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인공심장 이식수술(체내형 심실 보조장치)을 성공했다. 

이영탁·전은석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 교수팀은 지난 8월 17일에 배정수(남·76세)환자에게 인공심장 이식수술에 성공해 현재 환자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고 10일 밝혔다.

배씨의 심장은 현재 뛰지 않는다. 가슴에 귀를 대보면 심장소리 대신 ‘윙’ 하는 펌프음만 들린다. 심장의 기능을 대신하기 위한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인공심장을 몸속에 삽입해 혈액이 끊임없이 순환할 수 있는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아침, 저녁으로 산책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하다. 

   
▲ 이영탁 교수(가운데)와 전은석 교수(오른쪽)이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공심장이식수술을 받고 퇴원을 앞둔 배정수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공심장 이식수술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미 FDA의 승인 이후 현재까지 1만 30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수술을 받았다. 현재도 연간 1000건 이상씩 수술이 진행되고 있어 심장이식을 대체할 수 있는 치료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소개된 적이 없다. 인공심장 이식수술이 식약청에서 승인되지 않았다. 또한 만만치 않은 비용과 환자들의 기계장치에 대한 두려움도 그 원인이다. 

무엇보다 수술 자체는 물론 수술 후 환자 관리에 고도로 숙련된 의료진을 필요로 한 점도 국내 도입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이다. 

이영탁·전은석 교수팀이 지난해 8월, 국내 최초로 인공심장 수술을 했다. 

이영탁 교수의 집도 아래 11시간에 걸쳐 장시간 진행됐다. 앞서 미국에서 수술 교육을 받았던 이 교수는 우선 기존에 수술했던 인공 대동맥 판막 부위를 막고, 인공심장을 삽입했다.

좌심실의 혈액이 기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심첨부에 구멍을 만들고, 대동맥으로 혈액이흐를 수 있도록 인공호스를 연결했다. 또 인공호스 사이에는 혈액이 원활히 흐를 수 있도록 펌프를 설치했다.

모터로 움직이는 펌프가 돌기 시작하면, 심장은 뛰지 않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액이 일정하게 흐르게 되는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다음날 의식을 회복한 배씨는 넉 달여에 걸쳐 근력과 체력을 되찾아 갔다.

이영탁 교수는 “수술이 매우 잘 됐지만, 환자가 고령인데다 수술 전 체중이 50kg도 안될 정도로 많이 허약했었다”면서 “이제는 오랜 병력으로 인해 약해진 근력 등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앞으로의 삶에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현재 몸을 가누기에도 힘들었던 과거 병색을 완전히 털어내고 건강을 되찾아 퇴원했다. 인공심장과 연결된 전선 가닥과 배터리가 옷 사이로 스치듯 보이는 것만 제외하면 외관상으로는 특별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배씨의 수술 후 관리를 맡았던 순환기내과 전은석 교수는 “배씨처럼 말기 심부전 환자는 늘고 있는 데 반해 심장이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심장 이식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배씨는 지난 2000년 이미 한 차례 대동맥 판막수술을 받았고, 이듬해부터 심부전이 진행되면서 수술 직전 심박구출률(1회 수축시 심장서 나오는 혈액의 비율)이 17%까지 떨어졌다.

심박 구출률은 55% 이상이야 정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씨 심장은 3분의 1 정도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일상적인 생활조차 힘든 나날이 이어지면서 배씨에게는 심장이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으나 고령인 탓에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몸 상태도 악화돼 심장이식 자체도 받기 어렵게 됐다. 배씨의 나이와 건강상태를 고려했을 때 그대로 지내면 2년 생존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당시 의료진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인공심장 이식수술은 기계적인 오작동이 거의 없다. 수술 후 2년 생존율은 80% 이상, 5년 생존율이 70% 이상으로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돼 시행됐다. 수술 후 오랜 시간 병상생활로 인해 크게 떨어진 근력과 체중을 강화하는 운동을 최근까지 계속하여 현재는 15분 이상 평지 보행이 가능할 정도로 근력과 건강을 회복한 상태이다.

인공심장 이식 후 배씨의 생활패턴도 바뀌었다. 집에 있을 때에 전원공급 장치를 연결해야 하고, 외부에서는 최대 14시간까지 버틸 수 있는 배터리를 항상 몸에 지니며 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 몸 밖으로 이어지는 전선이 나오는 부분도 피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재수술이 불가피하게 되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매일 소독하고 관리해야 하며, 심장 재활운동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인공심장, 이식 받기 어려운 환자에 새 희망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가 펴낸 2011 장기이식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심장이식 대기환자는 257명이었다. 반면 2012년 국내에서 이뤄진 심장이식 수술은 98건에 불과했다.

전체 심장이식 대기 환자 중 3분의 1만이 심장이식을 받을 정도로 열악하다. 심장이식만 기다리기에는 환자나 보호자 모두 감내해야 할 고통은 크고 참아야 할 시간은 너무 길다.

삼성서울병원이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여건상 풀어야 할 과제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세계적으로 인공심장 분야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불모지에 가까운 현실을 극복해 내겠다는 의학적 열망도 한 몫 더했다.

인공심장이식은 의학적 관점에서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고 이영탁·전은석 교수는 설명한다.

젊은 층의 경우 심장이식을 받기까지 대기기간이 오래 걸려 그 사이 생명연장을 위한 중간 단계 역할을 하고, 고령이거나 이식수술이 힘든 상황 등의 이유로 심장이식을 받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최종 수술로 선택할 수 있다.

외국에서 현재 사용 중인 인공심장 장치는 2005년 첫 수술 후 현재까지 최장 7년 생존자가 보고되고 있으며, 수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여 연간 1000예를 상회하고 있는데, 이는 연간 심장이식 3,000예의 1/3에 해당한다.

삼성서울병원은 2012년 초 식약청에서 3차례의 수술을 허가 받았으며, 배씨 이후 2차례 걸쳐 국민보건 향상을 목적으로 한 임상연구를 위해 내년까지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전액 무료로 2차례 더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에 쓰인 인공심장은 허트메이트II란 제품으로, 혈액 펌프가 구동해서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서 혈액 흐름을 보조하며, 경피케이블 (Percutaneous cable)을 통해 외부 시스템제어기 및 외부 전원 공급장치와 연결되어 있는 형태의 좌심실 보조 장치이다.

시스템 제어기와 배터리 2개를 합치면 약 2kg이 조금 덜 되며 조끼나 벨트, 보조가방 등을 이용하여 편하게 착용하면 된다. 초기 형태(1세대)의 박동형 보조장치와 달리 허트메이트II는 지속성 혈류를 만들어 내는 2세대 심실 보조장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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