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평가신용등급 ‘AA+(안정적)’로 한 단계 낮춰...신소재 사업 전략검토와 시장 분석 충분 했었나 의문

포스코가 2012년 준공한 마그네슘·몰리브덴 제련공장이 파행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7일 확인됐다. 포스코가 야심차게 진출한 ‘소재 사업’이 손실만 보고 있는 것이다. 시장 분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포스코는 사업 특성상 단기간 성과는 힘들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포스코가 미래 성장 동력인 소재 사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혁신과 분발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기대했지만 ‘테스트’만

포스코는 자동차와 IT 기기의 경량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마그네슘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에서 전량 수입하던 마그네슘 제품을 직접 생산하기 위해 포스코는 2012년 강릉에 연간 1만t 생산 규모의 마그네슘 제련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이어 2018년에는 10만t으로 생산 규모를 늘릴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1000억원 안팎을 투자했지만 이 공장은 준공 직후부터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생산량은 수요 부진 등으로 당초 목표치의 3분의 1 수준인 월 300t 정도에 그쳤다.

그나마 마그네슘 공장은 오염 물질 유출 사고로 현재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이 공장에서는 작년 6월 응축수 저장탱크가 지반 침하로 균열이 발생하면서 페놀·벤젠 등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토양 3만1419㎡과 지하수가 크게 오염됐다.

강릉시는 올 5월 포스코가 제출한 토양 정밀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오염 토양을 정화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포스코는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들여온 설비가 문제를 일으킨 데다 포스코 측의 운영 미숙이 더해진 결과”라고 말했다.

영월 몰리브덴 제련공장도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포스코는 이 공장에서 연간 2400t의 몰리브덴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몰리브덴은 주로 고급 품질의 합금철을 생산하는 재료로 많이 쓰이지만, 이 공장에서는 기술 문제로 여전히 시제품 생산만 하고 있다. 포스코는 “기술 테스트 중”이라며 “언제 양산이 이뤄질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공장도 가동 초기부터 사고가 잇따랐다. 작년 3월 이산화질소 유출로 4개월간 가동 중단에 이어 7월 재가동 후에는 폐(廢)화학약품 보관 장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포스코의 소재 사업은 이처럼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수요 예측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관련 기술 확보도 미흡한 상황에서 졸속으로 사업을 진행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2020년 국내 마그네슘 수요가 6만t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포스코는 2018년 10만t급 생산 체제를 갖춘다는 목표로 투자를 진행했다.

강릉 마그네슘 공장과 영월 몰리브덴 공장은 포스코가 2009년 ‘종합소재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비전 아래 추진한 사업이다. 포스코는 두 공장에 이어 다른 희귀 금속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전략이었다.

전문가는 “포스코가 새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신소재 개발에 뛰어든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포스코가 사업 진출 전에 사업 전략에 대한 검토와 시장 분석을 충분히 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소재 사업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강릉 마그네슘 공장은 100억원을 투자해 환경 시설을 대폭 보완한 뒤 재가동에 들어가고, 영월 몰리브덴 공장도 부족한 설비와 기술을 보완해 가급적 빠른 시기에 양산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마그네슘과 몰리브덴 공장 정상화와 함께 배터리 소재인 리튬과 합금 소재인 니켈 등 시장 수요가 큰 제품을 중심으로 소재 산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20년 만에 하락...왜?

포스코의 신용등급이 20년만에 한 계단 내려앉았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12일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AA(안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낮췄다고 밝혔다. 'AAA'는 국내 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인데, 한 단계 떨어진 것이다. 국내 신용평가회사가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것은 1994년 이후 처음이다. AAA 등급을 줬던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신용등급 하락은 회사채 시장에서 좋지 않은 영향은 물론 포스코의 비중이 큰 포항시 경제에도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국제적인 신용평가회사들이 포스코에 매기는 신용등급은 훨씬 짜다. 국내보다 7∼8단계 아래다. 무디스는 Baa2,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BBB+, 피치는 BBB로 평가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 기업에 점수를 후하게 준 측면도 없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한국기업평가의 이번 조정은 의미가 작지 않다.

한기평은 "최근 철강시황 약세하에서 독점적 시장지위 약화로 시황변동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졌고, 해외부문 대규모 투자 지속에 따른 재무부담 증가 등이 최고수준의 신용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꾼 한국신용평가도 “대규모 투자로 재무 부담이 확대됐으나 투자효과 창출이 지연돼 재무안전성 회복이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철강경기 부진 속에서도 공장 증설과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외형 확장에 몰두한 바람에 수익성 악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포스코 위기의 주원인은 회장 인선 개입 등 ‘정치권의 외풍’을 빼놓을 수 없다. 포스코는 민영화한 기업이지만, 5년 단위로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수장도 함께 교체되는 ‘CEO 리스크’가 반복됐다.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억지 인수합병한 계열사도 무려 46개에 이른다. 포스코의 신용등급 하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로 보인다.

이런 구조는 최고 경영자의 경영 활동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연출함으로서 시장에 극심한 불확실성을 노출한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최고 경영자가 외풍에 의해 임기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경영 정책의 연속성이 흔들린다는 것이고, 그 만큼 포스코의 전도가 불투명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금융가에선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도 조만간 신용등급이 강등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KT 역시 낙하산 인사가 빈번했다.

신용등급 하락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을 초래하며, 재무리스크가 그만큼 커지면 한국경제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포스코와 KT에 각각 내부 출신인 권오준 씨와 정보기술(IT) 전문가인 황창규 씨가 수장에 올랐다. 이에 관해 정권이 두 기업에 대해 일정 거리를 두었다는 것은 긍정적 의미로 평가할 만하다는 여론이다.

포스코 출신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든 포스코 경영진이든, 포스코가 ‘대일청구권 자금’이라는 조상들의 ‘피 값’으로 설립됐다는 역사적 정체성을 인식한다면, 포스코가 직면한 문제를 방치할 수 없을 것”이라며 “5년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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