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서예의 경계를 허물다

▲ 평인 송동욱 선생
“회화란 전쟁터의 말이나 나부 이전에 질서를 가진 색채로 덮여진 평면이다”
1890년 모리스 드니는 사물의 묘사나 설화적인 표현이 전부였던 서구 회화에 종지부를 찍는 선언을 한다. 이후 색채, 질감, 선, 낯선 형태 등으로 그려진 추상미술이 등장하여 예술의 지평을 넓혀 놓았다. 이전 시대를 향유한 인식체계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면 새로운 세계는 도래할 수 없는 것이다. 발전이란 과거의 답습이 아니라 창조에 있는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서예도 생존의 기로에 직면해있다.

‘서예계의 게릴라’

BC 16세기경 중국 은나라의 갑골문자에서 시작된 서예는 고조선 시기 한사군(漢四郡)에 의해 유입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이후 한반도에는 걸출한 서예가들이 등장하여 종주국인 중국에 까지 그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멀게는 광개토대왕비의 서체부터 조선시대 한 호(한석봉), 추사 김정희가 그 선두에 서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서예인구는 수 천명에 달하는 서예 전문인을 포함, 500만을 헤아린다.(한국 서예협회 추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서예는 특유의 고답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서예계의 게릴라’로 불리우는 평인 송동옥 서예가의 다양한 도전은 한국 서예의 화려한 날갯짓을 예감하게 한다.

▶ ‘서예’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서예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심오한 문제다. 한 편의 창작물에서 나오는 완료된 가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발견해 나가는 참된 진리, 또는 그 무엇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스승인 ‘강암 송성용’ 선생께서는 “글을 함부로 평하지 말라” 하셨다. 하나의 글에는, 또는 글씨 한 획 한 획, 형태, 배열, 문구 등등에서 글을 쓴 이의 삶이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서예는 곧 삶이 담긴 거울이다.

▶일반인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서예를 대중적으로 만나게 이끄는 것이 캘리그라피 아닌가.

‘서예’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멀게 느껴진다.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 지상과제인 현대 일상생활에서 한국 서예의 참 맛을 찾아보기란 무척 어렵다. 무척 안타깝다. 캘리그라피가 등장하여 한글에 여러 가지 디자인을 입혀주고는 있으나 이는 서예와는 다르다. 서예가 지녀야할 근본정신이 결여돼있기 때문이다. 서법을 중심으로 하는 노력과 이해, 삶에 대한 깨달음이 개개의 서예 작품으로 발현되는 것인데 캘리그라피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대량생산과 시각적 디자인에 머물러있다. 물론 몇 몇 역량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그것들에 심미적 가치가 부여되고 있다고는 하나 분명 전통서예와 캘리그라피는 구분되어야한다.

 
▶ 송동옥 선생은 서예가라고 불리기에는 특이한 작품세계를 걸어왔다. 화백인가 서예가인가.

어린시절, 집에 서당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서예를 접하게 되었다. 이후 화실에 다니면서 글씨와 미술에 빠져 들었고 청소년기에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주에서 강암 송성용 선생을 만나 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흰 종이위에 획을 그으며 붓을 대는 순간부터 많은 내면의 변화와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림을 공부하면서 표현을 향한 성찰은 더욱 깊어졌다. 한편으로는 서예가 지닌 매력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들을 찾아나갈 수도 있었다. 먹과 붓만을 마주한 상태에서 느끼는 고민보다 더욱 폭넓은 시각에서 예술을 마주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예만을 고집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해왔다. 색을 덧입히기고 하고 먹의 한계를 벗어나 황토와 같은 자연물을 도구로 삼기도 했다. 그림을 신화적 에너지의 표현이나 부적에 가깝게 나타내기도 했다. 수복기원과 음양오행을 담아보기도 했다. 캔버스와 한지를 벗어나 퍼포먼스를 통해 참여하는 모든 이의 염원을 담아내는 노력도 쉬지 않고 있다. 서예의 근본 정신을 기반으로 표현의 방식을 점차 확대하려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볼 수 있다.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이 당대의 예술에 담기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삶이 바뀌는데 과거의 틀에만 현실을 맞출 수는 없다. 예술은 시대를 따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도할 필요도 있다.

▲ 평인 송동옥 선생은 2017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비상”(飛上) 이라는 신년휘호를써 주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그 틈바구니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대한민국 국민에게 좋은 에너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고진감래 (苦盡甘걐)의 2017년을 기대해보며….
▶ 서예의 범주가 넓어진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표현방법을 다양화 하여 한국의 정서를 담아내는 노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한가.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정확하게는 삶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람들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되고 싶기도 하고 시대의 아픔에 위로가 되어주고 싶기도하다. 한국의 정서도 좋지만 사람들에 집중하자. 아름다운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덕을 쌓고 이것을 생활로 만드는 것이 예술의 기본 역할이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을 담아 삶의 강한 기운이 되어주는 작품들을 만들고자 한다. 탈 전통, 탈 소재, 탈 장르를 하는 과정은 혼란스럽고 난해하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이가 있어야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

▶ 서예계의 포스트 모더니스트 답게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요즘은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으로 인장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어떤 것에 도장을 날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대신하여 증명한다는 의미가 있다. 원래 벽조목은 붉은 대추나무 자체로도 단단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하늘의 벼락이 나무에 스며들어 요사스런 귀신을 쫓는 벽사(?邪)의 힘을 갖게 된다고 전해져왔다. 이렇게 자연이 만든 나무에 사용자의 소망을 담은 문구나 이름을 정성스럽게 조각하면 더욱 의미가 확대될 것이다. 사람을 돕는 예술로 변신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평인 송동옥 선생은 2017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비상” (飛上) 이라는 신년휘호를 써 주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그 틈바구니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좋은 에너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고진감래 (苦盡甘來)의 2017년을 기대해보며...

약력

강암 송성용 사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유교경전 전공
서울시 서예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세계 서예 비엔날레 출품 및 개막 퍼포먼스 등

작품 소장처

뉴저지 시의회
유타대학교 박물관
주인도 대사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연세대,고려대 100주면 기념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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