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안보와 대화의 교훈(5)

▲ 국산 탱크 제조과정을 둘러보고 전차장과 악수를 나누는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회장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1978.4.6)

철저한 힘의 논리 근거한 안보와 대화가 핵심

 

한국의 역대대통령은 한결같이 북한의 적화야욕과 무력도발을 억제하고 대남공격을 분쇄하는 철통방위의 국가안보 태세를 최우선의 국정지표로 삼았다. 45년 8.15 광복후 남과 북에서 좌우익 세력의 충돌로 정국의 불안과 혼란이 계속됐다. 48년 8월 15일 남한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 체제의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동시에 북쪽의 김일성은 공산주의 정부를 세워 남북이 그 때부터 대립과 갈등의 준전시상태에 돌입했다김일성의 무력남침으로 촉발된 1950년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참화와 비극을 한민족이 체험하게 만들었다남북분단의 역사가 70년을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안보의 여건과 상황이 원천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육군장성 출신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실전경험을 살려 군사력과 경제력에 있어서 대북 절대 우위를 확보하는 대북전략은 꾸준하게 추진했다노 대통령은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국가안보를 다지는 한편 남북대화의 공개 또는 비밀 채널을 항상 가동했다강온 양면의 대북정책을 적절하게 구사한 것이다박 대통령의 72년 7.4 남북공동 성명 발표전 대통령의 장세동 대북특사 파견과 남북적 십자회담 개최노 대통령의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등으로 남북간의 접촉과 대화는 계속 열어놓았다남북 협상과 대화의 유연성을 보였다.

박 대통령이 재임 중 추구해온 국가안보의 핵심은 육군 소장 출신의 배경과 대북정보 장교의 경력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진다철저한 힘의 우위 논리에 근거한 안보의 원칙과 소신을 앞세웠다남북의 전쟁과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하려면 전력과 전술의 우세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이 박 대통령의 기본 인식이었다.

이같은 풍부한 군지휘관 경험과 남다른 군인정신이 남북관련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다방면에 잘 반영됐다고 해석된다.

남북의 대결에서 힘에는 힘이에는 이로 적극 대처하는 전략과 구상을 선호했다남북대화나 남북관계에서 굴욕적 저자세와 사정하는 약점 보이기를 터부시했던 출입기자의 기억과 느낌이 새롭다.

1968년 1월 21일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김신조 등 무장특공대 124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한 충격적 사건이 터졌다군인찰 29명과 미군4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과거에는 북한군의 군사분계선의 월경과 무장간 첩선의 남파등으로 약간의 충돌은 가끔 있었으나 1.21사태는 국가안보의 위협과 위기가 엄중한 사실로 입증되는 북의 충격적 도발과 무력공격이었다.

박 대통령은 1.21 도발로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관계가 고조되자 국가안보 최우선주의를 선언했다.향토예비군의 설립육군 제3사관학교 신설대북 특수수부대의 창설 등을 서둘러 국방태세의 강화와 전쟁억지에 더욱 집중했다그 후 70년대 중반까지 방위산업 육성과 육해공군의 군비증강을 통해 안보능력을 꾸준히 보강했다. 1976년 8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미군초소에서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했다유엔군 초소 시야를 가리던 미류나무를 절단하던 미군장교 2명이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로 살해되고 작업하던 미군과 한국군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주한미군은 포드 미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항공모함과 전폭기를 한반도 근해로 출동하는 보복성 대북 공격을 준비했다박 대통령도 특수부대를 편성하여 출전태세를 갖추었다한미의 합동공세에 겁먹은 북측이 각서를 쓰고 한발 물러서 사태의 확전을 가까스로 피해 갔다박 대통령은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후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내용의 직설적인 경고 문구를 직접 담화문에 새로 써넣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박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편성한 국군특전사 요원 64명의 특공대가 며칠 후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 안에 있는 북한 군초소 4개를 완전히 파괴했다.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서 호전적 북한을 제압하는 박 대통령의 단호함은 군 출신의 대통령이 아니면 일전불사를 각오한 순간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열강의 힘으로 한반도 전쟁예방과 평화유지 불가능

 

박 대통령은 전통적 한미의 군사동맹을 근간으로 지탱하는 전쟁억지와 평화유지 등 외교분야의 국가안보도 추진했다우방미국이 자국의 불이익과 전쟁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나라의 안보를 최후까지 책임지고 보장하는 다짐에 대해 박대통령이 조금은 회의적이었다고 출입기자들은 회상했다박 대통령 서거 그해에 한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주한미군철수를 카터 미국대통령이 요구했을 때 박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국익과 안보만을 우선 고려해 주한미군을 주둔 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지속시키고 중국과 소련의 세력확장을 제어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주한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다는 미국의 속셈을 꿰뚫고 있었다박 대통령은 국력의 배양과 군사력의 증강으로 국가안보를 담보하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적 정치지도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안보는 주변 열강과 제3국이 끝까지 책임지고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며 역사의 순리라고 믿었다때문에 자주국방의 안보체제를 완성하는 국력의 증강과 방위산업 육성에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군사력과 경제력의 절대우위가 국가안보의 금과옥조(金科玉條)라고 생각했다박 대통령은 재임 중 남침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위협과 도발을 서슴치 않는 북한의 김일성에게 남북대화를 결코 구걸하지 않았다도발과 전쟁을 억지하는 대북우위의 군사력만이 남북대화의 재개와 남북의 기선잡기 싸움에서 북한을 제압하는 총력안보의 국력과 자주국방의 결의를 다짐했다.

5.16후 60년대는 북한에 비해 남한의 군사력이 비등하거나 열세였다.70년대 들어서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북한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박대통령은 국가안보와 대북관계에 대해 확실한 원칙과 자신감을 자주 국민들에게 강조했다한반도의 전쟁 방지와 평화공존 차원에서 평화통일 정책과 남북대화의 재개를 공사석에서 자주 밝혔다출입기자들은 박 대통령의 속마음과 안보관을 평가하는 견해는 조금 달랐다.

박 대통령은 남북의 평화통일이 금방 실현가능한 것처럼 성급한 희망과 신뢰를 보여주지 않았다남북관계의 긴장과 대결 상태가 지속되는 안보의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국민에게 대북 경각심을 강도 높게 불어 넣었다연설과 회견과 회의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국력배양자주국방유비무환의 안보관을 반복해서 지시했다보안이 지켜지는 사석에서는 북한체제가 대내외적 요인으로 붕괴되거나 남북 간의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남북통일은 단시간에 이루질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출입기자들은 짐작했다.

남북대화를 개최하는 여건의 조성과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단초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고 설명했다.중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고 한국이 자력으로 전쟁에서 북한에게 승리할 수 있는 국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밝히고 전쟁도발을 일격에 무력화시키는 절대우위의 군사력을 보유하면 통일과 대화의 길을 보다 수월하게 열어나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은 평소 위의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남북대화도 우여곡절을 겪지 않아도 열리게 되며,평화통일의 추진방안도 보다 쉽게 개척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여론주도층을 설득하고 이해시켰다박 대통령은 우리 국군의 군사력이 북한을 능가하면 북한군부가 스스로 자멸하는 남침과 전쟁을 무모하게 자행할 수 없다이 군사력은 바로 전쟁억지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또 호전적 북한이 전쟁과 대결과 긴장 보다는 남북이 당분간 평화공존하는 남북대화의 테이블에 참석하고 남북간 상호 협력과 협조의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활용하는 대북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했다재임하는 기간 적어도 안보와 대화의 이같은 기본 원칙과 남북 상호주의는 절대 양보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7.4 성명 후 판문점에서 첫 번째 열린 제 1차 남부조절위원회 남측 대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축 제2부상 박상철이 악수하고 있다. (1972. 10. 13)

 

국가안보와 남북대화 경우 남북상호주의 원칙 고수

 

박 대통령의 불변의 안보 정책과 선견지명의 남북대화 원칙은 분단 70년을 맞는 지금도 국가유지와 안전보장을 위한 역대 보수정권의 지도이념과 불문율로 자리 잡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 대통령의 이같은 국정철학을 이어받아 국가안보와 남북대화는 힘 우위의 논리와 상호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환영과 지지를 받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정권 시절 노벨 평화상 수상과 개인의 이념편향 및 인기영합에 몰입한 나머지 수조원의 국민세금을 북에 퍼다주고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는 추태를 연출했다이에 반해 박정희 대통령의 원칙과 국익을 우선하는 국가안보와 남북대화의 소신과 철학과 비교할 수가 없음을 국민들은 잘 판단하고 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72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북한을 앞서가고 있으나 군사력은 북한에 뒤쳐진다는 사실을 시인한다북한은 지난 10년동안 적화통일을 위하여 전쟁준비에 광분해 모든 힘을 쏟은 반면에 우리는 5.16후 10년동안 경제개발에 힘써 왔다고 밝히고 총력 안보태세의 구축과 자주국방 능력의 배양을 본격적으로 역설하기 시작했다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하는 방법은 경제력과 군사력의 우위확보가 유일무이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당시는 우리의 국가안보를 미국에 상당부분 의존해왔지만 미국정부가 닉슨 독트린을 내세워 대외적으로 전쟁이나 분쟁개입을 축소해나가는 시기였다. 70년 7월 닉슨 대통령이 주한미군 1개 사단 철수를 공식 통보하고 71년 7월 미군 7사단을 철수했다박 대통령은 이때부터 국가안보에 더욱 노심초사했다.

70년대부터 국군현대화방위산업 육성민방위체제 등 전방위적 전쟁억지 장비와 수단을 대폭 강화했다율곡사업(74~86)등 야심찬 한국군 현대화사업 프로그램을 만들어 착실하게 실천했다.

78년경 북한을 압도하는 우리의 군사력과 전투능력을 증강하여 군사력의 남북균형을 이룩했다박 대통령은 방위산업을 중점육성했다대단위 규모의 탄약무기탱크전투기군함미사일 등의 군수 병기창을 10년안에 창원안강울산거제 등에 본격 준공하고 차례로 병기공장을 가동시켰다미국은 이같은 한국의 방산무기 업체와 시설들이 북한의 수중에 넘어갈 경우 미소간의 힘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한 미국 카터 대통령은 79년 10월 방한해서 주한미군철수 계획을 수정했다박 대통령은 만약 일본이 공산화된다고 가정한다면 중화학 공업이나 무기정비 능력 등의 수준으로 볼 때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밸런스가 깨지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일본 수준 정도의 무기생산 기술과 실적을 끌어 올려야 한다고 자주 국방당국에 재촉하면서 국내 방위산업체 CEO들을 지원하고 격려했다.

 

첨단 방위산업 갖추면 미국 주한 미군철수 못해

 

10년 가까이 청와대 경제2수석(중화학방위산업)을 역임했던 오원철씨는 박 대통령은 북의 남침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남북한 병력 대치현황을 기록하고 비교한 대형 한반도 지도를 걸어 놓았다남북 군사력이 표기된 한반도 지도를 매일 보면서 전쟁 대비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국가안보를 염려했다유비무환의 다짐과 이행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자제하게 만들었으며국가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역사를 후세들이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할 것 같다.

절대 우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유지하면 언젠가는 남북통일과 남북대화의 길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박 대통령은 신앙처럼 믿었다후임 대통령들처럼 남북 정상회담에 결코 연연하지 않았다.

남북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인도주의적 문제를 풀기 위해서 재임 중 남북적회담을 처음 시도했다북한군의 무기 제조핵무기 개발북한군의 식량에 사용될지 모르는 대북지원도 엄격하게 제한하고 금지했다박 대통령 사후 역대정권에서 북한에 퍼준 천문학적 자금과 물자가 북한 지도층의 배를 불리고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상무기로 만들어져 남쪽에 되돌아오지 않았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적어도 이제부터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대북 퍼주기의 일방적 선심은 베풀지 말아야 북한의 상투적 생떼와 고약한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현정부가 대북 비료 및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는 중에도 신형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서해상 북방한계선을 무력화시키는 대남위협을 거듭하고 있다상습적인 북의 전쟁광들에게 무슨 인도주의와 남북대화가 필요한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당장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남북대화를 포함한 남북통일의 기회는 확실하게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시간은 우리 편이다김정은의 핵심측근 총살 등 1인 공포통치가 무작정 계속되면 북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북한내부의 분열과 쿠데타 가능성,민생고에 시달리는 북한주민의 불만 폭발 등으로 인해 김정은 독재체제의 자연붕괴 즉 자폭자멸을 점치는 북한전문가의 분석과 전망이 많아졌다.

최근 미국의 한국 방위의지도 거듭 확인됐다현재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북한이 전면전 또는 국지도발을 감행할 경우 원점타격 이상의 무자비한 보복을 단행한다는 국방당국의 대응방침에 무게가 실려 있다남북이 전면 전쟁을 불사하면 북한은 일방적 패배와 자멸의 길 밖에 없다는 국내외의 분석과 우리 측 군사력의 실체를 북의 김정은과 군부실세들이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현대전인 까닭에 우리 쪽 피해도 상당하겠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은 점차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정부와 우리국민들은 유비무환의 자세로 대처하면 10년 안에 평화통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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