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거짓말 ‘터질까’... 국익문제 정쟁에 활용 말아야
임종석 비서실장의 특사 파견으로 촉발된 UAE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 관련 논란으로 묻히는 줄 알았던 의혹이 한 언론의 ‘탈원전 정책설’ 제기로 폭발했다. 이후 논란은 MB정부의 원전수출 이면계약 체결설을 거쳐, 박근혜 정부의 MB정부 리베이트 은닉 뒷조사설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국정조사등 대여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나오는 ‘팀킬’로 인해 자유한국당의 공세에 좀처럼 탄력이 붙지 않는 모양새다. 아랍에미리트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해봤다.
지난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파견 이유를 둘러싸고 줄기차게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북한과의 비밀 접촉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 원전 관련 비리 문제연루설이 나왔으며, 곧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행보에 아랍에미리트가 불만을 가져 이를 달래기 위한 파견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또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가 수주한 아랍에미리트 원전과 관련해 이면계약이 있었는지 조사한 문건이 있다는 내용도 보도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원전 수주와 운영 계약 대가로 양국이 군사협정과 군사지원 관련 MOU를 맺었는데, 이와 관련한 특사 파견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잇따른 의혹 제기, 가설만 무성
TV조선 등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달 11일, 최초로 ‘북한접촉설’을 제기하면서 북한이 우리에게 80조원을 요구했다는 설을 보도했다.
일주일 뒤인 18일에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UAE 원전 사업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하자 임 실장이 상황 수습을 위해 파견되었다는 설을 제기했다. 자유한국당은 정치보복을 위해 이명박 정부 비리 조사중 UAE 한국의 양국 원전 계약을 들여다보다가 UAE측이 노발대발해 국교 단절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대해 청와대는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은 지난 정부 때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놨을 뿐 침묵을 유지했다.
이런 가운데 28일 SBS는 <8시 뉴스>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때 수주했던 아랍에미리트 원전과 관련해 이면계약이 있었는지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핵폐기물과 폐연료봉의 국내 처리 문제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인 31일 <한겨레>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언급을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자유한국당이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 목적이 보수 야당과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같은 날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이번 논란의 핵심이 양국 간 비밀 군사협력에 있다며 “임 실장이 UAE에 방문하기 전부터 이 문제(군사협력)가 탈이 났다는 애기를 들었다”고 했다. 김 의원은 “국방부는 UAE와 비밀 양해각서가 있다는 점도 시인했다”며 “(이면합의 내용은) 사실상 군대를 만들어달라는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이 문제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UAE 측에서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강하게 항의했고, 이후 임 비서실장이 급파됐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자승자박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내부 균열에 자승자박까지 이어져 행보가 꼬이고 있다.
지난달 19일, 한국당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국회 운영위를 일방적으로 소집했다. 이후 26일에는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김성태 원내대표와 함진규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원내지도부 의원 22명이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등 공세의 수위를 높여갔다.
해가 바뀌어 2일, 한국일보는 국방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아랍에미리트(UAE)와 비밀리에 상호군수지원협정(MLSA)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MLSA는 양국 군대가 전시와 평시 군수지원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물자와 용역을 지원하는 협정이다.
UAE에 아크부대를 파병한 데 이어 군수물자까지 지원하는 MLSA를 추가로 체결하면서 유사시 우리나라가 중동지역 분쟁에 자동 개입해야 할 위험을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다.
그러자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을 지낸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경북 구미갑)은 UAE와 상호군수지원협정 양해각서를 체결했음을 시인했다. 즉, 이명박 정권인 2009년 12월 UAE로부터 원전을 수주→이듬해인 2010년 11월 아크부대를 파병→박근혜 정권인 2013년 3월 UAE와 군수지원 비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백 의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3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국방부 차관을 맡았다. 현직 한국당 의원이 나서서 UAE와 군사 비밀 양해각서를 체결했음을 인정해 한국당은 자기 다리에 걸려 자기가 넘어진 꼴이 됐다.
여기에 국방위원장을 지낸 한국당 김영우 의원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과거 국가 간에 맺은 협정이나 약속에 대해 국정조사하자는 주장도 국가 간 신뢰외교를 위해선 정신 나간 소리”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 잘못으로 UAE와 문제가 발생했으며 이를 덮기 위해 임종석 비서실장이 UAE를 방문했다는 한국당의 ‘원전 게이트’ 주장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너에 몰린 한국당은‘노무현 정부’까지 끌어들였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학용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체결한 한·UAE 군사협정에 기초해 아크부대 파병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병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1월 발표돼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국익문제 정쟁에 활용 말아야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건 박근혜 정부건 간에 UAE 원전 계약에 직접 참여한 인물이 한국당에 한두 명이 아닌데 한국당도 명백한 팩트를 제시하지 못하고 의혹이 장기화 되는 것은 이 건을 아는 사람은 정치적 스탠스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입을 다물만한 일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유수입은 2015년 10억 2611만 배럴에서 2016년 10억 7812만 배럴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90% 가량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 쿠웨이트, 이라크 등과 함께 주요한 산유국으로 우리에게 매년 상당한 양의 원유를 수출한다. 국익과 관련된 문제를 정쟁에 활용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