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백수량>의 저자 김세곤 긴급제안1 ‘부패를 넘어 청렴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호는 침몰했다. 최순실 비리와 관련 검찰의 공사장에는 대통령을 피의자로 직시했다. 아래부터 권력 상층부까지 부패로 얼룩진 총체적 부패 공화국이다. 경제규모는 세계 11위지만 부패인식지수는 170개 국 중 40위권. OECD 34개 국가 중 27위(2014~2015)이다. 글래드 스톤 영국 수상은“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한국미디어서비스과 칼럼리스트 김세곤은 특집<부패공화국 대한민국을 바꾸자>칼럼을 통해 부패가 만연한 비정상한 사회의 정상화를 통한 공정한 사회 구현을 추구하고자 한다.

청렴국가 싱가포르와 이광요 총리

2015년 3월23일에 이광요(李光耀 1923-2015) 전(前) 싱가포르 총리가 92세에 별세하였다. 그는 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간 총리를 하면서 싱가포르를 청렴국가로 만들었다.

1950년대까지는 싱가포르도 극심한 부패에 시달렸다. 부패방지법이 1937년에 제정되었지만 이름뿐이었다. 그런데 1959년에 인민행동당(PAP)의 이광요가 집권하여 총리가 되자, 그는 부패척결에 앞장섰다.

이광요는 공산주의를 이기려면 부패척결이 필수적이고 선결 요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싱가포르 전체 인구 77%를 차지하는 중국계의 청년들이 대만 장개석 정부의 부패에 분노하고 중국 모택동 군대의 청렴함에 끌려 친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것에 놀라고 당황하였다.

이광요는 취임하자마자 청렴을 상징하는 하얀 셔츠와 흰바지를 입어 국민의 관심을 이끌었다. 이어서 그는 1960년에 명목뿐인 부패방지법을 개정하고 부패행위조사국(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 CPIB)을 총리실 직속기관으로 발족시켰다. 부패행위조사국은 부패 혐의자 및 그 가족들의 체포와 수색, 증인 소환, 계좌 및 소득세 환급 추적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또한 개정 부패방지법은 뇌물수수에 대한 처벌을 엄격히 했다. 뇌물의 정의를 넓혔고, 공직자가 설명 못하는 재산은 몰수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 뇌물을 받을 ‘의사’만 보여도 범죄로 간주하였다. 법원도 자신의 월급에 비해서 지나친 호화생활을 하는 것 자체를 부패의 증거로 인정하였다.

이어서 1989년에는 부패범죄와 관련된 벌금을 10배 인상하고, 부정축재몰수법을 제정하여 사망한 부패 범죄자의 재산까지 몰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광요는 자신의 인척이나 장관들에 대하여도 무관용 원칙을 견지하였다.

1986년에 테칭완 국가개발부 장관이 정부 수용 토지를 매매하도록 도와주고 80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테 장관은 무고하다면서 이 총리를 독대하고자 했다. 이 총리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며칠 후 테 장관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명예를 존중하는 동양의 신사로서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하여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족들은 문상 온 이 총리에게 고인의 명예를 위해서 부검만은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총리는 부검을 하지 않으려면 자연사라는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테 장관이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견서를 냈다. 유족들은 더 곤경에 처했고 결국 싱가포르를 떠나야 했다.

1995년에 이광요 전 총리의 부인과 아들이 부동산을 5~6% 할인받고 산 것이 문제가 되었다. 더구나 이 개발회사엔 이광요의 동생이 비상임 이사로 등재되어 있어 소문이 나쁘게 돌았다.

이광요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줄 것을 요구했고, 조사결과 결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백이 증명된 뒤 이광요의 부인은 할인받은 100만 싱가포르 달러를 정부에 기증하려 했으나 정부는 이런 돈을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돌려주었다. 부인은 이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한편 이광요는 깨끗하고 정직한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위공직자의 소득이 높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고위공직자들에게 명예와 사명감만 강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1994년에 이광요는 장관, 판사, 고위 공직자의 연봉을 사기업의 전문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맞추는 안건을 제출하면서, 높은 소득이 공공 부문으로 인재를 끌어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싱가포르 정부의 방침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광요는 1997년 동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 때 싱가포르가 건재했던 이유를 청렴으로 돌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은 위기 대처 능력을 상실했지만 싱가포르는 공직자들이 위기를 예견했고, 위기의 소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인구 570만 명에 GDP 5만 달러의 도시국가이다.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서 싱가포르는 175개국 중 7위로 아시아에서는 단연 1위이다. 반면에 한국은 43위이다. 청렴은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

(2015.7.3. 시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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