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길홍 공정뉴스 회장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청와대 당국자가 국민안심 번호제 공천문제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는 민망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 현직 대통령을 당선시킨 집권 여당의 대표최고위원과 국정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참모가 상호 대화와 조율의 통로가 없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국정의 중요 현안을 놓고 당과 정부와 청와대가 가끔 이견()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국민여론에 민감한 당과 국민에게 제시한 공약과 정책을 실천해야 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은 다소 다를 수가 있다. 이때는 수시로 당청의 핵심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이 정부여당 운영의 통상적인 전통과 관례였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해온 국민으로서는 한동안 눈에 익은 정치 행태였다.

민주화가 정착한 이 시대에는 당청 간의 반목과 갈등을 자주 목격한다. 민주화가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고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의 차별과 대립을 완화시키는 최선의 정치제도이기는 하지만 비능률과 비효율을 초래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후 당청의 불협화음이 자주 발생한 것은 유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최고권력을 장악한 현직 대통령의 포용력과 소통 노력, 그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뒷받침하는 집권여당의 대표를 비롯한 핵심 당간부의 충성심,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측근 참모진의 보이지 않는 당청의 조정능력과 가교 역할 등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같은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경제살리기, 노동개혁, 새해 예산심의 등 다급한 국정현안을 목전에 두고 정부, 여당이 힘을 합쳐도 어려운 형편이다. 국정의 최고 지휘사령탑인 청와대와 여당대표가 국회의원 후보 공천이란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으니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87년 민주화 헌법체제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최소한 임기중반에는 당청의 퇴임 후 엄호 권력을 예비하는 공천 잡음은 없었다고 기억된다.

절대권력의 독재정권으로 회자되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허용하는 699월 개헌파동,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씨 등 공화당의 4인체제가 주동한 7110.2 항명파동도 권력과 관련된 정치게임이었다. 3선의 혜택을 받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김종필씨 등 제2인자와 그 추종세력을 설득하여 개헌을 확정시켰고 박 대통령의 지시를 어긴 김성곤, 길재호씨 등은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물리력으로 압박하고 의원직을 사퇴하여 절대권력의 기강과 위엄을 유지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법과 상식을 초월한 절대권력의 관리가 가능했다.

7910.26 사태 이후 헌법의 규정과 절차를 거치지 않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권 시절(81~88)에도 당청간의 의견충돌과 노태우, 전두환 전현직 대통령간의 권력 투쟁이 한동안 끊이지를 않았다. 85년 학원안정법안은 당시 청와대 정무라인이 주동해 정부와 함께 학원소요를 근절하는 법안의 제정을 밀어 부쳤으나 당시 집권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반대당론을 정해 학원안정법의 제정을 무산시켰다. 전 대통령은 당초 이 법안에 찬성했으나 민정당과 반대당의 요구를 받아 들였다. 청 간에 이해가 상반되는 첨예한 국정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단안을 내려 해결했다.

이렇듯 정책의 마찰과 이견을 조율하는 정부와 여당의 모습은 정치의 현장감이 돋보이지만 미래의 권력과 현재의 권력이 충돌하는 것은 지지를 보낸 국민을 우롱하고 배신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전두환 5공정권과 노태우 6공정권의 교체과정에서 제13대 국회의원 공천을 놓고 전노 대통령이 죽마고우이며 혁명동지였지만 권력내부의 다툼이 치열했다. 현재권력이 승리해 전 전대통령의 핵심측근은 공천에서 배제되고 5공청산의 비극이 시작됐다. 노태우 대통령도 임기 말 3당합당 때의 내각제 합의를 파기한 김영삼 민자당대표의 일방적 배신과 탈당까지 불사하는 협박에 무릎을 꿇고 정치적으로 오판해 후계자로 지명하는 실수를 범했다. 훗날 김영삼씨를 도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5.6공 세력과 김종필씨 등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지 구 여권인사와 보수세력도 고초를 겪었다. 정치권력의 다툼은 사활을 건다. 이렇게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를 선택하게 되는 것처럼 냉혹하고 무자비한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9월 말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가 주고 받은 공천 룰(안심번호 공천제)싸움은 원칙적으로 청와대가 전면에 나설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설사 지시했더라도 정무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은 소리 없이 김 대표측과 접촉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정치참모의 올바른 역할일 것이다. 대통령과 당 대표의 위신과 체면이 걸린 다툼은 어느 한쪽이 심각한 상처를 받을 것이다. 오히려 친박세력을 앞세워 당내 분쟁으로 몰아가는 것이 현명했는지 모른다. 당내의 계파분란과 공천 경쟁은 민주정당에서 아주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의 갈등과 반목이 더 이상 되풀이되면 박 대통령과 김 새누리당 대표는 어느 한쪽이 민심을 얻기보다는 양쪽 모두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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