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 ‘위기설’ 내막
- 김수현, 뜻대로 안되는 관료들에 “집권 4주년이냐” 일갈
- 강효상, 한미정상 대화록 공개... 주미대사관 집단 항명 논란
- ‘기밀누출’에 한미 외교 적신호... 외교부 법적 대응 검토

“집권 4주년 같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 말이다. 관료 사회가 청와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치권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모여 ‘文정부 X파일’을 만든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최근 한국당이 집권 시절 인맥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설도 제기된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대화록 유출은 이런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만 2년을 갓 지난 문재인 정부를 향한 한국당과 관료집단 내부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지난 10일 만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사진=뉴시스)
지난 10일 만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사진=뉴시스)

 

“집권 4주년 같다” 속내 드러낸 여권
청와대가 관료들에 대해 속을 끓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에 참석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실장의 대화에서 이같이 드러났다.

이 원내대표가 먼저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은 제가 다 하겠다”라고 말하자, 김 실장이 “그건 해달라. 정부가 진짜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고 답한 것이다. 두 사람은 이어  버스 사태 등과 관련해 국토교통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관료들이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여권 핵심부가 관료들의 복지부동, 더 나아가 조직적인 정권 반대 움직임을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서울 모처에서 모여 ‘文정부 X파일’을 만든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최근 한국당이 집권 시절 인맥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설도 제기된다.

이런 와중에 터진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대화록 유출은 주미대사관 간부가 연루돼 이런 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직적으로 기밀유출이 이뤄졌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뉴시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뉴시스)

 

외교문제 비화된 대화록 유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지난 9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5월 하순 방일 직후 한국을 들러 달라고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정보의 출처로는 ‘미국 외교 소식통’이라고 했다.

미국 워싱턴 DC에 파견된 외교부 합동 감찰팀 감사 결과, 주미 한국대사관의 K참사관이 고등학교 선배인 강효상 의원에게 이를 누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K참사관은 지난 9일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통해 강 의원에게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 등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된 대화는 지난 7일 통화 내용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5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지난 4일 쏘아올린 발사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국가 정상 간 통화 내용은 ‘3급 비밀(Confidential)’에 해당한다. 양국 간 중요 안보사항 등이 오가기 때문이다. 정상 간 통화 내용은 외교 관례상 양국 합의 내용만 공개한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K참사관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는 동시에 이 같은 행위를 외교상기밀누설죄 위반으로 보고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청와대가 사실무근이라고 해놓고 기밀누설을 운운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 형법 113조는 외교상 기밀 누설에 대해 5년 이하 징역,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누설할 목적으로 기밀을 수집한 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문제는 이 대화록에 미국 입장에서 대단히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이 포함된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 법에도 저촉돼 미국 FBI가 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 연방형법 37장 ‘간첩 및 검열’의 798조 (a)항 (3)에 따르면 “누구든지 고의로 미국 또는 외국정부의 통신정보 활동에 관한 기밀 자료를 이용해 미국에 해를 끼치거나 타국 정부에 도움을 준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등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유력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국무장관 시절 사설 이메일 서버를 통해 업무관련 문서를 주고받은 ‘이메일 스캔들’로 곤혹을 치룬 바 있다.

한국당 안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외교기밀 누설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썼다. 윤 의원은 이어 “정치의 최우선 가치는 국익”이라며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지적했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가 기밀을 유출·공개한 국회의원 강효상과 외교부 직원을 모두 강력히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원도 올라왔다. 청원인은 “간첩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이적 행위”라며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간첩 행위가 외교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당 청원은 24일 오후 2시 기준 3만6600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겉은 문재인, 속은 한국당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외교부가 한·미 정상의 대화 유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 여러 명이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을 돌려본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부 합동 감찰팀은 23일 이런 사실을 시인하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통화 내용은 3급 기밀로 분류돼 외교통신시스템을 통해 암호 문서로 제작돼 조윤제 주미대사만 보도록 전달했다. 그런데 대사관 직원 여러 명이 문서를 출력해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업무 규정에 따르면 보안문서는 이중 잠금장치가 된 비밀보관 용기에 보관해야 하고, 복사도 엄격히 제한된다. 복사할 경우 모든 사본에 일련번호를 부여해야 한다. ‘외교부 엘리트 집합소’라는 주미한국대사관이 기본적인 사항조차 안 지키고 있는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는 ‘한일위안부협정’ 체결 과정에서 졸속 처리한 정황이 드러나며 “외교부가 아닌 왜(倭)교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일이 과연 외교부에서만 일어났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과 관료 사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열심히 일한 공무원들이 줄줄이 인사 불이익이나 처벌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다른 부처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문호 정치평론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정부에서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늘 있어왔다”며 “하지만 이번 사안은 다르다. 정권에 대놓고 조직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정부부처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며 “문 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수면 아래에서 반기를 들던 관료들의 움직임이 이번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장차관 워크숍에서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혁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복지부동, 무사안일, 탁상행정 등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붙지 않도록 과감하게 혁신하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의 경고가 과연 공직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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