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의 햇볕이 시작되는 2018.06. 04. 월요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옆 카페'락앤락'에서 배우 이현주를 만났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백발 노모 역할을 맡았다. 지금은 공연을 끝마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엄마다. 다음 공연 때까지는 한 아이의 엄마의 역할에 충실한다. 가족과 아이가 그녀의 쉼이기 때문이다. 한 가정의 엄마로, 한 명의 여배우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배우 이현주를 알아봤다. 

- 최근에 공연을 끝마쳤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 얼마 전까지 <조선간장> 이라는 작품을 했다.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쉬고 있다. 결혼해 아이도 있다. 공연을 끝마치고 바로 집으로 가더라도, 집에 12시나 1시에 들어가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해서 쉴 때 만이라도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할 것 같다. 

▲ 그렇다. 그런데 지난해 몇 개월 쉴 때가 있었다. 그때 아들이 "일 안 해? 일해야지. 못하는 거 아냐"라며 너무 오래 쉬고 있으니 걱정을 하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 뭔가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것 같다. 그래도 얼마 전에 "나 엄마한테 서운한 거 하나 있어"라며 속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래서 "너 서운한 거만 생각하냐 엄마가 잘해준 것도 있지 않느냐"라고 답하니 "그래서 하나 깠어"라고 말하더라.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됐는데, 좀 더 신경 써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아들은 엄마와 엄마가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나. 

▲ 어렸을 때부터, 뱃속에 있을때부터 무대에 올라가고, 이 세계에 함께 있다 보니까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모고 삼촌이고 전부다 배우다 보니까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엄마가 불안정하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 같고, 걱정도 해준다. 남편이 PD 출신이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아들이 배우를 하는 걸 반대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추천한다. 물론 먹고사는 건 힘들지만 그거 외에는 이 직업을 갖고 나서 행복하고 좋았다. 내가 너무 좋다 보니까 '아들이 배우를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연극 교실도 가게 하고 같이 공부도 했다. 그런데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니 개그맨이 꿈이라고 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딴소리를 하더라. 그래도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했으면 좋겠다. 

- 배우 이현주는 어떤 이미지를 가진 배우인가.  

▲연기를 통해서 삶을 배우고 채워가고 있다. 연극을 주로 하는 편이다. 

- 좀 더 깊게, 배우 혹은 사람 이현주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 

▲ 조금 더 깊게 가자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연기를 통해서 배워 가는 것 같다. 계기가 됐던 작품들도 있다.요즘엔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너무 무지하게 살았 던 것 같아서 이제는 조금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내 후배들을 위해 나를 위해, 혹은 선배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씩 바뀌고 있는 그런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연극 조선간장
연극 조선간장

- 최근에 했던 작품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린다. 

▲ 작품의 이름은 <조선간장>이다. 이 작품은 예전부터 종갓집을 보면 매년 간장을 만드는데 그걸 다 먹지 않고, 조금씩 남겨두고 새로운 간장을 만들 때마다 축적시켜서 씨간장이란 걸 만들었다. 이 씨간장을 두고 가족들 간에서 벌어지는 인생사를 담은 연극이다. 예전에는 이런 씨간장을 종갓집에서 대대로 내려 담아서 수 억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번 극에서 주인공 노모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자식들 중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주인공 노모역을 주셔서 놀랐다. 40대인 내가 70대 역할을 맡아서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선배들에게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것도 내 선택에 한몫했던 것 같다. 

-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나. 

▲ 그런 것 같다. 처음 배역을 맡았을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연기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준비해서 하다 보니 그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봤을 때 너무 깊이 없는 연기가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뭔가 따로 영감을 받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제 자식을 두고 생각을 해보니 나이만 다를 뿐이지 자식을 생각하는 그런 느낌은 비슷할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됐던 것 같다. 

특히 이제 치매에 걸린 엄마가 대사 한마디 없이 눈빛과 연기로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울컥하는 부분이고, 많은 관객들도 그 부분에서 눈물을 흘리더라. 이전엔 엄마와 아들, 엄마와 딸 이런 관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내가 엄마가 돼서 아이를 키우게 되니 모든 게 바뀌더라. 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극 중 노모가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이해되고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물론 경험을 안 해도 잘하는 배우들이 있지만 일단 난 그랬던 것 같다.  

- 작업을 하면서 후회한 점은 없었나. 

▲ 사실 <조선간장>을 하면서 아쉬운 게 후회되는게 있었다. 내가 극에 몰입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조금 더 다듬어서 다시 무대에 올라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10년, 20년 후에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해보고 싶다. 그러면 조금 더 나은 모습의 노모, 조금 더 다른 엄마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품을 하면서 항상 의심했다. 사실 이렇게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 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다시 무대에 올라가더라도 의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연기를 하면서 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영상으로 확인을 할 순 있지만, 직접 보면서 그 배우의 눈빛이라던가 분위기를 표출하는 것과 영상 속 모습과는 차이가 있으니까.  계속 의심하면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하고 연기했던 것 같다. 

- 가장 좋아하는 배역이 있다면? 

▲ 아무래도 내가 맡았던 주인공 노모 할머니 역할이 아닐까. 그 배역이 가장 좋고 기억나는 것 같다.  처음 연기 연습을 시작할 때 연출가가 등이 굽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종갓집에 있는 할머니고 시골에서 오랜 세월 일을 해왔는데 등이 굽은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연습 내내 등짝을 앞으로 굽히고 했다. 처음엔 진짜 힘들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적응이 되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허리를 굽힐 때도 있었다.  

- 제일 기억나는 작품은. 

▲ 기억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 두 개인데 하나는 <아홉 개의 하늘>고 또 다른 하나는 <가족의 왈츠>다. 두 작품 모두 관객들로 하여금, 배우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연극 가족의 왈츠
연극 가족의 왈츠

<가족의 왈츠>는 한 집에서 엄마와 아들, 아빠와 이모가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설명을 하니까 뭔가 소재가 간단하게 느껴지는데 작품 구성이 엄청 어렵고 복잡하다. 배우 한 명 한 명이 각기다른 기억을 재구성 함에 있어서, 그걸 연기하고 표출하는 게 어렵다. 처음엔 어려운데 두 번, 세 번 보다 보면. 알면 알수록 재밌어지는 그런 공연이다.  

연극 아홉 개의 하늘
연극 아홉 개의 하늘

<아홉 개의 하늘>은 2인 극으로 남녀가 10대서부터 50대까지 챕터별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와 사건·사고를 다룬 작품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여자는 초졸로 공순이로 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이고 남자는 위장취업한 대학생으로 둘이 만나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여기서 여자 역할은 실존 인물이 따로 계신다. 그분이 제작과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 많은 도움을 줬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험한 고초와 고문을 당하고 그렇게 힘들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화도 내지 않고 살아왔는지. 말도 안 되는 말을 많이 했는데 현실은 더한 지옥이었 던 것 같다.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 그런 사실등을 내가 표현함에 있어서 정말 힘들었다.  

- 배우라는 직업 혹은 연극계에 들어오려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 내가 요즘 늘 후배들한테 그냥 하는 말이 있다. "미안하다"고 말한다. 7년인가 8년 전에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그때 당시 선배들하고 등산을 했던 것 같다. 같이 등산을 하고 내려왔는데 내가 뭔가 억울했던 것 같다. 선배를 붙잡고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왜 이렇게 만들어 놨냐. 이 바닥을 이렇게 만든 건 선배들에 책임이 있는 거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지나서 내가 그 선배들의 나이가 됐다. 

물론 내가 뭔가 나이가 많다거나 대단하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20년 동안 여기서 이 일을 해오면서 힘들었지만,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그래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많이 말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나도 젊고 너도 젊고, 우린 아직 젊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 미투 운동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문제가 제기됐다. 그런데 사실 그 뒤에도 똑같다. 오히려 지금은 더 비아냥 거린다. 문제 제기를 하거나 누군가의 피해를 이야기하면 "이제 뭐 미투 하려고? 고소해봐"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희가 실제로 피부로 느끼기에는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위계질서나 절대적인 일인자들이 남아있다.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도 사회적인 이슈나 이런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고, 도움을 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극의 퀄리티나 극장은 발전하고 바뀌고 있는데, 예술가 혹은 배우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한 것 같다. 누구는 딴따라라며 하찮게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배우는 다 돈 잘 벌고 잘 사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돈 잘 버는 배우는 분명 있다. 그런데 보면 1년 동안 100만 원도 못 받고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허다하다. 그들은 모두 연기가 좋아서 연극바닥에서 적은 돈을 받고 극에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연극 이외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공사장을 전전하면서 돈을 번다. 그리고 다시 연극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한다. 연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연기가 좋아서 힘들어도 버틴다. 그건 맞는데 좋아서 하는건데, 그래서 좋다고 굶어 죽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추천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 

▲ 이준규 배우를 추천한다. 오는 7월부터 한 달간 공연을 한다. 다양한 작품을 하는데 이번 작품이 재밌을 것 같아서 추천한다. 되게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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