가가 떨어지자 회사 측은 갑작스레 사업 방향을 달리했다. 엔터식스에게 사업에서 빠져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재무상황 등을 살핀 결과 사업을 함께 지속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핵심 프로젝트를 잃게 된 엔터식스는 법원에 컨소시엄 구성원임을 확인하는 임차인지위보전 및 사업약정체결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기각됐다. 재판부는 '입점확약'을 맺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엔터식스에게 임차인의 지위를 인정하기 어렵고, 현대산업개발에게 사업 파트너를 교체할 권리가 있다고 봤다.
다만 가처분 소송 결과를 떠나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는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 엔터식스 관계자는 "그전에는 현대산업개발측이 재무상태 등에 대해 한 마디도 없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구두로 사업 배제 사실을 알려왔다" 며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허가 준비, 설계, 공모 사업계획, 관련 미팅 등을 위해 각종 유형, 무형의 노력이 들어갔는데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우선협상자 조건인 '상가임차인' 없이 사업약정, 정당성 도마에
더 큰 문제는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와 입점확약을 파기한 뒤, 대체할 상가임차인을 데려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토위 역시 갑질 논란보다는 현대산업개발이 우선협상자의 조건(임차인)을 완전히 유지하지 않은 채 사업 약정을 체결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HUG가 당초 이뤄져서는 안 되는 약정을 허용했고, 그 결과 국책사업인 뉴스테이를 자격 없는 사업자가 담당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엔터식스와의 결별 이후 다른 임차인을 확보하는 대신 '확약서'로 이를 대체하고 있다. 확약서는 '아파트 입주 시까지 임차인을 입점토록 할 것, 미입점시 임대조건인 보증금과 매월 임대료를 현대산업개발이 납부할 것, 임차인 변경에 따른 소송 등으로 임대리츠 등에 발생하는 손해는 현대산업개발이 상환할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함 의원 측은 이 확약서를 HUG가 받아들인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공모지침서는 여러 요건을 채워야 들어올 수 있도록 임차인의 자격을 좁히고 있었는데, 현대산업개발이 내민 확약서는 사실상 누구나 임차인이 될 수 있고 보증금 및 임대료로 임차인의 존재를 충당할 수도 있도록 조건을 대폭 완화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아이파크몰 편법 논란
정 회장의 지시를 받은 현대산업개발이 계열사 아이파크몰에 상가임대업을 주려고 엔터식스를 내몬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제기된다. 우협 선정 당시에는 아이파크몰이 자본잠식 상태라 임차인 자격이 안 됐던 만큼 차후 편법을 쓴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함 의원 측이 정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악의 경우 고척 뉴스테이 민간사업자로서 현대산업개발의 지위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공모지침서가 우선협상자의 요건으로 상가임차인의 존재를 분명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침서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취소' 조항에 따르면 "사업계획 협의 등 기간 동안 '신청자격 및 방법', '사업계획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취소한다"고 적혀 있다.
물론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이 사업 약정체결에 따라 우선협상자에서 민간사업자로 위치가 격상한 만큼 더 이상 공모지침서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법조계 한 관계자는 "우선협상자 조건은 약정 체결시까지 지켜야하는 것"이라며 "지금의 민간사업자 지위를 취소할 수는 없지만 우선협상자 였을 때 이미 취소됐어야 했기때문에 약정체결 자체가 무효가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앞서 현대산업개발이 승소한 재판은 본안 소송이 아닌 가처분 소송이다. 소송의 성격도 현대산업개발의 부적격 여부가 아니라 엔터식스의 지위 보전을 다투는 데 목적이 있었고 법원 역시 판결에서 "엔터식스를 빼고 다른 임차인으로 대체했으면 현대산업개발의 지위에 하자가 없다"는 취지로 말하고 있다. 거꾸로 말해 대체 임차인이 없으면 현대산업개발의 사업자 위치에 흠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이 사안과 관련해선 감사원 감사 또는 검찰 고발도 최후의 선택지로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함 의원실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 측이 지금이라도 다른 임차인 협상자를 내세우거나, 어떻게 자격을 갖추지 않은 채로도 약정을 맺게 됐는지, 이유는 뭔지 등을 소명한다면 굳이 국감 증인으로 정 회장을 고집할 뜻은 없다"고 한발 양보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이미 우리가 법정에서 승소해 임차인 변경이 적법하다고 결론난 사안이고, 정몽규 회장은 그 과정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며 "국감 관련해서는 엔터식스와 협의를 해나갈 계획이고 아직 얘기가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으로 밝히기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대기업이 기업 총수의 국감 증인 출석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며 “HUG 국감에서 서울남부교정시설 부지 뉴스테이 개발사업 문제에 대해 의원들의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잘못의 유무를 떠나 정몽규 회장 역시 증인으로 출석 시 질타가 이어질 수 있다. 이에 현대산업개발 내부적으로 증인 신청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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