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현 국민일보 논설고문
모처럼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이면도로 옆 울타리에 깊고 짙은 빨강이 손을 내밀고 있다. 장미꽃이다. 빨강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자일지라도 열정이자 환희이고, 절정이자 기쁨 그 자체라고 해야 할 만큼 탐스럽게 피어난 장미꽃 앞에서는 빨강색의 순수함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전에 비엔나에서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가면서 철로 옆에 피어있는 진홍색 양귀비꽃에 마음을 빼앗겼던 적이 있다. 어두워져가는 하늘 밑에 무더기로 피어있던 양귀비꽃!

6월의 장미꽃을 보며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을 생각한다. 워즈워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한때 그렇게 빛났던 광채가/ 내 앞에 끝내 사라진다 해도/ 초원의 광휘롭던 시간이, 꽃의 영광스런 시간이/ 다시는 되돌려질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그 뒤에 남은 굳건함을 찾으리/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존재할/ 근원적인 연민으로부터(이하 생략).>

프랑스 시인 장 주네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와의 교유를 기록한 책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열화당)에 보면 자코메티가 그의 고독과 불행을 얼마나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지를 적은 대목이 있다(자코메티는 인체 외형의 모든 장식, 표정과 근육의 살점마저 철저히 들어내 버리고 가늘고 긴 골격만으로 불안하게 서 있는 외로운 인물상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실존을 형상화한 조각가. 그의 조각 <걸어가는 사람>은 똑같은 6점의 에디션이 있는데, 그 중 한 점이 2010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14327000달러에 팔려 세계 경매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그는 커피를, 나는 술 한 잔을 하러 밖으로 나선다. 그는 거리의 선명한 아름다움을 좀 더 잘 새겨두려고 자주 멈춰 서곤 한다. 그는 절뚝거리며 다시 걷는다. 사고로 수술을 받은 후 불구가 되어 절뚝거리며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코메티는 굉장히 기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그의 조각 작품들은 어떤 비밀스런 불구 상태가 안겨 준 고독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숨어들어 가 있는 것 같다고.”

장 주네는 자코메티 조각을 이렇게 표현한다. “철사처럼 가느다랗게 주조한 걷고 있는 남자, 그의 한쪽 다리는 걸어갈 때의 모양 그대로 굽어 있다. 그는 결코 멈춰 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지 위를, 말하자면 지구 위를 정말로 걸어가고 있다.” 한 번은 장 주네가 사르트르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자코메티의 조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작품에서)득을 본 것은 청동이었소.” 그러자 사르트르가 답한다. “그게 그로선 가장 큰 즐거움이었을 거요. 자코메티의 꿈은 작품 뒤로 자기 자신이 완벽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니까요. 자기로부터 출발해 (자기는 사라지고)결국 청동을 드러나게 했다면 그는 더없이 만족해 할 겁니다.”

이런 자코메티의 힘의 근원을 장 주네는 이렇게 파악한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살아있는 존재나 사물을 하찮은 시선으로 보아 넘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바라보는 하나하나는 각자의 가장 소중한 고독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삶의 무게 때문에, 풀리지 않는 일상의 어떤 것 때문에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살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삶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현재의 삶은 과거 자신이 살아온 것에 이끌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워즈워스의 시가 말하듯, 옛날 광휘로웠던 빛이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는 그 아름다움이 되돌려지지 않는다고 해도, 세월 속에 남겨진 굳건함으로 살아가는 것은 근사하다. 자코메티가 자신의 불구됨을 오히려 기뻐하며 자신은 청동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고, 조각 작품이 밖으로 나오게 한 인식의 높이 또한 누구에게나 말해주고 싶을 만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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