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서거 10년’ ... 친문과 친이(해찬)로 나뉜 ‘친노’
- 친문 잠룡 떠오른 이낙연·김경수, 친이 된 유시민
- 차기주자 안희정 ‘미투’ 재판중... 한국당 간 김병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10주기를 맞았다. 한때 ‘폐족’이라고 한탄했던 ‘노무현의 사람들’은 이제 대통령에 이어 차기 잠룡까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친노는 분화됐다. 크게 친문과 친이(해찬)로 나뉘었다. 일부는 아예 진영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서거 10주기를 맞아 ‘노무현의 사람들’의 현재를 살펴본다.

 

2009년 4월 30일 대검찰청에 출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주영훈 경호처장, 한 사람 건너 전해철 의원, 김경수 경남지사.
2009년 4월 30일 대검찰청에 출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주영훈 경호처장, 한 사람 건너 전해철 의원, 김경수 경남지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10년이 지났다. 노 전 대통령과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정권 교체를 주도한 뒤 크고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는 반대 진영으로 가거나 정치적 타격을 입기도 했다.

지난 2002년 대선 부산 유세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아주 믿음직한 문재인이를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햇수로 15년이 지나 그의 친구는 대통령이 됐다. 이 과정에서 ‘친노’로 불리며 노무현 정부 요직을 맡았던 이들의 상당수는 자연스럽게 ‘친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친노 세력은 서서히 분화됐다. 범친문으로 모였던 그들은 이해찬 대표의 당대표 당선 후 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친문 깃발 아래 모인 잠룡들
대표적인 친노-친문 정치인으로 꼽히는 사람은 바로 이낙연 국무총리다. 2002년 대선 때 선대위 대변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 총리는 이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도 지냈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김경수 경남지사.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김경수 경남지사.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할 당시 이 총리가 민주당에 남았지만 교류는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반대 소신 투표다. 2004년 3월 국회 탄핵 투표에서 찬성 193표 반대 2표가 나왔는데 이 반대표를 던진 게 당시 이낙연 의원이었다.

이후 4선 의원을 거쳐 2014년 전남지사에 당선된 이 총리는 문 대통령 취임 다음날 국무총리로 지명되어 2년이 넘도록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책임총리제 하에 뛰어난 국정 뒷받침으로 현재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잠룡 1위에 꼽히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 경남지사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가족들과 함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정착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좌했다.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도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냈다.

김 지사는 오랜 보좌관 생활에도 직접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없어 아내에게 약속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는 직접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다.

2011년 4·27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다 유시민 이사장이 만든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에게 양보했던 김 지사는 이후 2012년 총선에서 김태호 전 경남지사에게 패배했다. 이후 2016년 총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 지사는 당의 강력한 요청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험지 경남에서 승리하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드루킹 댓글 사건’으로 법정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고 있다.

아직 잠룡으로 거론되지는 않지만 전해철 민주당 의원도 빼놓을 수 없는 친노-친문이다.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세운 법무법인 해마루에 1993년 소속되며 인연을 맺었다.

여러 차례 정치 입문 제의를 거절하던 전 의원은 꾸준히 민변 활동을 하다 2004년 탄핵 당시 문 대통령과 함께 노 전 대통령 변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거쳐 2006년엔 민정수석으로 일했다. 2008년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다가 19대와 20대 경기도 안산 상록갑에서 당선됐다. 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당시 문 대통령과 함께 변호사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해찬과 유시민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 총리로 역대 정부 처음으로 ‘책임총리’로 실권을 휘둘렀다. 이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왼쪽),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민주당 대표(왼쪽),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하지만 총리 재직 시절 수차례 물의를 일으켜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기기도 했다. 2005년 강원도 양양군 산불 사건 발생시 골프치러 갔다가 비난을 받은데 이어, 2006년 3·1절 골프 파문으로 인해 총리직을 사퇴했다. 이 때문에 친노-친문 일각에선 이 대표를 두고 “자기 정치만 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뼛속까지 친노’라고 자신을 밝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대표적인 친노 인사다. 그는 한 때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호위무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유 이사장을 친문보다 친이해찬계로 분류하는 이유는 두 사람의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의원 이해찬의 보좌관이 바로 유 이사장이었다. 여기에 유 이사장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은 이유도 이해찬 대표가 직접 이사장직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유 이사장이 10주기를 맞아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은 것도 친문보다 이해찬계로 분류되는 이유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새로운 노무현 아닌가”라는 볼멘소리가 친문진영 한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안 한다”고 얘기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여론조사기관에 자기를 빼고 대선후보군 조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최근 유력한 대권 주자로 계속 거론된다.

정권 교체의 숨은 주역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도 손꼽히는 친노 인사다.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당선인비서를 거쳐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맡았다. 이후 문 대통령이 2016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을 때 탁현민 전 행정관과 함께 동행했다. 대통령 후보시절 문재인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 당선 후 계속되는 ‘3철’ 논란에 휩싸여 야인으로 돌아갔으나 지난 13일 민주당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과정에서 이해찬 대표가 끈질기게 설득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친문에서 친이로 갈아탄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노무현 사람들의 명과 암
노 전 대통령 밑에 있던 사람들이 영광만 누리는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업자’이자 ‘좌희정 우광재’로 불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한때 강력한 차기 주자였다. 하지만 비서 김지은씨 ‘성폭행’ 재판으로 인해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 이광재 전 강원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 이광재 전 강원지사.

 

국회의원 노무현의 첫 보좌관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참여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엔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돼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 원장을 맡고 있다.

친노 진영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1990년대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소장을 맡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하지만 2006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도 임명된 뒤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해 점차 ‘친노’와 멀어졌다. 결국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때 국무총리 후보자로 재등장하며 보수진영과 인연을 맺었고,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까지 맡아 친노 인사 중 가장 ‘멀리’ 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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