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전 의원 선처 탄원서를 제출한 종교지도자는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천주교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 퇴휴스님, 성공회 김근상 주교 등.

종단 안팎으로 영향력이 매우 높은 종교지도자들이 탄원서를 낸 것은 이례적. 특히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던 염수정 추기경은 자필로 탄원서를 제출해 파장이 매우 크다. 
염수정 추기경은 최근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사건 피해자 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을 만나 면담한 후 직접 탄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월 가족대책위가 이석기 전 의원 등 7명에 대한 탄원서를 재판부에 내 줄 것을 KCRP(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 요청했다. 하지만 일부 회원교단에서 반대로 KCRP 차원의 탄원서 제출은 무산됐다. 이후 가족대책위가 각 종단과 개인별로 만나 탄원서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단 지도자들의 탄원서 제출소식이 알려진 뒤 보수단체들은 즉각 종교계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 명동성당 등에서 집단집회를 열고 있다.

이희범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종교계 지도자들의 ‘이석기 탄원’은 잘못됐다. 내란음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석기 등 7명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은 헌법정신을 위배하고 있다”면서 “개인적인 사안이라면 반성이 없더라도 종교인의 선처를 청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의 경우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보수단체들은 종교지도자들의 탄원서가 11일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전 의원을 비롯한 RO조직원 7명에 대한 2심 판결이 11일 내려질 예정이다. 1심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이 전 의원에겐 2심이 마지막 기회이다.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판결이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  2심 판결을 앞둔 판사들이 최종적인 판단을 하고 있을 즈음에 종교지도자들의 탄원서를 냈다. 이는 판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이다.

실제 이석기 전 전 의원이 소속된 통합진보당은 종교지도자들의 탄원서를 재판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이민걸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 전 의원 등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7명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RO조직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면화해 비상사태시 북한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행동하는 혁명세력이다. 그 위험성이 매무 높아 처벌이 필요하다”며 1심과 동일한 징역2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이날 최후 진술에 나선 이 전 의원은 “저의 석방을 탄원해 주신 염수정 추기경님, 자승 스님을 비롯한 4대 종단의 지도자들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최후 진술에서 4대 종단 지도자들의 ‘선처 호소’가 어느새 ‘석방 탄원’으로 바뀌었다. 또한 통진당은 ‘4대 종단 종교지도자들의 탄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하라’고 적혀 있다.

이뿐 아니다. 4일자 일부 조간에 14~18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란음모 사건의 한 피고인의 부인 엄경희 씨에게 강복(降福)기도하는 사진을 전면 광고로 실었다. 사진은 5월 14일 교황이 엄 씨에게 강복하는 사진이다. 이를 마치 교황이 이석기 전 의원 등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이 같은 사진을 배경으로 ‘간절한 호소’와 ‘강복 기도’를 연결시켜 이석기 등의 석방에 국민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은 “교황의 권위를 빌린 거짓 선동”이라며 “교황은 내란음모로 수감 중인 이석기 일당에 탄원한 사실이 없다. 교황의 권위까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북한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이석기 사건의 재판부가 통진당의 선전과 선동술에 경계해야 할 이유이다”고 했다.

통진당과 이석기 전 의원이 탄원서를 재판에서 선처를 석방으로 바꿔 활용한데 대해 천주교와 조계종에선 선을 그었다. 종단 측은 “죄인이라도 용서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탄원서를 보냈다”면서 선처지 탄원이 아님을 밝혔다.

<부수단체와 종교계 분열 위기>

이석기 탄원서 제출을 계기로 보수단체와 종교계의 갈등이 불거졌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5일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종교지도자들은 이 나라의 헌법정신을 외면하고 사법부에 압력을 가한 것”이라며 “이 전 의원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한 종교계의 분별없는 '이석기 감싸기'를 보며 종교를 빙자해 좌익세력에 이용당하는 종교계 지도자들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소장에 따르면 이석기 전 의원과 RO는 대한민국 헌법가치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전복' 활동을 한 것으로 돼 있다”며 “세계 어느 선진민주국가도 '전복' 활동을 방치하거나 관용하지 않는”고 지적했다.

앞서 4일 나라사랑구국단체연합회는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에 즈음하여, 이석기 선처 탄원을 한 종교인을 규탄하고 북한 동포들을 위해 힘써주시길 당부하는 호소문을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에 전달했다.

나라사랑구국단체연합회는 호소문을 통해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현재 재판을 받는 반국가 사범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못 되었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며 “천주교 사제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교황의 권위로 잘못됐다”고 일침을 가해주길 요구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자유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도록 기도해주시고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하여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조갑제 대표도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종교인들이여, 통합진보당 해산에 앞장서 보라’ 특별 강연회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한 이석기 일당과 같은 과오를 저지른 것”이라며 “이석기와 통진당이 뉘우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원수를 용서하라고 해도, 반성을 전제로 하는 것. 4대 종단 종교 지도자들은 누굴 속인 것이냐.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을, 불교도라면 석가모니를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가족인 염 씨가 교황을 만난 사진을 마치 교황이 '내란음모' 사건의 무죄를 위해 기도해 준 것처럼 악용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조갑제 대표는 “교황을 찾아 기도를 받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종북-좌파세력의 속성은 사대주의”라며 “국내에서 벌어진 일을 외부 사람을 찾아가 부탁, 그 힘으로 국내에서 뭘 해보겠다는 것, 재판장에 압력을 넣겠다는 것이 바로 저 세력의 본질이다. 종북-좌파세력을 진보세력이 아니라 수구세력이라고 보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4대 종단 지도자들의 이석기 선처 논란은 보수단체와 종교계의 갈등을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 작용될 우려마저 제기된다. <이동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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