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는 곳엔 미해결 없다” 타고난 수사력 재조명

▲ 최근 출간된 '누군가 노리고 있다' 출판 기념회에서 송경엽 전 수사반장.

수사극 시그널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하면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실제 형사들의 분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 드라마는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연결돼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진실을 위해 집념을 발휘하는 과거의 형사이재한 캐릭터가 화제였다. 그는 방범용 CCTV, 차량용 블랙박스, DNA 감지 수사기법 등에 기댈 수 없던 시절에도 끝까지 사건을 파헤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실제 이 같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 넘어 범인들을 검거했던 대한민국 유명 수사관이 있었다. 그는 당시 귀신이라 불릴 정도의 정확한 수사방향 설정, 끈질긴 추적과 공적수사로 각종 대형 사건을 해결했다. 타고난 능력으로 세간을 놀라게 한 기획수사의 달인, 송경엽 전 수사반장을 본지가 만났다.

대형사건 해결사

송 전 수사반장은 1994년 현대종교 탁명환 대표 피살사건, 1995D 약국 여주인 살해사건, 동익당 한의원 떼강도 사건 등 국민이 주목한 대형 사건을 잇따라 해결한 인물이다.

당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을 맡아 해결해야 했던 그에게는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처럼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무전기도 없었다. 오로지 범인 검거를 향한 집념 앞에 고독한 싸움이 지속됐다. 검찰과 법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각양각색의 사건, 날고 기는 희대의 범인들이 그의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빠른 판단력은 언제나 적중했다.

제 판단이 틀린 적은 없었습니다.”

송 전 수사반장은 지난 수사 속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회고했다. 실제로 그가 가는 곳엔 미해결 사건이 없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1970년대 중반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요원으로 경찰에 투신한 송 전 경감은 서울시경 형사과와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중부 경찰서 강력반장, 청량리 경찰서 강력계장을 거쳤다. 1985년 시사월간지 <직장인>실화사건-목격자2년 간 연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그동안의 수사비화를 엮은 책을 발표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누군가 노리고 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대한민국 3대 미해결 사건이자 80년대 장안의 화제였던 원효로 살인사건범인에 대한 감춰진 비화 등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극비로 남겨졌던 이야기가 그를 통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100%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당시 말단형사였던 송 전 수사반장은 결정적인 증거물을 찾았으나 경찰과 검찰은 그의 의견을 묵살하고 해당 증거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책에는 그가 직접 부딪친 사건의 기억과 공명심으로 일을 그르친 수사관들의 이야기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사건으로 빨리 진급을 해서 형사팀장이 돼 멋진 수사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또 이 경험은 훗날 제가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됐는데 예를 들면 직접 증거가 없는 덕성당 한약방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공소 유지하게 하는 것이었죠.”

오로지 검거

덕성당 한약방 살인 사건은 최고의 수사관으로 통하는 그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사건이자 그에게는 비정한 아빠로 남아 수사를 밀고 나가야 했던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때는 199512. 제기동 약령시장 한약방에서 여자 사장이 피살됐다는 보고를 받고 출동했다. 야간 대학을 다니던 젊은 부부가 운영하던 한약방이었다. 숨진 부인의 시신은 뒤통수가 완전히 함몰돼 있었다.

외상이 심했는데도 목에는 고인의 것으로 보이는 머플러가 있는 힘껏 감겨 있었어요. 목을 졸라 확인 사살한 겁니다. 범인은 면식범이 분명했는데 확인사살은 십중팔구 범인이 피해자와 잘 아는 사이일 때 벌어지니까요.”

현장을 살펴본 송 전 수사반장은 범인의 의도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도둑이 가게를 뒤진 것처럼 엉망이었지만 막상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피해자가 쓰러진 사무실 안에서 발견된 깨진 꽃병도 어설펐다.

만약 한약방 외부에 낯선 누군가가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면 피해자가 자신의 방어를 위해 범인이 들어오는 출입문 쪽을 향해 꽃병을 던졌을 겁니다. 하지만 꽃병이 부딪친 벽은 반대 방향인 점부터가 부자연스러웠어요. 조작된 거죠.”

송 전 수사반장은 최초 신고자인 피해자의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었다. 그는 남편이 목격자 진술을 하는 사이 팀원들을 시켜 피해자의 친정과 주변인물에 대한 탐문수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남편은 평소 성향이 포악하고 젊은 여자들과 불륜 관계를 맺었다가 부인에게 들통이 나서 시도 때도 없이 부부싸움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폭력까지 휘둘러서 당시 이혼 얘기가 계속 나왔다고 해요.”

증언이 확보되자 후배 형사들이 돌아가며 남편을 향한 집중 취조를 했다. 그러나 남편이 범행 동기는 물론 모든 것을 부인해 후배 형사들은 밤늦도록 진땀만 빼고 있었다. 확실한 물증이나 자백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날이 밝으면 남편을 무죄 방면해야할 처지였다. 그 때 송 전 수사반장에게 다급한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대학생이던 딸이 빈혈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갑자기 의식을 잃고 쇼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었다. 그 역시 눈앞이 깜깜했지만 울먹이는 아내를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여보, 내가 지금 간다고 해서 죽을 아이가 살아날 것도 아니고 안 간다 해도 살아날 아이가 죽을 리 없잖소. 지금 내가 자리를 비우면 유력한 용의자를 놓치게 돼. 이해해주시오, 정말 미안하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송 전 수사반장은 직접 남편을 취조하기 시작했다. 면접 수사에 탁월했던 그는 적절한 화법으로 피의자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이후는 협상이다. 살인이라 하더라도 과실치사나 자수를 했을 경우는 형이 무겁지 않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송 전 수사반장이 직접 나서자 마침내 남편이 말문을 열었다. 부인과 다투다 홧김에 근처에 있던 공구를 휘둘렀고 쓰러진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았다. 이제 남편의 말을 입증할 증거만 확보하면 사건은 완벽하게 해결되는 셈이다. 문제는 물증이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다. 공구는 범행 당시 두꺼운 신문지로 싸여 있었으나 이를 남편이 모두 불태워 깨끗한 쇠몽둥이만 남았다. 부인의 피가 묻은 남편의 옷가지도 모두 표백처리가 돼 혈흔을 찾을 수 없었다. 본인이 자백한 것 말고는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는 상황. 송 전 수사반장은 기지를 발휘했다.

일단 남편에게 변호사를 선임하게 한 뒤 내일 오후 6시까지 자술서를 제출하면 자수한 것으로 처리해주겠다고 이른 것. 또 남편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A씨를 새벽에 불러 남편의 자백을 듣게 하고 이를 입증할 진술서를 받았다. 이후 남편을 귀가시킨 뒤 공작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피의자가 나중에 말을 바꾸더라도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놓은 것이다.

남편은 약속대로 다음날 자술서를 들고 저를 찾아왔어요. 아내를 살해한 죄로 현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잃어버린 20

그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해온 그의 사건 파일이 책의 바탕이 됐다. 방대한 자료를 살펴보며 집필하는 데에 꼬박 1년이 걸렸다. 그가 시민 생활과 밀접한 각종 비리 사건을 해결한 덕분에 고쳐진 부조리에 관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1992년 종묘지하주차장 여사장 납치 사건 검거를 계기로 여성전용주차장제도가 생겼습니다. 납치 사건 당시 사회적 파장이 엄청났는데 제가 그 범인을 잡은 뒤 공식적으로 의견서를 담당 부서에 제출했습니다. 제안이 받아들여졌고요.”

앞서 그는 1988년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보안사 조정관 제도도 철폐케 했다. 수도공무원 비리 사건, 자동차등록사업소 비리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해당 업무가 간편해진 것 역시 송 전 수사반장의 솜씨다.

그러나 비리와 적당히 타협하는 사례가 빈번하던 그 시절, 아무런 잘못도 없이 중도하차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충성을 다한 국가로부터 배신당한 허탈감에 극단적인 생각도 했지만 어린 자식 때문에 차마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년 전 억울하게 옷을 벗었습니다. 수사 당시 고위층 관련 기업을 건드렸고 보복당한 겁니다. 부하직원이 저를 모함했고 검찰은 수사를 위조해서 서류를 만들었어요. 당시 경찰이라는 직업에 무슨 미련이 있어서 자기 조직에 흠을 내려 하느냐, 이런 말이 나올까봐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인생의 상처를 회복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또 저처럼 희생된 공직자가 많습니다. 이런 일들이 이제는 깨끗이 사라졌으면 해서 제 사연을 밝히게 됐어요.”

1996년 강제로 옷을 벗은 그는 2006년부터 경찰국 수사국에서 전국 중요 미검거 사건 검거 대책회의 등에서 주요 사건 지도 점검을 했다. 2006년 전국을 들끓게 한 미해결 사건이 많았는데 해결이 어려워지자 수사에 필요한 그를 초대한 것이다. 결국 사건을 분석, 수사 지휘를 한 그는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수사연구원, 모 대학 등에서 강의도 꾸준히 해왔다.

현재 수사 방식은 과학수사에 매우 의존도가 높은 실정인데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에 따른 증거나 물증이 확보되면 수사는 간단해요. 그러나 다 그럴 순 없고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입니다. 예리한 탐문과 판단이 필요합니다. 후배들에게 이런 능력을 배양해야 해요. 또 범인을 잡고도 자백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 면접 수사 역시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민이 범죄로부터 자유롭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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