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서 책임회피 급급하다 “인수해선 안 될 회사” 언급
경쟁사, 발언 이용해 수주전 승리... “대주주 부적절 발언” 비판 나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2일 1조원대로 알려진 성남 은행주공 아파트단지 재건축의 시공사가 선정됐다.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움이 대우건설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GS·현대산업 컨소시움 측이 이 회장의 발언을 이용해 수주전에 활용했고, 이것이 시공사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답변중인 이동걸 산업은행회장. (사진=뉴시스)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답변중인 이동걸 산업은행회장. (사진=뉴시스)

이동걸 발언에 날라간 1조원대 수주
성남 은행주공 재건축조합은 이날 성남시 위례동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재건축 시공자 선정 조합원 총회를 열고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을 재건축 시공자로 선정했다. 1931세대가 투표해 GS·현산 컨소시움이 984표를 얻어 877표를 얻은 대우건설을 비교적 근소한 차이로 물리쳤다.

이번 대우건설의 수주전 패배를 두고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번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벌어진 각종 여론전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대우건설을 못 믿겠다”며 내세운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지난 국감에서 나온 이 회장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2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무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종석 의원이 “오전 국정감사 당시 KDB생명을 인수해서는 안 되는 회사라고 답변했다. (인수해선 안 될 회사를 인수한 적이) 처음은 아니지 않냐”고 질문하자 이 회장이 “수도 없이 많다.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회장은 이어 “지금 갖고 있는 부실기업은 지난 4~5년 전 이전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라며 “현재 취임 후에는 단 한건도 없다”고 덧붙였다.

“인수해서 안 될 회사”
대우건설의 최대주주(50.75%)인 산업은행의 수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해선 안 될 회사’로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의 주인이자 앞으로 대우건설의 가치를 올려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 매각 주체이기도 하다.

이 회장의 발언이 수주 실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울러 이 회장이 책임 회피에 급급해 하지 말았어야 할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수주전에서 상대방이 이 발언을 이용해 승리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은회장의 발언을 인용해 대우건설을 비방하는 내용의 유인물. (사진=성남 은행주공 조합원 제공)
이동걸 산은회장의 발언을 인용해 대우건설을 비방하는 내용의 유인물. (사진=성남 은행주공 조합원 제공)

특히 대우건설 안팎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우건설 전 직원 A씨는 “대주주로서 해서는 안 될 처신이었다. 대우건설을 정상화 시켜서 비싸게 팔아 국민의 혈세를 메꿔야 할 산업은행이 오히려 실적을 깎아 먹은 셈”이라며 “경솔한 한마디로 1조원 수주가 날라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우건설에 근무하는 B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우건설의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하겠다고 하더니 인수해선 안 될 회사라고 답변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정상화 노력에 찬물 끼얹어
최근 대우건설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1년 3조2000억원에 금호아시아나로부터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올 초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던 호반의 인수 금액은 약 1조6000억원이었다. 대우건설의 가치가 절반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여기에 지난 2016년 대규모 해외사업 손실 등에 따른 빅배스로 한 분기에 1조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수익성은 악화했고, 시장의 신뢰까지 추락했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의 가치나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펴왔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9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우건설은 2~3년 재정비하고 정상화시키면 남북경협 이슈도 있고 시장이 좋아지면 가치가 2배 정도 뛸 가능성이 있다”며 “서둘러 팔 생각은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도 지난 6월 김형 대우건설 사장을 선임 하면서 ‘기업가치를 높여 2~3년 후 매각’을 천명했다. 대우건설도 김형 사장을 필두로 잇단 해외사업 부실로 인해 떨어진 수익성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이동걸 회장의 발언은 최종 책임자가 자신의 책임은 도외시한 채 대우건설의 자구 노력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단순히 직원들의 사기를 꺾는데 그치지 않고 차후 있을 대우건설 매각에 악영향을 주는 데 있다. 주인이 나서서 ‘인수해선 안 되는 기업’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 외부에서 보기에 좋게 보일 리 없다. 더군다나 산은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시점은 8년 가까이 지난 2011년이어서 인수의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런 면에서 이 회장의 발언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책임 회피에 급급해 실망스런 답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감장에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과 날선 비판을 피하고 싶은 이 회장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너무 많이 나갔다’는 건 사실”이라고 꼬집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이 점에 대해서 코멘트할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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