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길홍 공정뉴스 회장

조선조 시대에 나랏일을 충실하게 다루고 충성을 다하는 신하에게 임금이 토지와 노비를 나누어 주는 공신전(功臣田)이 실시됐다. 반대로 임금의 뜻을 거역하거나 사직(社稷)에 불충(不)한 짓을 저지르면 사약(賜藥)을 내리거나 심심산골 오지(奧地)로 귀양을 보내 엄하게 다스렸다. 왕조역사를 살펴보면 왕정의 권위를 유지하고 절대권력을 관리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국가권력의 효과적인 관리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와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집권여당 사이에 벌어진 자중지란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새삼 당근과 채찍의 역할이 생각났다.

권위주의정권 때는 민주화가 된 요즈음과 달리 당근과 채찍의 효력이 잘 먹혀들었다. 쉽게 말하면 당근은 성공보수와 같은 보상성격의 돈과 고위공직의 승진과 명예를 보장했다. 채찍은 잘못에 대한 경고와 징벌(懲罰)의 뜻이 담겨져 있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수단으로 최고지도자나 권력기관이 자주 활용해 왔다.

하지만 19875년 단임의 민주화 개정헌법의 발효 후 권력관리에 필요한 당근과 채찍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정치시즌을 맞이했다.

대통령이 쌈짓돈처럼 여유 있게 사용하는 당근이라 할 수 있는 자금과 예산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서 과거에 비해 대폭 삭감되거나 항목이 아예 없어졌다.

정치인이 쓰는 정치자금의 모금과 사용도 법률과 제도로 제한하고 공개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권력에 충성하고 정치파벌을 운영할 수 있는 정치자금이 대통령에게도 과거와 달리 여유가 없고 정당의 대표도 똑같은 사정인 것이 오늘날 정치 현실이다.

정치자금 다음 정치인에게 관심이 있는 당근은 자리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 등 고위공직이나 국공기업의 사장 직책이다. 이것도 대통령 마음대로 나누어 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조상과 가족 등 3대가 발가벗겨지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하고 관피아와 정피아등 낙하산 인사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다. 돈도 함부로 쓰지 못하고 자리도 마음대로 줄 수 없다.

모든 것이 규제와 제약이다.

정치인에게 권위와 영()을 세우고 말 잘 듣게 줄세우는 수단인 채찍은 이제 거의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 상태이다. 권력의 창()과 방패로 썼던 정보수사기관은 민주화 이후 더 이상 악역(惡役)을 담당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만약 검찰과 경찰 등 사정기관이 정치인의 부정과 약점을 들추어내고 물증 없이 함부로 수사할 경우 정치보복과 표적사정의 공세로 되돌아와 부담이 될수도 있다. 여론의 반발과 비판에 부딪혀 자충수를 둘 우려도 없지 않다.

당근과 채찍을 주거나 휘두룰 수 없는 오늘의 정치 현실과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 등 국가지도자는 권위주의정권 시절 경험했던 국가경영 방식과 정당운영 스타일을 완전 민주화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그렇게 변화하고 개혁하지 않고서는 다음세대의 국정을 담당하고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이 시대의 조류일 뿐 아니라 역사발전의 과정과 순리라고 확신한다.

최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를 둘러싼 대통령,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등의 정면충돌을 지켜보면 당근과 채찍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동원하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실감하게 된다.

이제 남은 길은 민주주의의 원칙과 정도라고 하는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고 그것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수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은 격의 없는 소통과 배려에서 시작하고 포용과 양보로 끝나야 정치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오늘날 국민을 위한 정치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거나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원인을 따지자면 민주주의의 이같은 원칙과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당근은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대신하고 채찍은 질서와 규범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파동과 새누리당의 자중지란(自中之亂)에서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정치에 명분과 실리가 중요하다지만 정치인은 이해타산(害打算)에 철저하고 민감하다. 사상과 이념보다는 정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정치생명에 목숨을 거는 부끄러운 현장을 한동안 겪어봤다. 위헌성이 있는 국회법 개정안의 협상과정을 지도부가 양해했으며, 국회표결에도 여당의원 모두가 찬성했다. 곧바로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유승민 원내대표 한사람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어 쫓아내는 과정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헌법기관인 소속의원들이 선출한 유 원내대표의 강제퇴진을 계기로 박 대통령은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집권여당은 불과 10여일 만에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의원총회의 재신임을 번복하는 소신 없는 정치집단으로 국민에게 비춰졌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모두 손해를 보고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제로섬 게임의 유승민 파동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당근과 채찍이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치를 다시 시작하려면 대화와 소통, 타협과 포용, 상식과 원칙에 올인하는 정치인의 진솔한 반성과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가 바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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