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두 얼굴... 불공정 파수꾼에서 로비스트로

공정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퇴직자들의 특혜 취업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공정위 전직 위원장들까지 연루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방해 및 공직자 윤리법 위반 혐의다. 뇌물죄 성립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공정위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다. 김상조 위원장 취임 2년차를 맞은 위기의 공정위를 진단한다.

칼 빼든 검찰
공정위가 위기다. 모럴 해저드를 넘어선 총체적 난국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구상엽)는 지난달 20일 세종시의 공정위 운영지원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퇴직자 재취업이 운영지원과장을 거쳐 사무처장, 부위원장, 위원장까지 보고 라인을 거쳐 최종 승인됐다는 내용의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010년 이전부터 관행적으로 공정위 운영지원과가 공정위의 감독을 받는 주요 기업들에 채용을 사실상 강요해 퇴직자들을 현대·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20여 곳에 재취업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 본사를 포함한 현대건설, 현대백화점, 쿠팡 등 4곳을 압수수색해 재취업 퇴직자들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공정위 퇴직자들의 재취업이 내부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퇴직 후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공정위가 기업들에게 강요했다고 보고 있다. 소환 조사를 받은 기업 관계자 대부분이 “공정위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취업을 승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취업자 대부분이 고문 등의 직함을 달고 공정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맡으며 출근도 하지 않고 법인카드 영수증만 제출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일이 모두 사실로 밝혀질 경우 공정위 전·현직 간부들에겐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검찰은 2011년 이후 공정위에 재직했던 전직 위원장과 부위원장, 사무처장, 운영지원과장 등 10여 명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김동수(63)·노대래(62)·정재찬(62) 전 위원장을 포함해 신영선(57)·김학현(61) 전 부위원장 등 전직 고위간부 여러 명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다만 김상조 현 위원장은 이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한 공정위 퇴직자들이 재취업 과정에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않는 등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혐의도 조사 중이다.

경우에 따라 뇌물 수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대기업이 공정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퇴직자들을 채용했거나 퇴직자가 현직에 있을 때 이를 약속했다면 뇌물죄 성립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8년 5월말까지 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에 대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재심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공정위 퇴직자는 모두 191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취업 재심사 대상인 4급 이상은 92명이나 정작 심사를 받은 인원은 47명에 불과했다.

돈 맛들인 공정위 퇴직자
심사인원이 심사 대상 절반에 불과한 원인으로 ▲좁은 심사 대상 ▲제도의 미비 ▲취업 제한기간 회피의 세 가지가 꼽히고 있다. 심사대상이 4급 이상에만 한정돼 5급 퇴직자들이 곧바로 로펌에 전문위원으로 취업하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업제한기관이 아닌 작은 로펌에 우선 취업한 뒤 퇴직 2~3년이 지난 후 대형 로펌으로 이동하거나, 취업제한기관이 아닌 대기업 자회사에 취직 후 그룹 관련 일을 하는 ‘꼼수’를 막는 규정이 미비하다. 실제로 지난 6월 26일 검찰은 이런 방식을 사용한 혐의를 받는 신세계그룹 자회사 신세계페이먼츠를 압수수색했다.

취업 제한기간을 훌쩍 넘겨 취업해 아예 심사를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14년 퇴직 후 2년간 대학에 몸담았던 한 전직 위원장은 2년이 지나자 심사 없이 대형 로펌 고문으로 취업한 일도 있다.

심사를 받은 47명의 재취업 현황을 분석해보면, 이들 대부분 대기업과 대형 로펌으로 이직했다. 기아차, KCC, 삼성카드, SK에너지, 포스코특수강, 삼성자산운용, LG경영개발원, KT,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이었다. 이들에 대한 공직자윤리위 심사 결과, 취업제한을 받거나 불승인 된 것은 6명에 불과했다. 불승인 인원이 10% 정도에 불과한 이유로 공정위가 퇴직자들의 경력관리를 해준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은 ‘퇴직 전 5년간 취급한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취해지기 때문에 기업과 접촉할 일이 없는 교육이나 파견 또는 비경제부서인 정보화담당관 등의 부서로 발령을 내는 것이다. 실제로 퇴직자 중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 소속이나 OECD에 파견된 직원이 유독 많은 이유다.

공정위 퇴직자들의 대기업행이나 로펌행이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불공정 행위를 막는‘파수꾼’역할을 하다가 퇴직과 동시에 로펌이나 대기업으로 옮겨 친정인 공정위를 상대로 ‘로비스트’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종시 공정위 청사
세종시 공정위 청사

공정위 규정 강화해야
공정위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재벌저격수’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재벌개혁을 추진할수록 현직 공정위 직원들의 ‘끗발’은 세질 것이고, 로펌 등에 나가 있는 공정위 퇴직자들은 일감이 많아져서 서로 좋아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허점을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의 제정 취지에 맞는 엄격한 재취업심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공정위의 업무 특수성을 고려해 경찰과 같이 심사 대상을 7급까지 하향하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둘째로 작은 로펌에 우선 취업 후 대형 로펌으로 이동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모든 로펌을 취업제한기관으로 지정하고,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자회사도 취업제한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현재 퇴직 후 3년인 취업 제한기간을 최소 5년으로 늘려 누구도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한 공정위가 자체적으로 퇴직 예정자들을 위한 경력관리를 하지 못하도록 공정위 규정 등으로 제도화하는 방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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