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나의 적”…‘롯데가 수장’에서 ‘비운의 맏형’으로

“감히 내 밥그릇에 탐을 내?”    

 
▲ 신준호 푸르밀 회장

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법정 싸움은 재계의 단골메뉴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한진, 롯데 등 ‘쩐의 전쟁’을 거치지 않은 로열패밀리는 없을 정도. ‘형제의 난’ ‘모자의 난’ ‘숙부의 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일감을 몰아주며 진한 우애(?)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밥그릇에 손끝하나라도 스치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애증의 관계로 변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벌가의 통과의례라고도 한다. 이에 [한국증권신문]은 유난히 ‘피’보다 진한 재벌가의 치열했던 ‘쩐의 전쟁’의 내막을 다시금 재구성해본다. 그 네번째 주인공은 유통공룡 롯데가 형제들의 반세기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팽팽한 기싸움, 그 두번째 이야기다.

“신준호 너마저…”  

신격호 회장의 ‘땅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한 감각을 자랑한다. 재계 오너들 중 ‘땅부자’ 1위로 뽑히는 건 당연지사. 특히 국내 주요 도시에 들어서 있는 백화점과 쇼핑몰 등의 부지가 알짜배기 땅이란 사실은 유명하다.

이러한 신격호 회장의 남다른 부동산 식견은 일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전 일본 곳곳에 금싸라기 땅들을 속속 매입, 1980년대 일본에서 부동산 재벌로 이름을 날렸다. 덕분에 당시 세계 4위 거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신격호 회장의 땅을 향한 집착은 형제간의 분쟁을 야기했다. 1963년 한일 국교 정상화전 일본 기업이 국내에서 사업 투자를 할 수 없었던 탓에 선친과 동생들의 이름으로 땅을 사 모은 것이 단초가 됐다. 그리고 이는 1996년 부동산실명제가 실시되면서 법정 소송까지 비화된다.

부동산 소유권 두고 ‘의절’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1996년 7월, 신격호 회장은 당시 롯데그룹부회장이었던 신준호 현 푸르밀 회장을 상대로 서울지법에 ‘소유권이전 등기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신준호 회장 앞으로 명의신탁해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롯데제과 3600평 부지를 비롯해 경남 김해시 진례면 송현리 산68 임야 1만평 등 모두 7건의 땅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것이 소송의 요지였다.

‘형제의 난’을 자초한 양평동 땅은 1966년 신격호 회장이 차남 신철호 사장의 명의로 구입했다 이듬해 신철호 사장과 갈등을 빚자 본인과 신준호 회장 이름으로 반반씩 나눠 소유권 등기를 다시 했다. 당시 시가만도 200억대에 이를 만큼 금싸라기 땅이다.

신격호 회장은 소송 전 신준호 회장에게 롯데후지, 롯데캐논, 롯데햄우유 등의 계열사 경영권과 300억원의 현금을 제시하는 등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신준호 회장은 “아버지한테 직접 물려받았다”며 자신의 소유권을 끝까지 주장, 팽팽한 법적 분쟁을 불사한다.

하지만 1차 재판에서 패배한 신준호 회장은 신격호 회장을 찾아가 용서를 청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신준호 회장이 롯데제과 부지를 이전해 줄 경우 양도소득세 부담이 너무 커 해줄 수 없다고 한 것이 신격호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실 신준호 회장은 롯데제과가 설립되던 해인 67년 롯데제과 전무로 사실상 롯데제과의 책임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후 롯데제과 대표, 롯데칠성 대표, 롯데냉장 대표, 롯데물산 사장, 롯데건설 사장, 롯데햄우유 대표이사 부회장,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등의 직책을 맡으며 신격호 회장과 함께 롯데그룹을 성장 시키는데 큰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핵심실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격호 회장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든든한 지원군이자 그림자였던 만큼 배신감이 컸던 것일까. 신격호 회장은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신준호 회장을 그룹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시키기에 이른다. 넉달 가까이 진행된 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결별’을 선언, 남이나 다른 행보를 거듭한다.

“롯데 명칭도 쓰지마”

‘부동산 분쟁’ 이후 롯데햄우유의 부회장으로 좌천된 신준호 회장은 독자 행보를 가속화한다.

2004년, 부산의 대표 소주회사인 대선주조를 600억원에 인수, 형과의 완전한 결별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시 업계에서는 대선주조가 롯데그룹 계열사에 편입, 진로를 인수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했으나 사실 이는 신준호 회장이 개인 돈으로 인수한 개인회사로 홀로서기를 위한 사전 작업이나 다름없었다. 대선주조의 전 오너가 신준호 회장의 사돈인 최병석 회장인데다 지분 구조가 신준호 회장 일가로 이루어진 점도 가능성에 무게를 더했다.

더욱이 2005년에는 대선건설을 설립, 계열분리의 기반을 닦았다.

당시 롯데그룹은 롯데건설, 롯데기공 등 건설관련 회사가 2개나 있던 터라 더 이상의 건설회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때문에 신준호 회장의 건설회사 설립은 분리 수순으로 해석되기 충분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도 “대선주조와 대선건설 모두 롯데에서 투자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해 이 같은 사실에 힘을 실었다.

그러던 2007년, 신준호 회장의 분가가 본격화 된다. 신격호 회장은 롯데햄우유를 롯데햄과 롯데우유로 분할, 신준호 회장을 롯데우유 회장으로 선임했다.

롯데상사가 48.6%, 신준호 회장이 45%의 지분을 갖고 있던 기존의 롯데햄우유 지분구도는 롯데햄이 롯데우유 지분 100%를 갖고 롯데햄의 지분은 롯데상사 48%, 신준호 회장 45% 등으로 정리됐다.

계열분리가 공식화된 만큼 신준호 회장은 장기적으로 롯데햄과 롯데우유 지분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져 분가가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이 ‘롯데’라는 명칭 사용 불허의 뜻을 표명하면서 사명도 ‘푸르밀’로 교체, 거의 ‘의절’이나 다름없는 수순을 밟는다.

그리고 이는 곧 형제간의 또 다른 전면전을 이끌어내는 단초가 된다. 신준호 회장이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신격호 회장의 경쟁심에 불을 붙였다. 롯데우유가 여름 시장을 겨냥해 음료시장에 진출하면서 롯데칠성과 경쟁이 불가피해지자 신격호 회장은 소주시장에 뛰어들었다. 2005년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실패하자 2008년 두산주류인 ‘처음처럼’ 인수에 적극 가담해 성공, ‘소주 전쟁’을 선언한다.

대선주조의 ‘시원소주’는 부산에서 8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일만큼 지역 대표 소주다. 그럼에도 불구 신격호 회장은 신준호 회장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신격호 회장이 여전히 신준호 회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더욱이 신준호 회장이 당시 대선주조 인수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혐의가 적발되면서 대선주조를 향한 부산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맏형이 동생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돌았다.

뿐만 아니라 2010년에는 ‘우유전쟁’도 펼친다. 롯데삼강이 파스퇴르유업을 전격 인수, 신준호 회장의 푸르밀과 진검승부를 벌였다. 신격호 회장은 롯데의 거대한 유통망을 동원해 마케팅에 힘을 쏟았고, 신준호 회장은 신춘호 회장과 손을 잡고 푸르밀 우유에 농심 광고를 실어 롯데의 경쟁사인 이마트에 100원 싸게 내놓는 전략으로 맞대응했다. 영역 침범을 일삼는 맏형으로 인해 롯데가에 보기 드문 ‘형제애’가 발휘된 것이다.

처남과 매제 ‘관광사업’ 충돌  

신격호 회장의 형제기업 영역 허물기는 막내여동생과도 충돌을 일으켰다.

롯데그룹이 일본 JTB와 합작으로 여행사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막내여동생인 신정희 동아면세점 대표의 남편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과의 갈등을 불렀다.

롯데관광은 롯데 상호만 사용하고 있을 뿐, 롯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회사다. 단지 롯데가 그룹으로 형성되기 전인 1973년부터 신격호 회장의 허락아래 롯데 브랜드만 가져와 운영해 왔다. 그 과정에서 동아면세점까지 운영하는 여행업계의 큰손으로 성장했으며, 2006년에는 계열사인 롯데관광개발을 증시 상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새 여행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간판 분쟁’이 불가피해졌다. 같은 심벌마크를 사용할 경우 혼란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 관광 사업 확장에 막대한 지장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을 제외한 롯데그룹측 인사들의 불만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동안 임원진들은 롯데 계열사도 아닌 롯데관광이 ‘롯데’ 이름과 마크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신격호 회장이 롯데면세점을 따로 만든 것도 이런 내부 갈등이 밖으로 표출된 대표적인 케이스.

결국 신격호 회장은 김기병 회장에게 ‘롯데’ 마크 사용 중지 할 것을 수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김기병 회장이 이를 거부, 처남과 매제의 ‘관광싸움’이 시작된다.

2007년, 롯데그룹은 원 안에 로마자 ‘L’ 3개가겹쳐진 롯데 마크를 롯데관광이 사용 않을 것과 이와 관련된 간판을 없애달라며 롯데관광을 상대로 서울지법에 서비스표권 침해 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기병 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사용승낙으로 30년간 롯데마크를 사용해 왔다”며 “롯데는 이미 롯데관광의 브랜드 자산이기도 하다. 오히려 롯데그룹이 새로 관광업을 시도하는 게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현재 롯데관광은 마크 사용을 중지한 채 ‘롯데’ 이름만 사용 중에 있다.

‘우리홈쇼핑’ 두고 사돈끼리 혈투

신격호 회장은 조카사위인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M&A 혈투’를 벌이기도 했다. 2006년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인수를 둘러싸고 4년 넘게 법적 다툼을 거듭했다.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형제간의 내홍이 결국 사돈기업에게까지 불통이 튀었다고 분석했다.

이호진 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여섯째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의 사위다. 이호진 회장은 우리홈쇼핑 지분 45.04%를 확보한 뒤 인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한 달 뒤 롯데쇼핑이 경방 등으로부터 지분 53.03%를 취득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최대주주 승인을 받아내면서 우리홈쇼핑의 경영권을 차지했다. 태광으로선 다잡은 홈쇼핑 사업을 놓친 꼴이 됐다.

이에 이호진 회장은 승인처분에 하자가 있다며 사돈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롯데에게로 향했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최종 승자는 롯데가 차지했다.

이로써 신격호 회장은 ‘롯데패밀리의 수장’에서 경영 일선에 있는 모든 형제와 분쟁을 치르는 ‘비운의 맏형’이라는 불명예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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