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카드사들과 협상 타결... 남은 것은 신한·삼성·롯데
정부,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 실태조사... 현대차 압박하나

현대차와 카드사들이 카드 수수료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대차에서 파는 차를 신용카드로 구입할 때 카드사가 현대차에 가맹점 수수료로 몇 %를 떼는지를 놓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운데 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수료 2차대전 승리한 현대차
KB국민·하나·현대카드 등 일부 카드사와 현대자동차 간 수수료 협상이 타결됐다. 수수료율 인상을 둘러싼 카드업계와 현대차의 갈등이 진정 국면에 들어간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KB국민·현대·하나·NH농협·씨티카드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협상을 10일 마무리했다. 이어 11일에는 BC카드도 현대차의 수수료 인상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로써 현대차와 협상을 진행 중인 카드사는 신한·삼성·롯데카드 세 곳으로 줄었다.

이미 현대차와 협상을 타결한 카드사의 수수료율 인상폭은 0.04~0.05%p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초 카드사가 요구했던 0.1~0.14%p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 수준이다.

신한·삼성·롯데카드는 현대차와 협상에서 수수료율 인상폭이 충분치 않으면 다른 대형 가맹점과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우려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차가 제시한 조정안은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라며 “현대차가 원하는 수준을 맞추면 다른 대형 가맹점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이동통신 3사에는 0.2%p 인상안을 통보한 상태다.

하지만 업계에선 현대차와 신한카드 등 3개 사의 계약이 일시적으로 해지되더라도 가까운 시일 안에 협상이 타결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수수료 전쟁은 카드업계가 현대차와 기아차에 현재 1.8%대인 카드수수료율을 이번 달 1일부터 1.9%대로 올리겠다고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현대차와 기아차는 수수료율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어 현대차는 지난 4일 신한·삼성·KB국민·하나·롯데카드 5개사에게 10일부터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어 7일에는 현대차와 협상을 벌이다 인상 쪽으로 방향을 튼 BC카드에 가맹계약 해지 방침을 통보했다.

수수료 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에도 자동차 복합할부금융 수수료율를 두고 KB국민카드와의 한판 승부에서 승리한 바 있다. 카드사들이 ‘복합할부’라는 편법으로 소비자들의 카드결제를 부추기자 계약해지를 무기로 한 현대차 측이 카드사를 압박해 가맹점 수수료를 0.4%p 끌어내린 바 있다.

현대차, 사실상 정부 방침에 반기 들어
업계에서는 사실상 영세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를 낮춘 대신 대기업들의 카드 수수료는 높이라는 정부 방침에 현대차가 반기를 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영세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 인하정책을 추진했고, 그 반대급부로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에서 수수료를 올려 만회하는 것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 입장에서도 손실을 메꾸기 위해 현대차와 통신사, 대형유통업체 등에 적용하는 가맹점 수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차는 카드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고객이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아쉬울 것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카드사들의 영업이익률이 현대차보다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정부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빠르면 2분기 중 연매출 500억원을 초과하는 대형가맹점과 카드사간 카드수수료 계약 실태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대형가맹점이 카드사의 ‘갑(甲)’인 만큼 이들이 카드사에게 과도하게 수수료 인하 압박을 가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카드수수료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대형가맹점이 카드사에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를 요구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협상력이 강한 대형가맹점이 카드사에 압력을 행사해 낮은 수준의 수수료율을 적용받으면 카드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번 현대차의 사례가 이같은 금융당국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대형가맹점과 카드사가 최종 수수료율을 결정하면 실태 조사를 통해 ‘부당 요구’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여신전문금융업법에 관련 근거가 있긴 하지만, 부당 요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다 지금까지 제재한 사례가 없어 당국은 고민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2019년 금융위 업무보고’ 기자회견에서 “현대차가 인상된 카드 수수료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하는 게 법령에 어긋나거나 불공정한 행위인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판단하기 어렵다”며 “최대한 양 당사자 간에 협의를 통해서 적정한 선이 찾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한편 현대차와 신한·삼성·롯데카드의 수수료율 협상이 길어지면서 11일부터 신용카드를 이용해 현대차를 구매하려는 고객 일부가 불편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일선 영업점에 신한·삼성·롯데카드를 받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부 방침을 등에 업은 카드사와 현대차의 ‘고래싸움’에 소비자 등만 터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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