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공백 장기화... 커지는 김상조 빈자리에 조직 위상 변화 전망
‘공정위 중수부’ 기업집단국 핵심 이탈에 재벌 개혁 동력 잃게 되나

공정거래위원회 수장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김상조 전 위원장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옮긴 직후 후임에 대한 하마평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최근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공정경제 주도부서로 막강 위상을 과시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이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후보 선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후임에 대한 하마평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수장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 기업집단국 직원들의 교체로 공정위 내부 분위기도 어수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이 재벌개혁 선봉으로 내세운 기업집단국 주요 간부들이 잇따라 교체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재벌개혁이 후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공정위를 살펴본다.

세종시에 위치한 공정위 청사 전경. (사진=뉴시스)
세종시에 위치한 공정위 청사 전경. (사진=뉴시스)

 

공정위 위상 변화 예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반부패·재벌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 선봉으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나섰다. 김 위원장은 취임 전부터 재벌 개혁을 통해 공정 경제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개혁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가 본격 궤도에 오르고 각종 실태조사를 통해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후 공정위는 지금까지 하이트진로를 시작으로 효성과 LS, 대림, 태광 등의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했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가 2014년 도입된 이후 실제 제재로 이어진 사례가 드물었던 것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올 하반기에는 삼성웰스토리 등 급식업체들의 일감 몰아주기와 한화, 미래에셋 등에 대한 제재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는 또 기업집단국 신설에 앞장섰다. 현재 조직으로는 50개가 넘는 대기업을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조사와 함께 공익법인과 지주회사 수익구조 등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부분에 대한 실태조사도 진행했다. 이를 통해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거나 계열사를 우회지원 하는 데 활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재벌 개혁의 선봉장이었던 공정위의 역할도 김 위원장의 퇴임으로 일정 부분 변화가 예상된다. 실제로 재계뿐만이 아니라 공정위 내부에서 조차 대기업 규제와  ‘갑을문제’를 두고 공정위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독과점 사업자의 지위 남용이나 담합을 제재하는 것이 경쟁당국으로서 본연의 역할이라고 믿는 직원들이 많다”며 “이에 비해 갑을 문제나 대기업 제재는 정치적인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후임 공정위원장으로 관료 출신이나 경쟁법 주류 학자 출신이 올 경우에는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나 갑을 문제 등에 소극적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차떼고 포뗀 기업집단국
21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기업집단국의 오행록 공시점검과장과 김문식 부당지원감시과장이 오는 8~9월 교체된다. 오 과장은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관, 김 과장은 주 벨기에 대사관에서 3년간 파견을 나가 경쟁관을 맡게 된다. 공정위에서 ‘에이스 조사통’으로 꼽히는 이들은 지난 2월 28일 기업집단국으로 이동한 뒤 대기업의 부당지원 및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등을 조사해왔다. 5개월 만에 다시 보직을 변경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기업집단국 기존 1기 핵심 간부인 신동열, 최장관 과장은 1년 6개월 동안 업무를 수행했다.

김 전 위원장이 설립한 기업집단국은 재벌개혁 선봉장 역할을 해오며 ‘재계 저승사자’로도 불렸다. 지난 약 2년간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 경제력 집중 및 남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감시해왔다.

김 위원장 취임 후 지금까지 하이트진로를 시작으로 효성과 LS, 대림, 태광 등의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했다. 기업집단국은 하림, 금호, 한화, 삼성, 미래에셋, 아모레퍼시픽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제재를 남겨두고 있다. 이중 일부는 딱 부러진 혐의를 포착하지 못해 심사보고서(공정위판 검찰 공소장) 작성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간부 2명이 빠질 경우 최종 심의가 더욱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상조 전 위원장은 공정위를 떠나며 “재벌 개혁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핵심 간부들이 떠난 기업집단국이 재벌개혁을 수행 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차기 공정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 (왼쪽부터)김남근 민변 부회장, 김오수 법무부차관, 김은미 국민권익위 상임위원. (사진=뉴시스)
차기 공정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 (왼쪽부터)김남근 민변 부회장, 김오수 법무부차관, 김은미 국민권익위 상임위원. (사진=뉴시스)

 

하마평 오르는 인사들
김상조 위원장 퇴임 직후 민변 김남근 부회장, 김은미 국민권익위 상임위원,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과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김오수 법무부차관 등이 거론됐었다. 최근에는 조성욱 서울대 교수가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차기 공정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 (왼쪽부터) 조성욱 서울대 교수,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 최정표 KDI원장. (사진=뉴시스)
차기 공정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 (왼쪽부터) 조성욱 서울대 교수,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 최정표 KDI원장. (사진=뉴시스)

 

차기 공정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로드맵은 밝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은 기업집단국의 행정안전부의 신설기구 평가 통과가 숙제로 남겨져 있다. 기업집단국은 2017년 2년 한시조직으로 출범해 올해 신설기구 평가를 통과해야 정규 조직이 될 수 있다. 앞서 2005년에는 재계 반발로 대기업 조사를 전담했던 조사국이 없어지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15개 대기업집단이 순환출자 해소나 내부거래 축소·중단,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에 나섰다. 그러나 몇몇 대기업은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제재대상을 늘리겠다고 예고하자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련 계열사의 총수 일가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도 했다.

여기에 25일 취임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윤 신임 총장은 평소 공정거래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석열호의 첫 인지 수사로 기업 담합 등 공정거래 사건을 꼽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로 인해 위상에 타격을 입은 공정위 입장에서는 내우외환이 겹친 셈이다. 과연 누가 위기의 공정위호 선장이 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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