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두 고문
이원두 고문

의욕이 앞선 탓일까, 아니면 이상이 높기 때문일까? 당국이 내 놓는 굵직한 경제정책 가운데는 효과 보다 부작용이 큰 것도 없지 않다. 초기에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홍보에 기대도 컸으나 오히려 후유증 파장만 깊어지고 있음을 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드 수수료 문제이다. 금융당국이 자영 영세업자를 도우려고 카드수수료 인하를 유도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 등으로 겪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카드 수수료 인하였다. 포인트, 마일리지 적립 등 지금까지의 마케팅 비용을 줄임으로서 그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한 카드업계는 대기업 상대로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영세업자에게 깎아 준 것을 벌충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등 내구성 소비재, 보험업, 대형 유통업, 통신업체가 주 대상이었으며 현대자동차 그룹이 첫 타깃이 되었다. 금융당국이 카드업계에 힘을 실어 주는 등 압력을 가했으나 결과는 카드업계의 완패로 끝이 났다. 현대자동차는 카드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수수료를 감당하느니 ‘복합할부제’자체를 포기 하겠다고 맞선 것이다. 대형 고객을 놓칠 수 없는 카드사가 손을 든 것은 당연한 귀결. 금융당국만 체면을 구긴 셈이다. 여론의 압력이나 정책당국을 배려하기에는 현대자동차, 나아가서 자동차 업계가 안고 있는 여건이 위기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나쁘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EU, 일본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자율운전을 비롯한 전장화라는 기술적 장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차는 이미 중국 공장을 닫았다. 이런 판국에 카드 수수료를 인상하자고 제안한 것은 심하게 말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이다. 금융당국이 체면을 깎기고 카드사가 백기를 든 배경이다. 한마디로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정책적 욕구’만을 고집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뿐 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발표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가 무려 26만 명이나 늘어났다. 이른바 ‘고용절벽 상황’을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수치다. 그러나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 없다. 정부가 8천억 원을 들인 노인 단기 일자리가 40만 명이나 늘어난 것일 뿐, 경제의 허리라고 할 30대 40대 일자리는 오히려 24만 명이 줄었다. 이 가운데 제조업, 금융업 일자리는 무려 19만 명이 줄었다. 고용의 질이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현상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이른바 ‘소주성’(소득주도 성장)에 있으며 그 핵심 요인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의 일률적인 강행에 있다.

임금의 기본은 지불능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며 근로 시간은 해당 업종의 특성에 따라 좌우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제에 있어서 평등과 공정은 경쟁의 룰에서 찾아야 한다. 같은 조건에서 공평한 경쟁이 이루어질 때 경제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그 원인이 정치적이든 아니든 관계없이)운동장이라면 이미 경제정의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런 여건에서 이루어진 ‘인위적인 공정성’의 청구서는 결국 모든 소비자와 납세자에게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경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말하기 전에 정책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선행되야한다. 가령 자본금 1만원 규모의 기업(자영업자)이 위기를 맞았을 때 정책은 무엇을 지원했는가? 반대로 자본금 규모가 천배나 되는 1천만 원 기업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정부는 공적자금 등으로 회생을 지원해 준다. 기업정책부터 이처럼 차이가 난다. 그러나 최저임금과 근로 시간 단축에서는 기업규모에 따른 차이가 없다.

지불 능력이 없는 영세자 영업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업주의 수입이 알바생 보다 적은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책당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 입법에 나선다. 이런 현상은 결국 정책당국이나 정치권이 경제현장, 현실을 잘 모르는채 의욕과 이상만 앞세운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관료 출신은 그래도 기업 현실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 특히 대기업 반대편에 서 있던 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들은 시민단체 논리(그들만의정치논리)로 경제를 재단하려고 한다. 그 결과 가 바로 ‘소주성’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치 인큐베이터로 경제를 육성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기업이 아니라 우선 중소기업부터 그 후유증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기업 정책은 기업규모와 능력에 따라 맞춤형으로 입안 집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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